먹방 소회

마음이 허기진 탓은 아닌가요?

by 서지현
세계적인 영어사전 출판사인 콜린스가 '먹방(mukbang)'을 2020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한국 먹방(먹는 방송)에 국경을 초월한 수많은 팬들이 열광한다. 어떤 진행자는 외국인 시청자를 염두에 둔 탓인지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먹는 모습만 선보인다. 부지런히 입을 오물거리며 때론 감탄의 눈빛으로, 때론 엄지 척 하나로 맛의 황홀경을 표현한다. 극대화된 ASMR로 음식의 맛과 질감을 실감 나게 전하는 먹방의 세계는 실로 놀랍다.


먹방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정신적 해소의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다. 음식을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다이어트 중이거나 장염을 앓고 있는 이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적지 않은 1인 가구가 라이브 먹방을 틀어놓고 밥을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이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먹방이 대식을 넘어 폭식으로 치닫는 점은 크게 우려스럽다. 개인 먹방 채널은 영화나 드라마, TV 예능에서 다루는 먹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눈 앞 화면에서는 한 프로 먹방러가 떡볶이를 네 접시 째 주문하고 있었다. 접시 옆에는 수 개의 어묵 꼬치가 쌓여있었다. 야무지게 떡을 씹으며 맛의 짜릿함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녀에게 구독자들은 자꾸만 빠져들어 갔다. ‘먹는 행위’가 이토록 커다란 행복일 수 있다니! 새삼스러웠다.


옆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초등학생 아들이 대뜸 물었다.

“엄마, 저 사람은 떡볶이를 왜 저렇게 많이 먹는 거야? 진짜 저걸 다 먹는 거야?”

“음, 왜냐하면 잘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좋아하거든.”

“좋아하면 왜?”

“글쎄.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그런가 봐.”

“에이,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그랬어. 부자가 되는 것보다 생명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아?”

아이는 태권도장 인성교육 중에 듣고 배운 말을 스스럼없이 인용했다. 폭식으로 치닫는 식음(食飮)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게 분명하다.


떡볶이를 비운 접시가 쌓여갈수록 나의 의문도 커져만 갔다. 먹방에서는 왜 주로 치킨, 피자, 떡볶이, 고기, 라면 같이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을 다룰까? 저 사람은 정말로 저 많은 양의 음식을 흡입해야 할 정도로 배가 고팠던 걸까? 저 푸짐한 음식을 다 먹은 후 저 사람은 정말로 행복할까? 아니 괜찮기나 한 걸까?


음식에 대한 개인 취향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더 큰 의문은 오히려 먹방에 열광하는 뭇사람들에게 향한다. 사람들은 가학적이리만큼 많은 음식을 먹는 모습에 왜 그렇게 빠져드는 걸까? 어쩌면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크게 허한 탓은 아닐까? 스트레스와 불안, 긴장, 분노와 같은 온갖 불편한 감정을 음식으로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지나치게 먹방에 투영된 건 아닐까?


대개의 먹방은 음식을 먹는 분위기와 맛의 감각에 대한 것이다. 음식재료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어떠한 조리과정을 거쳤는지, 음식의 영양성분은 무엇이고 그것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정보는 생략된 채로다. 출연자(혹은 제작자)의 표정과 반응, 극대화된 ASMR로 맛의 세계가 미화되고 과장되기 일쑤다. 과연 화면 속 음식이 평소 내가 알던 음식이 맞는지, 이미지이자 허상은 아닌지 헷갈린다.


먹방을 보고 난 후 괜스레 속이 매스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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