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의 남자가 있었다. 입사 후 부지런히 조직문화에 적응해 가는 중이었다. 회식이 잦았고 비공식적인 식사 자리 또한 적지 않았다. 하루는 저들끼리 점심을 먹기로 한 모양이다. 크게 기호를 내세우는 사람이 없어 자연스레 인근의 한 이탈리언 레스토랑으로 향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모두가 주문을 어려워했다. 형식적으로 메뉴판을 들여다보는데 하나같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란다.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난 까르보나라!”하고 호기롭게 외쳤다. 나머지 넷은 내심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럼, 나도 같은 걸로 하지.” 결국 다섯 모두가 까르보나라를 시켰다는 슬픈 이야기다.
내 또래 현실 아줌마 다섯이라면 적어도 너는 파스타, 나는 샐러드, 그리고 어느 누군가는 스테이크를 시켜가며 미식의 세계를 고루 맛보았을 텐데. 멸치 다시물에 면발 말아먹는 국숫집도 아니고 고만고만한 나이로 뵈는 남자 다섯이 하나같이 까르보나라를 시키다니, 별안간 그때 주문을 받았을 웨이터의 심정이 되면서 아뜩해진다.
실제 같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그러나 마냥 속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 다섯 남자 중 하나가 내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 남자와 외식을 할 때면 어떤 이유로든 비위장이 틀어진다.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짓는 주부에게 외식은 그야말로 쉼이고 이벤트다. 오래간만에 대접받는 입장이 되고 보면 기분부터 들뜨고 설렌다. 외식으로 주어지는 사소한 경험과 절차조차 소중하다.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고ㅡ 공간이 주는 분위기, 주방에서 풍겨나오는 음식 되어가는 소리와 향기, 그중에서도 메뉴판 읽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그것은 남의 주방을 구경하는 일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메뉴가 있는지, 어떤 식재료가 조합되어 나올는지, 조리 과정에 특이사항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일은 그 자체로 즐겁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메뉴판을 깊이 들여다보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아마도 메뉴를 선뜻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는 줄로 여기는 모양이다.
“어머, 파스타 소스에 버섯을 갈아 넣기도 하나 보네. 이거 좀 봐봐.”
“아무거나 시켜.”
“가만있어봐, 좀 찬찬히 보고.”
“다 똑같아.”
식당에서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먹는 속도도 문제다. 평소 음식 먹는 속도에 큰 차이나는 부부가 집 밖이라고 해서 다를까. 대화 몇 마디 주고받을 새 없이 무슨 음식이든 훌렁훌렁 먹어치우는 그가 얄밉다.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먹는 중에 동반자가 이미 식사를 끝내버리면 맥이 빠진다. 서둘러 식사를 마쳐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음식 맛이 떨어진다.
약 4개월 간 브런치 플랫폼에 집밥에 관한 글을 줄기차게 써내려 왔다. 구독자 200명을 채우고 나면 스스로를 격려하는 의미로 집밥을 떠나 맛있는 걸 사 먹어야지 계획하고 있었다. 작은 소망은 곧 이루어졌다. 내친김에 그간 쓴 글을 모아 출판사에 보낼 기획안을 마련했다. 작은 쉼과 격려가 필요한 시점인 게 분명했다.
먹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좀체 합이 맞지 않는 부부다. 차라리 혼자만의 만찬이 나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는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기어이 연차를 냈다. 누구보다 꾸준히 아내의 글쓰기를 지원하고 격려해준 사람이었다. 그를 밀어낼 도리가 없었다.
양파스프가 품은 수고와 노동에 대하여
우리는 프렌치 경양식집에서 양파수프와 스테이크, 그리고 봉골레 파스타를 주문했다. 아담한 스프볼에 담겨 나온 양파수프의 가격은 상당했다. 그러나 결코 웃돈은 아니라 생각했다. 캐러멜의 진한 갈색이 나도록 양파를 볶는 일은 얼마나 고되고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인지를 안다. 식구들을 위해 손수 닭 뼈를 고아 닭 육수를 내고 양파를 볶아 양파수프를 끓이던 날, ‘내 언젠가 비싼 돈을 주고라도 양파수프를 사 먹고야 말리라’ 다짐했었다.
이 한 그릇 양파수프를 만들기 위해 팔이 빠지도록 양파를 볶는 수고를 아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내심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그도 나도 수프를 한 스푼씩 떴다. 수프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더욱 깊은 맛과 풍미가 났다.
너를 위한 봉골레 파스타
봉골레 파스타는 순전히 그를 위해 주문한 메뉴였다. 유난히 마늘의 풍미를 즐기는 남자, 그에게 파스타라고 ‘다 똑같은 파스타’가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파스타는 맛이 좋았다. 평소 아이들 먹이느라 알덴테(al dente) 이상으로 면을 삶곤 해서 파스타면 특유의 질감을 누리지 못했었다. 평소와 달리 면을 꼭꼭 씹는 남자를 보면서 흐뭇한 마음마저 들었다.
한 점 한 점 충분히 음미하면서
이번엔 그가 나를 배려했다. 그는 ‘평소에 나는 고기를 많이 먹는다’라고 하면서 부지런히 고기를 썰어주었다. 그러고는 내가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점을 해결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어쩌면 다음번에 그가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면 더 이상 까르보나라를 주문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스쳤다. 양파수프가 품은 음식 만드는 이의 수고를 알게 되었고, 봉골레 파스타를 주문한 아내의 애정을 담뿍 느꼈을 테니.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고기 한 점 한 점을 얼마나 차분히 즐기는 사람인지를 새삼 눈으로 확인했으니 말이다.
가끔은 서로가 너그러워지고 싶을 때가 있다. 외식으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