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서늘할 때
어느 날, 혼자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들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무엇일까? 바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이다. 나와 비슷한 또는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집해본다. 그렇게 모은 수집 조각들은 그 사람의 온기가 함께 묻어있다. 그 온기 덕분에 삶의 실마리를 찾기도, 다시 초심을 다지기도 한다. 나에게 '남의집' 서비스 경험이 그러했다. 한참 삶이 서늘하다고 느낄 때, 남의집은 뜨거움이 아닌 적당한 온기로 내게 다가왔다.
2019년 4월, '거실 여행 플랫폼'으로 시작한 남의집은 개인 유휴공간에 취향이 맞는 사람을 초대해 대화하도록 하는 게 사업의 핵심이었다. 최근에는 가정집, 작업실, 동네가게 등 공간의 유형을 확장하여 공통의 관심사로 취향을 나누는 커뮤니티 서비스로 발돋움하고 있다. 작년에는 당근마켓으로부터 10억을 투자 유치하였으며, 당근마켓과의 협업으로 ‘당근 미니’에서도 남의집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만들며 살아간다. 사는 공간과 생활양식 그리고 관심사를 서로 교류하며 점진적으로 유대감을 만들어나간다. 과거에는 동네 이웃 간의 ‘정’ 문화가 이러한 부분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초연결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점점 고립에 익숙해져 갔다. 그만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어갈 기회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중 공간만큼 사람의 취향을 타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남의집은 ‘집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비전으로, '거실'이라는 개인 공간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서로의 일상과 취향을 교류하는 오프라인 커뮤니티 서비스이다.
나의 경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삶을 반추하였으며 익숙한 관계와 환경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를 가질 수 있었다. 과거 성공적인 삶에는 통용되는 공식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의집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접하면서 그러한 고정관념이 조금씩 작아졌다. 성공적인 삶은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저마다의 기준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은 참 사적이다. 그리고 그 집에 모여 대화를 나눈다는 것 또한 참 사적이다. 그런데 대화 상대의 백그라운드를 모른다. 그럼에도 사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남의집 특징이다. 초반의 어색함은 이내 사라지고 그날의 대화 온도에 만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육아, 퇴사, 다이어리 꾸미기, 전통주, 가드닝 등 호스트의 관심사 및 취향을 대화 주제로 삼아 모임을 오픈하기 때문에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적인 공간에서 좋아하는 주제로 딥토크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경계는 빨리 허물어지게 된다.
취향이 맞는 사람과 만나고 싶은 욕구는 이미 많아서 다른 서비스들도 있는데, 개인 공간이 주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요. 남의집 플랫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간’이에요.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집이나 작업실처럼 개인 공간에서 만나면 대화의 질이 달라져요.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은 카페에서 만나는 것보다 개인 공간에서 만났을 때 서로에게 더 잘 집중할 수 있거든요.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지고요. 주인장 입장에서도 누군가를 초대한 것이기 때문에 더 환대를 하게 되고, 마음이 쉽게 열려 더 수월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거죠.
-jobsN, 남의집 대표 인터뷰 중-
남의집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키워드, 바로 ‘동네’이다. 우리는 호스트의 동네로 가서 즐기고 돌아오는 과정과 함께 동네의 매력도 발견하게 된다. 동네 골목골목을 구경하다가 나만 알 것 같은 멋진 공간을 발견했을 때, 그 어떤 유명지 여행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 적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000 한 달 살기’가 각광받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남의집은 공간 여행의 영역을 '집'에서 '동네'로 확장하여 로컬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로컬 큐레이터*를 선발하여 우리 동네에 매력적인 공간을 가진 이웃을 인터뷰하고 모임 콘텐츠로 기획하여 소개하는 프로젝트이다. 동네 가게 사장님의 경우, 그 모임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게를 소개할 수 있어 가게 브랜딩과 단골을 만들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요즘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상품과 서비스를 발견하면 바로 구매력을 보이는 '발견형 소비'의 시대이다. 남의집 또한 발견형 소비를 지향하는 로컬 콘텐츠로 구성한다면, 동네마다의 매력을 알리면서 동네 가게의 성장도 도울 수 있게 된다.
*남의집 로컬 큐레이터: 지역 내 나누고 싶은 취향이 있는 주민, 가게 사장님 등을 발굴 및 섭외해 남의집 모임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
앞서 말한 '로컬'의 힘을 키우는데 남의집이 기여하는 부분을 인정받아, 최근 당근마켓으로부터 10억 투자를 유치받았다. 당근마켓 측은 "지역 커뮤니티 생태계를 만드는 입장에서 남의집이 동네 생활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에 주목했다"라고 밝혔다.
남의집 사업 비즈니스를 재정립한 것이 이번 투자 유치에 한몫했다. 공간의 정의를 '집'에 국한하지 않고, 취향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의 장이라면 어느 공간이든 상관없도록. 그리고 '커뮤니티'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개인 취향의 총합체인 ‘집’에서 나누는 대화가 남의집 비즈니스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일반인 호스트 규모의 한계, 팬데믹으로 인한 직격탄이 호스트 타깃을 '일반인'에서 '동네 가게'로 변경하게 만들었다. 남의집 서비스 이용 행태도 타깃 변경에 일조하였다. 비 가정집에서 모임을 진행하는 케이스가 68%*였다고 하니, 결국 공간 유형이 주는 영향보다 취향을 나누는 과정에 더 매력을 느껴 서비스를 이용해온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 '집'에 매료된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비즈니스 지속성 측면에서는 당연한 결단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을 보면, 학교 회사와 같이 주로 소속기관 중심으로 형성된 커뮤니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같은 취향으로 소속을 나타낼 수 있는 남의집이 신선하고 반갑다. 남의집과 함께하는 동네 가게 모임은 아직 참여해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원데이 클래스화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역시 대화의 온기가 중요하다. 남의집에서라면 비누 만드는 방법보다 비누 공방 호스트와 게스트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