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
400일 아이는 이래요
지난 8월, 돌이 지난 아이는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 부쩍 말수가 늘어 큰 소리로 엄마, 아빠를 찾는다. 또 배가 고프면 "맘마, 물" 등을 찾는다. 혼자 웅얼거리는 알아듣기 힘든 옹아리는 더 잦아졌다. 곧 걷기 시작할는지 걸음마 연습을 하고 싶을 때는 손을 뻗어 잡아달라는 시늉을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보일 때는 아이와 눈을 맞출 때 보이는 해맑은 미소다. 이때 까르르 소리 내 웃으면 여러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한순간 사라진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많지만,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내 일상 곳곳에 아이의 존재 자체로 얻는 기쁨이 많아서다. 24시간 육아를 하는 부모는 아이를 보며 얻는 행복감으로 그를 감당한다.
생후 13개월에 가까워진 아이는 혼자 잘 노는 단계에 이르렀다. 혼자 둘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누구든 옆에 붙어 아이를 봐야 하는 건 일상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변화는 각자 등하원을 맡고 있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와 산책을 한지도 한 달이 넘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수록 아이도 아빠와의 시간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이는 내가 출근 준비를 할 때, 혼자 앉아 장난감을 갖고 놀기도 한다. 주의를 끄느라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맞춰야 하지만, 사부작사부작 놀잇감을 갖고 논다.
이런 아이를 보면 대견하고, 또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부모는 매 순간 이 벅찬 감동을 반복해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순간에도 아이는 성장하고 있어서다! 아이가 둘 또는 그 이상이면, 아이끼리 놀아 부모에게 여유가 생긴다고 들었다. 조금씩 자유도가 늘긴 하지만, 아이가 하나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직접 키워보니 매일 달라지는 아이를 보며 놀라지만, 곁에 어른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아이가 제한된 단어지만 의사를 표현하면서 수월해진 면이 있지만 부모는 늘 곁에 있어야 한다.
"엄마, 아빠, 맘마, 까까, 00(친구 이름)" 등을 말하고, 몇 달 사이 발음도 더 또렷해졌지만 의사표현 범위는 딱 거기까지다. 당연하지만 먹고 자는 등 생리 욕구와 가까운 표현만 해낸다. 물론 이 조차도 놀라운 일이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도 여러 아이를 동시에 키워도 육아는 똑같이 어렵다. 물리적 피로는 피할 수 없는 덤이다. 육아 1년 경력자가 되면서 체득한 노하우는 육아를 더 쉽게, 한편으로는 더 어렵게 한다. 경험으로 쌓은 노하우가 상황을 해결하기도 또 그렇지 않기도 해서다.
지난주 비슷한 월령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내 친구 집에 방문했다. 아내와는 중 교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로 비슷한 시기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며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둘째가 우리 부부의 아이와 3개월가량 차이 났다. 아이 둘은 또 어떻게 키울까란 의문이 들었지만, 옆에서 보니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육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첫째를 키운 경험이 둘째 육아에 도움이 되는 건 큰 차이다. 그러나 돌봐야 할 대상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변화는 그 부담이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보였다.
그날 총 어른 넷, 아이 셋이 모였는데 어른이 아이를 하나씩 밀착 마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어리고 처음 만난 터라 비교적 얌전(?)했음에도, 어른 넷은 제한된 공간에서 아이를 곁에 두고 대화를 나눠야 했다. 그래도 운이 좋은 건 아내가 친구와 육아 관련 고충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아가 무방비 상태에서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공유할 친구는 힘이 된다. 어른 넷이 아이를 키우며 겪은 경험을 나눴지만 역시 답이 나오진 않았다.
실제 육아가 사례별 공략법이 없다는 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육아 전문가가 여러 채널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원하는 걸 찾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아이를 키우며 어느 순간, 여러 매체를 통해 얻는 지식이나 정보가 얼마나 그 역할이 제한적인지 깨닫게 됐다.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있다.
오늘은 아이의 400일을 일주일 앞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를 만나고 첫 400일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를 만나고 우리 삶은 요동쳤다. 아이를 만나고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아이가 '우주의 중심'이 된 많은 부모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제 또 시작이다! 매번 부족하지만 하루하루를 더 잘 버터낼 내구성을 길러야겠다고 또 다시 다짐한다. 지금도 오늘을 살고 있을 아이의 500일, 1000일을 기대하며 앞으로 가보자!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기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