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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Jan 05. 2022

같은 순간 다른 기억, 일기

나만의 이야기 마을

우리 꼭 틈을 내어 글쓰기를 하자고, 그 시작이 '일기' 라면 금세 써야 할 이유가 느껴질 거라던 어제 이야기를 잇는 글입니다.



# 반성보다 감정 기록
일기 스타일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왕이면 사건의 반성보다 순간의 감정을 남기려는 편이다. 아마도 학창 시절 일기장을 오랜만에 펼쳤을 때 받았던 충격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발견한 일기장 뭉치, 세웠던 연필이 쓰러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을 때라는데 그 안에 있는 건 온통 어둡고 외로운 어린 나였다. 내가 추억하고자 펼친 보물상자에 기록은 없고 윤곽 없는 어둠만 가득하다니, 그때의 당혹감이란!

# 내 앞모습 마주하기
감정을 쏟아낼 곳으로도 쓰되, 미래의 내게 선물이 될 좋은 순간을 남기는 통로로 활용하고 싶다. 낮동안 정신을 쏙 빼고 마구 헝클어지더라도 쓰는 동안은 반성을 위한 것이 아닌, 그냥 수고한 나를 마주해 들여다봐 주고 싶다.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는 나의 시간을 내가 쓰다듬고 온기를 넣어 내려놓는다.(그러니 자꾸 글이 따뜻해지는 역효과도 있다)(실상은 몹시 건조한 에피소드인데도)

# 각자의 기억

기록의 가치를 더욱 깨워주는 건 아이들이다.
엄마의 육아일기 마냥 뻔한 거 아니냐고? 아닐걸~~  아이들이 클수록 어찌나 세계관이 확실한지 지난 주말의 한컷을 예로 들어볼까나.

신년 인사로 절에 들렀던 지난 주말, 차를 한참 멀리 세워두고 꽤 걷고 있을 때였다. 계곡 그늘진 곳마다 꽁꽁 얼어있었는데 그 중간쯤 높이가 달라지는 돌 사이로 세차게 물이 흘러 주변에 작은 고드름 폭포를 이루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한참 서서 구경한 아이들과 내 기억엔 무엇이 남았을까?


그림 좋아하는 첫째는 얼음과 고드름을 그림으로 그렸고, 동시 좋아하는 둘째는 지난주 필사했던 <고드름 붓>에 그날 만난 강아지를 등장시켜 변형 시를 일기로 썼다.
그럼 나는? 이만큼 단단히 얼어버린 것(다른 무엇)도 과연 저렇게 다시 흐를 수 있을까 생각이 뻗어나가, 메이브 빈치의 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 중 '노년기를 먼저 지나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었지.

같은 순간에 있었으나 기억은 각자의 것이다. 
그러니 내게 뻔하고 당연한 순간일수록 그때 내 감정을 먼저 쓰고, 아이들 볼에서 춤추던 빛이 어땠는지 내 시선을 남겨놓자. 나중에 읽어도 분명 자꾸만 더 좋을테니 쓰기 위해 더 열심히 바라보게 되겠지.

 



메모장 조각들과 하루 일기들이 쌓여 이것이야말로 나만의 *이야기 마을이 되길 기대하며, 올해는 우리 한번 꾸준히 모아보기로 해요!

* 김초엽 작가가 <행성어 서점>에서 말한 '산뜻한 이야기 마을'을 부러워하지 않으리. 우리가 만들 각자의 이야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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