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카미노, 바르셀로나, 안달루시아, 카사블랑카,마드리드까지
더 미룰 수 없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닿았다. 본래 인내라는 덕목이 일천한 인사다. 팬데믹이 사라지기 기다리며 2년간 견딘게 기특하다. 팬데믹이 주는 공포가 발목 잡는데 한몫했으리라. 9월1일 새벽 1시 네덜란드 KLM항공을 타고 스페인으로 간다. 한국에는 11월25일 들어온다. 86일간 이베리아 반도를 누빈다. 포르투갈 남단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가볼 생각이다. 사하라 사막을 보고 싶다. 두 대륙을 오가는 여객선이 정상적으로 운행되기를 기도한다.
바르셀로나로 들어간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와 소설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도시에서 일주일 지낸다. 가우디가 창조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사폰이 그의 마지막 소설 <영혼의 회귀>에서 묘사한 스페인 근대사의 처참한 흔적을 확인하고자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부터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구엘공원, 팔라우 구엘까지 가우디가 평생을 세우고 가꾼 건축 예술의 극치를 보다니 설렌다. 책과 유튜브를 샅샅이 찾아봤다. 하다 많이 보다보니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가이드를 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
9월6일 아침 먹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지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35일 동안 800km 거리를 걷는다. 길 위에서 친구들을 사귈거다.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과 우정을 나누고 싶다. 스페인어를 배웠다. 어느정도 의사소통은 할 수 있을 정도다. 영어를 전공한 터라 소통에 지장은 없으리라. 요즘은 시간이 남는지라 일본어까지 배우고 있다. 어쩌다보니 어설프게나마 4개 국어를 구사하게 됐다.
산티아고 순례기는 여행전문지 AB-ROAD에 싣기로 했다. 순례 끝나는 콤포스텔라에서 원고와 사진을 보내기로 했다. 원고료도 준다고 하니 열심히 써야지. 장기간 도보 여행에 맞춰 짐을 싸고 있다. 32리터 배낭에 노트북, 전자책, 침낭, 옷가지를 구겨 넣고 있다. 짐 무게를 최대한 줄이려하고 있다. 상념과 회한의 짐이 마음 속에 이미 차고 넘친다. 짐이 무거울수록 여행은 고달파진다. 코로나의 기세가 꺽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주도 올레길을 걸었다. 제주도 올레길이 400km를 넘는 지라 연습삼아 걷기 좋았다.
순례를 마치면 포르투갈로 넘어가 북쪽 포르투에서 남쪽 리스본으로 내려온다. 포르투는 유럽 서쪽 끝에 숨겨진 보석이라 찬사를 받을 정도로 멋진 곳이다. 300년 전 돌로 포장한 도로를 지나고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이 세운 다리 아래서 버스킹을 들을게다. 해산물 요리는 질리도록 먹을거다. 인근 소도시까지 둘러본 뒤 리스본으로 내려온다. 빌 어거스트 감독이 연출하고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나온 트램을 타고 거리를 걷고자 한다.
포르투갈에서 열흘 간 보낸 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로 넘어온다. 세비야부터 그라나다까지 무어인이 세우고 기독교도가 닦아온 문명간 앙상블의 극치를 보고자 한다. 그라나다의 무어인이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군에 의해 북아프리카로 쫓겨날 때 허물지 말기를 당부한 이슬람 건축의 극치 알함브라의 궁전을 볼거다. 콜럼버스 시신이 안치된 세비야 대성당에 들른 뒤 스페인광장에서 플라멩코 길거리 공연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안달루시아 절벽 위에 보석처럼 박힌 도시들을 돌아다닌 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고자 한다.
코로나 탓에 이베리아 남부와 모로코를 오가는 여객선이 정상 운항할지 모르겠다. 해협을 건너면 사하라 사막으로 갈거다. 끝도 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 사막을 볼거다. 모래톱 위에서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석양도 눈에 담을 거다. 사막이 지켜워지면 카사블랑카로 이동한다. 험프리 보가드가 잉그리드 버그만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한 바에서 북아프리카에 걸맞는 칵테일 하나 마실거다.
모로코에서 열흘 지낸 뒤 스페인 심장부 마드리드로 올라온다. 레알마드리드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뛰는 음바페를 본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근대 스페인 최고의 화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게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제법 가야하는 대학의 도시 살라망카를 갈거다. 스페인 명문 대학들이 밀집한 도시다보니 젊음의 활기가 차고 넘치는 곳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평생 코르크로 밀폐된 내실에 갇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해 주옥 같은 작품들을 썼다. 천식 때문에 햇빛, 거리의 소요, 향수 냄새도 참기 힘든 탓이다. 그는 갇혀 살았지만 누구보다 여행을 동경했다. 그가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진정한 발견은 낯선 지역을 찾아갈 때가 아니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의 눈, 수백개의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서 수백개의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한국에 돌아올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볼 수있기를 염원한다. 일상의 답답함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