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를 사랑한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창조한 건축 예술의 극치
9월1일 공항에서 내려 T-10 교통카드 구입처를 찾느라 공항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30분가량 시행착오 끝에 구석에 숨겨진 담배가게에서 교통카드를 구입했다. 스페인에서는 담배가게에서 교통카드를 판다. 공항 직원들에게 묻고 다니느라 어눌한 스페인어는 엄청 썼다. 내가 할 말은 다 스페인어로 했는데 문제는 스페인 직원들이 광속보다 빠르게 구사하는 스페인어를 못알아 듣는 거다. 3개월 어설프게 공부했으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영어 반 스페인어 반 구사하면서 유심칩까지 구입해 장착하고 카미노하우스라 불리는 민박집을 찾아왔다.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부리나케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갔다. 오후 2시15분 예약했으니 늦으면 못들어갈 듯해 지하철 타고 서둘러 갔다. 도착한 시간은 2시5분. 입장까지 10분 남았다. 배고팠다. 비행기에서 부실하기 그지없는 와플과 콜라 먹은게 전부니 배고플만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 식당에 들어가 어설픈 스페인어로 "나 10분밖에 없어. 오후 2시15분에 입장해.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거 줘"라고 다급하게 재촉했더니 기적적으로 5분 만에 보키디요(스페인식 샌드위치)가 나왔다. 맛대가리는 진짜 없었다. 그것도 반만 먹고 뛰어갔더니 5분 늦었다. 비까지 내렸다. 느긋하기 그지없는 스페인 직원에게 물어볼게 있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기다리라고 엄중하게 말하고 생깐다. 물어볼게 하나 있으니 답하라고 윽박지르다시피하며 물었다. "나 늦어서 못들어가냐?" 그랬더니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느긋하게 딴청 부린다. 환장한다. 아무튼 들어갔다.
속터지는거 참고 입장했더니 헉~ 사진과 유투브로 미리 보고 갔는데 그럼에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충격적이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비 맞고 밖에서 한참 서서 탄생의 파사드를 멍때리며 봤다. 세밀하게 새긴 부조와 조각, 벽을 타고 타워 끝까지 뻗은 천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정신 놓고 보다가 오디오 가이드 지시를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반암으로 만들어진 4개의 주기동, 현무암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보주 기둥, 좌우측 회랑을 떠받치는 사암 기둥의 보여주는 직선의 기운이 나무처럼 뻗다가 천정에서 가지를 펴고 쪼개져 지붕을 버티고 섰다. 천정에는 삼각형에서 들어오는 빛이 스며들듯 제단 위에 흩뿌려지고 인공 조명으로 밝혀진 천정의 현란함은 천상의 아우라는 뿜어내따.
예수님이 못박힌 십자가 상 아래로 제단이 조촗하게 차리지고 그 양옆으로 형형색색의 스텐인드글라스가 은은한 반투명의 빛을 쏟아낸다. 탄생의 파사드 쪽 스텐인드글라스는 새벽 여명을 뜻하는 파란색 계통이라면 서쪽 탄생의 파사드 쪽은 석양의 오렌지, 주황색의 색들이 화려하면서도 정갈있게 벽을 수놓는다. 스텐인드글라스마다 순교한 성인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짓고 있는 영광의 파사드는 정문 모양을 그림으로 만들어 공사 현장을 둘러 가려놓았다. 이 문에는 '주여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뜻의 전 세계 언어가 새겨져 있다. 물론 한국어도 있다. 제단 뒷쪽에는 조그만한 예배소가 숨겨져 있다. 코로나 탓에 한번에 14명만 들어가게끔 통제했다. 작은 예배소가 자아내는 은은한 감동에 눈물 흘리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예배소 뒤로난 유리 아래도 지하 에배당이 자리한다. 사그라다파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은밀한 곳으로 사그라다파밀리아를 설계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게하고 짓기 시작한 안토니 가우디의 관도 자리한다. 가우디는 지나가는 전철에 치어 죽기 전까지 말년의 12년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 몰두했다. 그는 죽기 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완공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자기가 죽으면 이곳 지하에 묻어달라고 요청했다.
본당 관람을 마치고 뒷문격인 수난의 파사드로 나오니 온 몸을 지탱하는 다리 뼈와 근육 같은 뼈대가 힘있게 그리고 앙상하게 치고 올라가다가 갈비뼈를 연상시키는 헐벗은 기둥이 위로 뻗어올린다. 그 사이사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조각, 배신자 유다가 예수님에게 키스하는 조각, 새벽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담은 조각들이 곳곳에 새져겨 있다.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사실적으로 깎아냈다면 수난의 파사드는 후임자 수비라치 뜻에 맞춰 조각상의 추상성이 강화되었다. 수난의 파사드까지 봤으면 밖으로 나가야하지만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가대가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부터 영광의 파사드에 세워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설명까지 꼼꼼히 보고 촬영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나와 그라시아 거리까지 걸어갔다. 이곳에서 가우디의 다른 걸작 카스 밀라와 카스 바트요를 봤다. 걸작품에 틀림없다. 다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온 뒤라 첫인상은 밋밋했다. 내일 내부를 구경하면 달라지겠지. 그라시아 거리 끝에 카탈루냐 광장이 나왔다. 카탈루냐 광장은 비둘기 천국이다. 아이들과 비둘기가 어울려 광장 바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광장을 가로질러 람블라 거리를 타고 내려갔다. 한참 가다보니 노상에서 맥주, 과일 쥬수, 그리고 안주 등을 파는 거리 상점들이 늘어섰다. 길바닥에서 1000cc 이상 되는 맥주와 생선, 하몽, 타파스 같은 스페인 요리들이 곁들여져 푸짐했다. 보케리아 시장이 나왔다. 한식집 마시따는 문을 닫아 아쉬었다. 보케이라에서 과일 사서 먹고 썩힌 돼지 허벅지를 걸어놓은 가게를 보며 해변까지 나왔다. 그라시아부터 람블라 거리까지 걷는 내내 새삼스레 느낀 건 과감한 노출을 서슴치 않는 스페인 여학생들이었다. 자세하게 묘사하면 남사스러울 듯해 상상에 맡기겠다. 아무튼 꽤나 개방적인 아저씨가 보기에도 깜짝 놀랐다.
콜럼버스 동상에 바다를 보고 우뚝 솟아있다. 포구까지 오니 17유로에 배타고 바를셀로나 해안을 보는 티켓을 팔았다. 40분 동안 바다 쪽에서 바르셀로나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하나 덥썩 물었다. 아뿔싸~ 파도가 높이 일면서 배가 하늘로 2~3미터 떴다가 다시 아래로 처박허기를 반복했다. 20분간 파도에 시달려야 했다. 환호하는 어른들, 무서워 우는 아이들, 다시는 배 안탄다.
배에서 내려 지하철 타고 속소로 돌아왔다. 한인 민박에 장기투숙하는 한국인들이 두서너명이 있다. 오늘 들어온 윤현화씨와 친구 먹고 함께 몬주익성에 올라 바르셀로나 야경을 구경했다. 현화씨는 독일 베를린에서 일하고 있다. 귀국하기 전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를 둘러 보고 있단다. 아무튼 몬주인 언덕에서 내려다본 바르셀로나 야경은 그 유명한 몬주인 폭포 앞에 버티고 선 4개 열주만 없으면 서울 아경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은 남산 모양이었고 남산 타워를 연상시키는 탑이 조명을 밝히고 있었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방금 포르투를 다녀온 현화씨는 포르투와 비교해 바르셀로 첫인상이 밋밋하다고 한다. 내일 함께 구엘공원부터 바로셀로나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가 받은 인상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