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종주 46km 지옥의 고행

과신이 빚은 참사, 그리고 뒤늦은 깨우침..."조금이라도 더 단단해졌길"

by 이철현

오만이 사고를 부를 뻔했다. 자기 체력을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지리산 화대종주 내내 위기의 연속이었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부터 대원사까지) 46km 내내 한순간 쉬지 않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지옥을 맛보았다. 극악의 난이도였다. 발을 질질끌다시피하며 걸어야 했다. 오르막을 기다시피 오를 때는 허벅지가 터질 듯했고 가파란 내리막을 내려올 때는 무릎이 비명을 질렀다. 지난달 설악산 공룡능선을 비교적 쉽게 종주했던 터라 지리산 종주를 얕봤다. 공룡능선이 강렬하지만 짧았다면 화대종주는 극악의 난이도이면서 길고 길었다. 화대종주가 공룡능선 종주보다 세배는 길고 힘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일쑤였고 그러면 한참동안 널브러 있어야 했다. 온몸은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상하의는 땀으로 절었다. 다행스러운 건 체력이 바닥나 발걸음 떼는 속도가 느려지자 정신이 살아났다. 몸의 고통을 줄이려는 두뇌의 보상작업인가. 책상 앞 모니터를 대면해서는 혼란스럽기만 한 당면한 것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천왕봉에서 벌레떼 급습을 받으면서 목표나 성취 같은 것들에 대해 새삼스레 허탈했다. 중봉에서 만난 30대 초반 청년 탓에 화대종주로 얻은 자기만족이나 위안을 산산이 깨졌다.

지난 금요일 수영 한 시간 웨이트 1시간 마치고 집에 들어와 한 시간 자고 용산역으로 갔다. 밤 9시 25분 무궁화호 타고 구례구역까지 가기 위해서다. 새벽 1시 52분 구레구역 도착. 역 앞에는 시내버스가 주말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스레 영업하기 위해 나선 택시 기사를 외면하고 버스에 올랐다. 화엄사 주차장에서 내려 화대종주에 나선 등산객 4명과 함께 2시 30분 등산을 시작했다. 시골 교장선생님과 중년 커플, 그리고 내가 한조를 이루어 화엄사를 지나 등산로에 들어섰다.

화엄사 - 노고단 구간은 7km가량 급 비탈길이라 체력이 빠르게 소모됐다. 당초 예상과 달랐다. 수영과 웨이트를 마친 뒤 잠을 못 잔 채 가파란 비탈길을 오른 탓일까. 화엄사에서 코재까지 극악의 난이도다. 노고단에 가까스로 올라 한숨 돌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건 고난의 시작이었다. 노고단부터 토끼봉, 연하천, 벽소령, 세석까지 끝도 없이 오르내리는 능선 탐방로는 욕설과 한숨을 나오게 했다. 계곡 아래로 암석 폭포가 쏟아지는 듯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솟아오른 봉우리마다 치고 오르면서 34km 떨어진 장터목 대피소까지 가야 했다. 평지 34km도 하루에 가기 만만치 않은 거리다. 17시간 내내 걸었지만 장터목까지 가는 건 포기해야 했다. 세석 대피소에도 오후 7시 20분 도착했다. 대피소가 오후 8시 마감 인터라 잘 곳 찾지 못하고 오도가도 못할 뻔했다. 지리산 안내소에 연락해 장터목에서 3.4km 못 간 세석으로 대피소를 옮겼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선이었다.


라면과 햇반을 먹고 나서 물수건으로 얼굴만 대충 씻고 자리에 누웠다. 귀마개까지 꽂고 다음날 8시까지 잤다. 12시간가량 죽은 듯이 뻗었다. 등산객들은 새벽 2시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부산하게 짐을 꾸렸다. 참고로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을 원하는 등산객이라면 세석대피소에서 머물 것을 추천했다. 지리산 대피소 중 유일하게 수세식 화장실이다 보니 냄새도 없고 청결하다.

일요일 아침 몸이 가뿐했다. 발목과 종아리가 조금 쑤셨다. 아침 식사하기 위해 움직이다 보니 하체의 고통도 사라졌다. 햇반을 물에 말아먹고 천왕봉으로 출발했다. 장터목 대피소 지나자 몸속에 축적된 피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천왕봉까지 1.7km 남았다. 정상까지 가파르게 치솟은 비탈길을 한 발 한 발 올랐다. 지긋지긋하다는 느낌이 치고 올라왔다. 스틱에 몸무게를 분산시키면서 느리게, 그리고 밥알 하나씩 씹듯이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사투 끝에 천왕봉에 올랐다. 날벌레들이 헬리콥터 소리를 내며 정상에 모인 인간들을 떼로 공격했다. 하늘이 시꺼메질 정도였다. 영화에서나 볼만한 벌레떼의 공습이었다. 인증샷을 찍자마자 대원사 방향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지리산 정상에 머문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해 그 먼 고난의 길을 기어올라온 건가. 허탈했다.


천왕봉 지나면 내리막의 연속이니 오를 때보다 쉬울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천왕봉 지나 잠시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천왕봉(1915 m) 옆에 지리산 제2의 준봉인 중봉(1874 m)이 등산객을 맞이한다는 걸 몰랐다. 중봉에 오른 뒤 퍼져버렸다. 홀로 하늘 보고 누워있자니 30대 청년이 나만큼 힘든 표정으로 올라왔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하며 위안이 됐다. 그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경악했다. 그는 화엄사에서 출발해 중봉까지 10시간 만에 주파했다. 토요일 17시간, 일요일 5시간 걸어야 올 수 있는 거리를 잠도 자지 않고 10시간 만에 오다니. 걸어온 게 아니라 날아온 거다. 나름 화대종주에서 어려운 코스는 끝냈다는 자부심은 중봉 위에 쏟아지는 햇살에 땀이 마르듯 증발했다. 이 청년은 널브러져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캔디처럼 낱개 포장된 포도당 2개를 주며 “도움이 될 거다”하고 대원사 방향으로 사라졌다. 혹시 지리산 귀신이 아닌가 싶었다. 당연히 그 친구를 따라붙지 못했으니 다시 보지 못했다.

10분 누웠다가 이내 정신 차리고 발 밑을 내려다봤다. 녹음이 짙은 숲 속 곳곳에서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 올라 바람을 타고 흘렀다. 구름의 그림자가 숲 위를 넘실거리며 기어 구름을 쫓았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다리에 축적된 피로가 이내 걸음을 휘청거리게 했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해 숲 속 등산로에 있는 바위로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탐방로 내내 날벌레들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처럼 내 얼굴 주위를 윙윙 소리를 내려 돌았다. 끝까지 추격해오는 벌레들은 짜증과 피로를 가중시켰다. 날벌레들이 몰려드는 곳에서는 쉬기는 힘들다 보니 시간 맞춰 쉬지도 못했다. 치밭목 대피소까지만 가자며 이를 악물고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3.4km 떨어진 치밭목 대피소가 나오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침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에게 치밭목 대피소까지 멀었냐고 물었더니 그 등산객은 “당신 지금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헐~ 잠깐 쉬자고 앉은 곳에서 방향을 착각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간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발을 내딛는 것조차 힘겨웠다. 이러다 조난당할 것 같았다. 그 등산객을 자신을 따라오라 했지만 그를 따라갈 체력이 없었다. 그가 사라지자 다시 혼자 걸어야 했다. 그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다리 근육이 풀렸다. 자칫 조난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몸속에 숨은 체력을 마련 수건 짜듯이 모아서 발을 움직이게 했을게다.

천신만고 끝에 치밭목 대피소까지 오니 오후 4시가 훌쩍 넘었다. 대원사까지는 11km 넘게 남았다. 지금까지 시속 1.5km로 걷고 있으니 산술적으로 따지만 오후 10시나 돼야 도착할 수 있을게다. 다행히 새터마을로 빠지면 1시간 만에 닿을 수 있으거라는 대피소 직원 안내에 따라 새터로 나가 택시 타고 원지로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대피소에서 2km 걸어내려가니 이정표가 나왔다. 왼쪽으로 가면 대원사로 이어지는 유평마을, 오른쪽으로 가면 새터마을이었다. 계산해보니 유평마을 방향으로 가면 새터마을 방향보다 3.4km가량 더 가면 되었다. 치밭목 대피소에서 이정표까지 내려오는 길은 평탄해 걸을만했다. 지금 같은 내리막이라면 대원사까지 주파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유평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고 뛰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모른 채.

이정표에서 유평마을까지는 암석 덩어리를 깨어서 만든 지옥의 길이었다. 평탄한 길은 없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탈진 코스를 삐죽삐죽 암석 덩이가 잇대어진 길이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자칫 오른쪽으로 넘어졌다가는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할 수 있었다. 화대종주 코스가 하이라이트를 마지막에 숨겨둘 줄이야. 기다시피 하며 어두운 숲 속이 내달리듯이 걸었다. 휴대폰도 먹통이었다. 제대로 가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꼼짝없이 조난당할 수밖에 없는 위기였다.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남아있었을까. 자칫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 덕분일게다. 스틱마저 집어넣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면서 걸었다. 가파른 길이 나오면 기어서 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은 느닷없이 끝났다. 펜션들이 즐비한 유평마을이 나왔다. 포장도로가 이리 반가울 줄이야.


콜택시를 불렀다. 대원사 앞에서 보자고 했다. 유평마을에서 대원사까지 1.5km 아스팔트를 걸었다. 대원사 주차장 방면으로 걷다 보니 콜택시가 왔다. 원지 마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 남부터미널 가는 버스에 올랐다. 다리가 너무 아파 잠도 자지 못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멈춘 시간에 타이레놀을 사서 먹고 잤더니 서울에 자정에야 도착했다. 당분간 산행은 자제해야겠다. 무엇을 얻고자 고난의 행군을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늘 그랬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걸음을 재촉했지만 순간을 즐기며 살지 못했다. 세석까지, 천왕봉까지, 치밭목까지, 대원사까지 어디에 닿아야 한다는 목적의식만 가파른 바위 덩어리를 오르내르다보니 힘만 들었다. 그러다 몸이 지쳐 발걸음이 느려지니 여러 차례 널브러져 풍경도 보고 당면한 것들을 깊이 사색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터무니없던 고행을 마쳤으니 조금이라도 더 단단해졌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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