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5일(일) 게이 퍼레이드 중 맨해튼서 운전하다 지옥 체험
오후 2시 전 뉴욕에 들어왔다. 렌터카는 오후 6시 30분까지 반납하면 된다. 그전까지 걸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양키스타디움, 콜롬비아대학교, 할렘을 차로 다녀오려 했다. 첫 행선지 양키스타디움에 가는 건 실패했다. 일요일 경기를 보러 가는 행렬 탓에 조지워싱턴 다리부터 교통정체가 극심했다. 간신히 조지워싱턴 다리를 건너자 속이 뒤집어졌다. 서둘러 화장실에 가야 했다. 송곳도 박힐 곳 없는 차량 행렬을 뚫고 간신히 출구로 빠져나오자 한글 간판이 가득한 거리가 나왔다. 아무 곳에 주차하고 한국어 간판이 달린 식당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이 있었다.
평정을 되찾았지만 양키스타디움으로 가는 건 포기했다. 차를 돌려 허드슨 강변을 달려 콜롬비아대학교로 들어갔다. 중세 유럽풍 건물들이 느닷없이 솟은 도로로 들어섰다. 내비게이션이 콜롬비아대학 교정이라고 알리지 않았다면 그냥 유럽풍 건물들이 모인 곳이라 생각하고 지나쳤을게다. 주차하기 만만치 않아 교정을 한 바퀴 돌고 할렘으로 빠져나갔다. 흑인 밀집 지역으로 치안이 불안하기로 악명 높은 구역이던 곳이다. 지금은 아니다. 할렘이 달라졌다. 여기저기 흑인 홈리스들이 쓰레기통을 뒤집고 있었지만 나름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를 시민들이 별 걱정 없이 거리를 걷고 있어 미국의 다른 거리와 별 차이 없었다. 포틀랜드 거리가 훨씬 위협적이었다.
맨해튼 안으로 들어왔다. 뉴욕현대미술관과 록펠러센터까지는 탈 없이 들어왔다. 그 뒤로 지옥이었다. 웨스트 36번 근처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있어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섰다. 패닉에 빠졌다. 평상시에도 맨해튼에서 운전하기 힘들 텐데 여기저기에 게이 무리가 출몰하고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는 곳을 난생처음 운전하고 있는 것이다. 브루클린 다리에 가기 위해 강변도로를 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퀸즈로 가는 다리를 건넜고 다시 돌아오다 게이 퍼레이드가 열리는 곳으로 진입했다. 걸어가는 게 빠르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다가 브루클린 다리에 가는 것 포기하고 웨스트 48번가에 있는 허츠 렌터카에 가서 차량을 조기 반납했다. 게이 퍼레이드가 열리는 일요일 맨해튼에서 차를 모는 건 자살행위였다. 사인은 치사량을 넘어선 운전 스트레스일 거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선아와 함께 걷고 놀던 곳이다. 차량이 정신없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삼성전자 전광판을 보고 사진을 촬영한 추억이 생생하다. 해가 지고 있지만 타임스퀘어에는 인파로 북적였다. 온갖 인종이 뒤섞여 지인에게 또는 낯선 이에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게이들이 벌거벗고 지나고 웃통 벗은 근육질 흑형들이 위협적으로 몸통을 흔들거리며 오갔다. 뉴욕을 즐기려면 타임스퀘어에 와야 한다는 강박에 여기저기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일요일 저녁 전 세계에서 인구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 타임스퀘어일 게다. 타임스퀘어 강박의 포로 중 하나가 되어 전광판 계단 앞에 앉았다. 계단 아래에는 사방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인파를 배경 삼아 흑인 하나가 흥에 겨워 랩인지 말인지 구분가지 않는 말을 뱉어내며 춤추고 있었다. 피곤했다. 숙소로 돌아가 샤워한 뒤 자리에 누웠다. 내일부터는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겠다. 정처 없이 걷기에는 뉴욕에서는 볼 것과 할 것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