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끈다. 내가 평소 보던 주제와 전혀 연관이 없는 영상이 도대체 어떤 연결고리를 통해 나에게 도착했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그 날 내가 본 영상도 그러했다. 썸네일에는 한 아리따운 여성이 활짝 웃고 있었고, 그 미소가 너무 해사해서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영상을 재생시키고 나는 "어?" 라고 한 마디를 크게 내질렀다.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를 화면으로 보면 헷갈릴 법도 한데 그녀는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영상 속의 그녀는 너무나 우아했고, 조금 '부티난다'의 수준을 넘어 럭셔리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컨텐츠의 메인 테마도 여성 유튜버가 다루기에 다소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나에게 100개의 영상 중 99개를 소거하라고 하면 첫번째로 소거할 법한 테마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십수년만에 마술처럼 내 앞에 등장했다.
몇 개의 컨텐츠를 올리지 않고도 그녀의 채널의 모든 지수가 급상승하고 있었고, 수도 없이 달리는 댓글들은 거의 숭배에 가까운 찬양 일색이였다. 예쁘고, 부유하고, 상냥하며, 어딘가 전문적으로 보이고, 일반인은 절대 못해볼 경험들을 다양하게 하는 사람.
그 찬양받는 여성은 한때 나의 친구였었다. 중학교 1학년때 같은 반 동창이었던 그 애는 나와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 무리 중 1명이었는데,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났음에도 그 애에 대한 기억만큼은 진하게 남았을 만큼 어딘가 인상깊은 구석이 있었다. 그 애에게 첫번째로 받은 인상은 '우아하다'는 거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중학생임에도 왠지 우아하고 어른스러웠다. 활발하고 선량한 성격이라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면서도 공부도 제법 하는 편이었다. 눈에 띄게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는데 특히 웃는 게 예뻤다.
웃으면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이 정확히 반달 모양이 되었고, 특유의 인디언 보조개가 접혀 무슨 명랑 만화에나 나올 법한 표정이 지어졌다. 웃음 소리도 꽤나 특이하고 경쾌했다. 그 애가 웃으면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장래희망도 또래들 중에 겹치는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상당히 독특했는데, 훗날 유튜브에서 컨텐츠로 다루는 테마가 그 장래희망과 연관이 있었다. 그 친구를 포함해서 대여섯 명이 몰려 다니며 중학교라는 생태계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각고의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 애는 뭔가 거기서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무리에서 살아남는 것보다는 자기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훨씬 더 관심이 커보였다. 그러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면서도 남다르다고 늘 느꼈다. 그리고 그 때도 어렴풋이 느낌이 있었다. 왠지 집이 잘 살 거 같다는 느낌이. 어디서 정확히 연유됐다고 할 순 없지만 조금 있는 집안의 규수같은 그런 뉘앙스를 분명 풍기고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학군이랄 것도 없는 그냥 일반적인 여자 중학교였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저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생활 수준을 영위하고 있었기에 십수년만에 유튜브를 통해 그 애를 접했을 때 놀라기는 했다. 그래도 십 년 이상의 시간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자수성가하여 준재벌같은 삶을 영위하는 기적이 벌어지기에 어쩌면 충분한 세월이었다. 그래서 나도 진지하게 그 영상을 '믿어버렸다.'.
유튜브 채널이 화제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유명 티비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하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그녀의 화려한 삶과 이력을 집중 조명했다. 럭셔리한 무드의 원피스가 상당히 잘 어울렸다. 그 흔한 성형 수술이나 시술도 전혀 하지 않았는지 중학교때 봤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해맑은 반달눈의 웃음마저 변함이 없었다. 반가우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영화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배우 지망생을 티비에서 보는 경험은 종종 있었지만 그건 그렇게 이질적이진 않았다. 그들은 본인의 직업 때문에 출연한 거였으니까. 내가 알던 사람이 전문적인 직업이나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티비에서 등장한다면 처음엔 조금 놀랄 지라도 금새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던 사람이 갑자기 갑부 그 이상의 삶을 사는 부유함으로 유명해져서 티비에 출연한다면 순식간에 그걸 익숙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질감은 어쩌면 나의 육감이었을까. 그 방송이 방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리플리 증후군, 허언증, 부자 코스프레, 시청자 기만...여느 범죄 영화에서나 볼 법한 헤드라인들이었다.
그녀는 유튜브 컨텐츠를 통해 부유함을 연기하는 중이었다. 사람들도 감쪽 속을 만큼 상냥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화려한 삶을 소개해왔고, 그렇게 소개된 삶의 모습은 대부분 대단히 과장되었거나 없는 걸 진짜처럼 꾸며낸 것이었다.
나는 한때 친했고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한 사람이 순식간에 흥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되었다. 마치 생선을 먹다 가시가 걸리는 것처럼 그 일은 내 안에서 소화가 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에 대해 검색을 하게 되었다. 이미 그녀의 본명까지 커뮤니티에 올라온 상태였고, 학력부터 이력까지 지인이 아니고서는 절대 모를 역사들이 다 까발려지고 있었다. 그 글을 보니 아주 예쁘고 부드러운 총천연색의 돌이 구르고 구르면서 깨지고 으스러지고 벗겨져 흉기로 변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원래 원석을 다듬으면 매끈한 보석이 되어야 하는데 역으로 보석이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원석이 되어버린 느낌.
그 애가 사람들을 속이기로 마음 먹은 것은 저 역사에서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면 중학교때 보고 느꼈던 우아함도 연기였을까? 지금은 가까이 지내지 않지만 마치 가까운 사람의 심연을 마주한 것처럼 맘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그렇게 한 게 단지 돈을 위한 것인지, 평생을 갖고 가고 싶은 '우아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면 화차의 주인공처럼 화차에 올라타야만 하는 사정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게 죄인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온 건지, 상상력을 발휘하자니 무서워졌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을 한 번 보고나면 다시 보기 두려워지는 것과 비슷한 감상이었다.
"나 다시 돌아갈래!"
누구라도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 울부짖음에 가까운 외침을 기점으로 그의 역사, 그리고 그 안을 관통하는 시대의 역사를 거꾸로 훑고 나면 남는 것은 박하사탕이었다. 하얗고 순수하지만 쉽게 깨져버릴 것 같은 박하사탕. 박하사탕처럼 순수한 청년이 자신을 덮친 역사를 뚫고 가면서 비열해지고, 더럽혀지고, 부서져버리는 그 과정을 역으로 훑고 나니 심장 한 가운데가 뻥-하고 뚫리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패하고 일그러지는 일면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 애의 소식을 사회면에서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박하사탕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밟히고 깨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본 수많은 미소 중에서도 유달리 인상깊었던 환한 미소가 타인을 기만하는 무기가 되어 버리다니. 그 사건은 한 순간 뜨거운 감자처럼 불타올랐다가 또 다른 이슈에 조용히 묻혀버렸지만 내 마음에는 날카롭게 꽂혀버렸다.
내가 커뮤니티에서 본 글에서 다룬 그녀의 역사가 100퍼센트 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한 지위가 필요했다. 그리고 꿈에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늦어버리거나 비틀린 상태에서 그 꿈을 이룬 것만 같은, 그런 달콤한 꿈을 꾸고 싶었던 것 같다.
돈은 차갑고 무자비하다. 체스말을 다른 체스말로 넘어뜨리는 것처럼 너무 손쉽게 한 인간을 붕괴시킨다. 그리고 그 붕괴의 끝은 으깨지고 부서지면서 날린 무수한 파편들이 사방에 날리면서 다른 체스말들을 할퀴고 피흘리게 하는 것이다. 그 애의 붕괴되어버린 삶을 보면서 나는 왠지 작은 파편에 찔린 것 같았다. 피가 철철 넘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만 건드려도 쓰라려오는 내면의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타인들에게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저 그런 예쁘장한 사기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에서는 사기 범죄는 더 이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만큼 너무 흔해 시시한 얘기가 되어버렸으니. 그러나 나에겐 깨트리기 싫은 박하사탕이었고 내가 지녔던 순수의 한 장면이었기에 그 이야기가 시시하지 않았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분별하기도 어려운 유튜브 속에서 나는 한 사람의 진실과 가짜를 동시에 보았다.
아직도 유튜브에서 처음 영상을 틀자마자 본 환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중학교 때처럼 진실되고 순수한 '무죄의 웃음'을 연기하기 위해 내면에서부터 겨우 에너지를 끌어 올렸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슬퍼진다. 적어도 내가 봤던 때에는 진짜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는데, 어쩌면 그 때도 심연에서는 불안이 이글거리고 있었을까. 그렇게 크게 화제가 된 이후로 그녀의 소식은 따로 업데이트된 것이 없다. 그녀는 사회적으로는 명백하게 단죄되어야 하는 악인이지만 조금은 걱정이 된다. 다시 화차에 올라탈까봐.
이 밤중에, 딱 이 시간에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도시의 밤은 때론 낭만적이지만 때론 한없이 차갑다. 차가운 밤의 온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어디서 더 부서지고 붕괴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이럴 때의 상상력은 위험한 것이니 이만 접어야겠다. 중학교때로 돌아가서 그 미소를 한 번만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그때만큼은 그 우아하고 화사했던 미소가 진짜였기를 내심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