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커밍아웃을 한 이유

by 아임낫체리

나의 스무살은 싸이월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개인적이며 폐쇄적인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던 싸이월드는 집보다 더 집같았고, 그 집에는 소수의 사람이 오고 갔다. '파도 타기'를 통해 가끔 뜻밖의 인물이 방문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고등학교 1학년때 나름 친하게 지냈던 동창이 방문해서 방명록을 남기고 쪽지까지 보냈다.

질풍 노도의 사춘기를 여자 중학교에서 보낸 후 나는 다시 여자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내게 되었다. 신설 고등학교였는데 담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남자 고등학교가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운동장에 낯선 젊은 남자가 등장하면 학생들은 모두 창가에 매미처럼 들러붙어 "와, 남자다!" 하며 환호했고, 체육 시간에 담벼락 너머로 남자 고등학교의 축구공이 넘어오면 수줍어하며 공을 던져 덤겨주곤 했다. 얼마나 이성이 고팠는지 학생들이 교실 창문 방충망을 뜯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언니와 둘만 커오며 여중 여고를 다니게 된 나에게 남자는 거의 외계인에 가까운 존재였고, 여자들만 바글바글한 그 환경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고등학교는 오직 수능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 같으면서도 그 안에 수많은 드라마가 존재하는 독특한 곳이었다. 한창 이성 문제로 고민해야 할 때 여학교로 강제로 배정된 우리들은 조금 더 개별적이거나 남다른 관계의 고민들을 갖게 되었다.

6년의 여학교 생활 동안 늘 존재하던 것이 동성애에 대한 루머나 고민들이었다. 체육을 잘 하고 머리가 짧은 여학생을 따라다니며 선물을 주는 후배들도 있었고, 아예 여자이기를 포기한 것 같은 학생도 있었다. 아예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히는 학생 그룹도 있었고, 평범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머리를 자르더니 성지향성이 바뀌었다고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혼란'에서 비롯되었다. 수능을 위해 목숨바쳐야 하는 신분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다 혼란스러울 시기, 우리 모두는 성에 대한 여러 가지 혼란을 겪고 때론 열병처럼 그 혼란을 앓고 있었다. 나 또한 여자들 속에서만 지내니 한 두 번 친구와의 우정이 어떤 감정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현상이었다.

나에게 스무살이 되어 싸이월드로 연락한 동창은 그런 혼란을 전혀 겪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친구였다. 적당히 사교적이고, 적당히 유머러스하며, 그렇다고 나대지도 않는 둥근 성격의 평범한 여학생. 내게 남은 이미지는 그게 다였다. 우리는 초반부터 친하진 않았고 1학년 중후반쯤 친해졌는데 아무래도 유머 코드가 맞아서였다. 둘은 매일 낄낄대며 별 것도 아닌 걸로 웃어댔고,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며 나름대로 친하게 지냈다. 그렇다고 절친을 맺을 만큼 깊게 친한 것도 아니어서 2학년이 되고 사이가 바로 소원해졌다. 가끔 연락을 주고 받거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던 그 애가 몇년 후 싸이월드를 찾아와서 날 찾았고, 나는 그냥 형식적으로 인사만 했다. 그런데 자꾸만 방문해서 내게 자초지종 설명 없이 만나자고 했다. 우리가 그렇게 오랜만에 아무렇지 않게 만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나.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이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 돈을 빌리는 것이거나 다단계에 끌어들이려는 거라는 말은 그때도 있었다. 나는 어쩐지 경계심이 들어 항상 싱겁게 시간나면 보자고만 답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보자는 연락이 오니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서 크게 내키지 않은 채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

몇 년만에 만난 그 애는 고등학교때 모습 그대로였다. 또래보다 조금 큰 키에 동그란 안경을 낀 그냥 어느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아이의 모습.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고, 자꾸 보자고 하는 걸 은근히 내친게 미안해서 반갑다기보다 어딘가 불편했던 만남이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근황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인근의 뷔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대화들이 오고갔는데 어딘가 허전한 빈틈이 느껴졌다. 멍한 표정의 그 애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빙빙 둘러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서 그 어색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 사실 너한테 말 못한 게 있어."

나름대로 밝게 얘기하던 그 애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약간은 비장해졌다. 순간 등이 쭈뼛 서며 뭔가 겁이 났다. 오랜만의 연락, 지속적인 만남 종용. 일반적인 얘기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나 사실은...여자 좋아해."

사실은과 여자 사이의 여백이 실제로는 몇 초였겠지만 체감상은 몇 분으로 느껴졌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고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타인의 커밍아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내 안에는 메뉴얼이 없었다.

"만나고 있는 여자도 있어. 둘이 6개월째 동거도 하고 있어."

차라리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으면 자연스러웠을 흐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애는 자신의 성지향성과 연애 현황을 내게 밝히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둘 사이를 축하한다고 했고 이해한다고 했지만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그 고백의 대상이 왜 하필 나인가? 갑자기 몇 년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커밍아웃인 걸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때는 살짝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고백이었다. 그 애는 말을 뱉는 순간 속이 후련했겠으나 그걸 들은 나는 소화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어색한 만남이 끝나고 집에 가서도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한 사람의 비밀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무거운 짐 한 쪽을 같이 들어줘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 따로 만나지 않았고, 가끔 싸이월드로 연락을 주고 받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 일이 있은 후 수년간 나는 가끔 그 일을 떠올렸다. 그 일만 떠올리면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겐 다소 생소한 일이었다. 그 후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종종 커밍 아웃하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다 온 한 여직원이 점심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본인이 양성애자라고 커밍 아웃하는 일도 있었고, 게이인 것을 당당히 밝히는 남자 친구와 친해진 경우도 생겼다.

스무살 때 받은 쇼크가 있었기에 그들의 고백에 그만큼 놀라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성애는 예전만큼 낙인이 되는 일도 아니게 되었고, 더 이상 놀랍거나 신기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커밍 아웃도 지루한 일이 된 서른 살 무렵 갑자기 그 고등학교 동창에게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꼬박 10년 만이었다. 잘 지내냐는 식상한 인사였지만 나는 어쩐지 긴장하게 되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 애가 링크 하나를 보냈고, 그 링크는 모바일 청첩장 주소였다. 모바일 청첩장에는 또래 남자와 그 친구가 활짝 웃으며 찍은 웨딩 사진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그 애의 커밍 아웃이 평생 가져갈 의문 중 하나였는데,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고백 공격'이었다.

우리는 스무 살 그 날의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일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축하한다고 했고, 그 애는 시간 나면 결혼식에 방문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그때 그 일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나 또한 애써 자연스러운 척을 하며 성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다시 한 번 그 날의 마음 속 소용돌이를 경험해야 했다. 이 애는 왜 자꾸 오랜만에 나타나서 날 놀래킬까?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길래? 적개심이 살짝 들 정도였다.

몇년 후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받은 것이 그 애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나는 최대한 가겠다고 했지만 그 재혼식에 가진 못했다. 그 애는 내 마음에 비뚫게 꽂힌 비석같은 것으로 남았다.

매일 에세이를 쓰기로 하면서 내 살아온 삶을 훑어보니 그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무 상관 없는 나에게 왜 커밍 아웃을 해야만 했는가.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던 그 의문이 지금의 내 고민과 맞닿으면서 갑자기 풀리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풀렸다기보다 내 스스로의 답을 끼워맞추는 것이겠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그런 자기 고백을 해본 적이 있는가. 성지향성이 아닐지라도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나는 왜 수많은 비밀을 품고만 있는가. 심지어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할 때도 나는 진정으로 마음 깊이 품고 있는 비밀를 고백하진 못했다.

낙인찍히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그게 어쩌면 전부였다. 솔직한 자기 고백은 어쩌면 내가 평생 해내지 못할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그렇다면 반드시 자기 고백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비밀은 사람을 부자유하게 만들고, 때론 치졸하고 치사하게 만들기까지 하는 거였다.

나에게 커밍 아웃을 한 그 동창은 세상에 자신을 던져 진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확인 또는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증인을 나로 택한 이유는 그야말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진 않더라도 그냥 듣기만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어서였을 것이다. 아마 나 말고도 몇 명의 사람에게 그런 고백을 했을 것이고 청첩장을 돌릴 때도 무안함을 무릅쓰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그 자리에 서있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친구가 문득 부러워졌다. 나는 솔직한 사람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남모를 비밀도 많고 그것을 세상에 고백할 용기도 없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는 게 죽어도 싫어서 나는 자기 고백 보다는 늘 속앓이를 택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얘기하고 보여주는 그런 진솔함을 늘 동경만 해왔다.

다른 사람에게 커밍 아웃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애가 동성애자인(였던) 사실이 바뀌진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하지 않았으면 모두가 그냥 그 애를 평범한 한 사람으로만 인식하며 속 편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커밍 아웃을 함으로써 그 애는 자신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영혼의 자유를 얻었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어쩌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커밍 아웃을 한 적이 없다. 사회와 타인에 맞춰 어느 정도 적절하게 정제된 모습으로만 살아왔고, 그것을 위해 생각보다 큰 에너지 소모를 해야만 했다.

나도 남을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내 자신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내 앞에 당도한 가장 어려운 난제이다. 이렇게 내가 진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에세이로 적는 것조차 나에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친구를 어쩌면 이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이기심은 때론 필요하단 걸 느낀다.

세상에 온 몸을 던져 내 치부나 본질을 고백하는 것.

그리고 기꺼이 날아오는 돌을 맞는 것. 돌을 맞아 찢어진 상처에 대한 아픔보다 나 자신으로 당당했다는 쾌감을 더욱 만끽하는 것.

내게 던져진 이 삶의 과제는 그 친구가 내게 줬던 짐의 무게보다 5배 정도 더 무겁다.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되더라도 기꺼이 나를 던질 용기.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이런 용기를 가지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꾸미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적어내는 것. 글을 쓰면서도 종종 진솔할 수 없었던 나에게 그 동창의 기억은 회초리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너무나 엉망인데 그것을 드러냈을 때 받아줄 곳이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안아주고 당당해지라고 격려할 수 있겠는가로 바꿀 시점이다. 오늘도 그 과제를 해내기 위해 하나의 작은 숙제를 이렇게 제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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