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이 멀어서 헤엄쳐서 갑니다

by 아임낫체리

이사를 앞두고 나는 습관처럼 지도 어플에서 인근의 수영장을 찾았다. 차량으로 6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도보로는 무려 1시간을 가야 한다. 나는 남편이 없는 한 뚜벅이 생활을 해야 하기에 이번에도 도로 연수를 하드하게 받기 전까지는 수영장을 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 살고 있는 신혼집도 수영장이 멀어 매번 그리워하면서도 다닐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수영장은 딱 3번 다녀봤다. 초등학생 시절에 2번, 그리고 30대 초에 1번 다녔다. 세 번 다 짧은 기간이었다. 초등학교때는 대형 마트 내에 있는 수영장에 다녔는데, 마트 1층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해피밀 세트를 먹는 것이 수영하는 것보다 더 설렜던 기억이 있다.

수영이나 자전거는 어릴 때 배워놓으면 몸이 기억해서 오랜만에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데 성인이 되어 수영을 할 기회가 생겨도 난 수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물에 떠보려고 애썼지만 겁이 나서 허우적대고 물을 먹기 일쑤였다. 물 공포증은 커녕 물을 갈구할 만큼 좋아하는데도 수영을 할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헤엄치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영장을 늘 가고 싶어했다. 수영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와 일정하게 짜여진 타일 바닥과 각진 수영장의 프레임. 수영장 자체가 주는 여러 감각적 자극들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퍼렇지만 푸르지 않고, 맑은듯 탁하고, 넘실대는듯 고요한 특유의 물결도 그리웠다.

30대초 잠실에서 혼자 살게 되면서 드디어 그나마 가까운 수영장을 찾았다. 살이 쪘을 당시여서 수영복을 입기도 부담스러웠고, 도보로 20분 이상은 걸어야 하니 꾸준히 걸어다니기 편한 거리는 아니라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한 번 용기를 내어 1:3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등록하게 되었다.

킥판을 잡고 몇 주 발차기 연습을 하다가 킥판 없이 헤엄을 쳐야 하는 순간이 되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물에 뜬다'라는 개념이 몸에 아직 새겨져있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이기에 어떻게든 진도를 따라가야 했고, 내 순서가 되자 무작정 몸을 물로 던질 수밖에 없었다.

몸이 물에 떴고, 얼굴은 물 속에 잠겼다. 그 순간 수많은 수강생들의 음성들이 음소거되고, 오직 어둑한 물과 바닥의 타일밖에 보이지 않았다. 옆 레일에서 헤엄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헤엄치고 있는 순간만큼은 오직 그 안에 나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자유형 연습을 했지만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늘 겨우 수업을 따라잡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자유형을 떼고 배형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다시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물 위에 누우면 된다는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데? 물은 몸을 집어삼킬듯 빨아들이는데 그 위에 누울 수가 있다고? 내 몸은 배형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허우적대다가 처음으로 배형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수영장의 하얀 천장이 보였고, 반쯤 잠긴 귀에서는 먹먹한 소리만 들려왔다.

물은 의외로 포근했다. 누우면 눕는대로 받아주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물 위에 누워있고만 싶었다. 레일을 따라 일자로 쭉 헤엄치면서 나는 다시 세상에서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묘한 감상에 빠졌다. 수영장은 차갑고 폐쇄적인 공간이지만 자유를 주는구나. 나는 그렇게 수영장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몇 달 수영 수업을 듣고 실력이 크게 늘진 않은 채 그만두게 되었고, 그 후로 가까운 수영장은 찾지 못하게 되었다. 수영장을 다시 다니지 않은 건 수업료가 너무 비싸서도 있었고, 일이 바쁘고 정신없던 탓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딸이 태어났고, 나는 딸과 수영장을 다니는 꿈을 갖게 되었다.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어서도 있지만, 수영장이 주는 특유의 포근함을 딸에게 전해주고 싶기도 했다. 양수에서 헤엄치던 아기를 태어난 직후 물에 두면 알아서 꼬물꼬물 헤엄을 친다. 아직 딸에게 수영을 시켜본 적이 없다. 수영장도 멀었고, 집에서 아기 수영장을 할 환경도 아니었다. 따끈한 물에서 헤엄치는 감각을 온전히 가지고 있던 그 시절에 수영을 시켜보지 못한 것이 끝끝내 남는 아쉬움이다.

물이 얼마나 포근하고 포용적인지, 무섭도록 자유로운지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도 그 감각을 다시 만끽하고 싶고. 1:3 수업에서 나비처럼 헤엄치던 초등학생을 동경의 눈으로 구경만 했었는데, 나도 날개뼈로 물 위를 나는 나비가 되어보고 싶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수영장에서 타임슬립이나 텔레포트를 하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인간적인 감각과 경험을 초월한 어떤 신비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직감. 그리고 수영장이 아닌 공간에서도 넘실대는 물 속에서 헤엄칠 수 있게 만드는 묘한 감각. 수영장을 그리워하면서 보내는 나날들 속에서 나는 늘 헤엄치고 있었다. 가끔은 지상을 걸어다니면서도 내가 물 속에 있는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물밖에 보이지 않는 고요한 세계.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나는 불꺼진 수영장에 혼자 있다. 물 위에 대자로 누워서 둥둥 떠다니며 천장의 깜빡이는 조명을 응시하고 있다. 번쩍이는 천둥번개가 물을 타고 흘러 온다. 나는 감전되지 않고 몸으로 흐르는 전기 위를 헤엄치고 있다. 물 속에 있는 나와 지상에 있는 내가 그렇게 물을 경계로 두고 마주하고 있다.

도보 1시간 거리의 수영장을 헤엄쳐서 갈 수 있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우스운 상상이다. 어디서라도 헤엄칠 수 있다면 더 이상 수영장은 필요가 없을텐데 나는 왜 수영장을 찾아 헤엄칠까. 일렬로 잡힌 레일을 쭉 따라가는 그 짧은 여정 속에서 나는 이세계로 가는 감을 익힌 것 같다. 머리도 마음도 시끄러울 때 무작정 도망칠 수 있는 곳. 떠다니는 나를 집어삼키지 않고 포근히 감싸줄 곳. 그 곳으로 어서 헤엄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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