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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정 Jul 02. 2019

1. 잘~ 사는 사람들  

성미산 마을 

방송작가 : 예능, 교양, 다큐작가 등 방송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구성,  섭외, 원고 작성 외 별의별 일을 다한다 해서 잡가(雜家)로도 불린다.

 방송작가는 늘 화면 뒤, 스튜디오 옆, 스텝 스크롤 자막에 숨어 있다. 숨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굳이 화면 밖으로 나올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다. KBS 예능프로인 1박 2일이 시작이었을까? 막내작가들은 출연진들 사이를 누비기도 하고,  프로그램 내에서 깍두기 같은 역할을 맡기도 한다. 메인작가들은 출연진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심지어 인터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예능과 케이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지역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등장은 아직 화면보다는 밖이 더 익숙하다. 물론 아닌 곳도 있을 테지만, 내가 촌스러운 건지 난 아직 화면 밖이 더 익숙하다.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내가 저 화면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 싶은 마음 따윈 추호도 없다. 저 영상 속 사람들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것. 이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길래! KBS 창원방송총국의 개국기념일을 맞아 '동네'와 관련된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기기억 저장소에서 <동네방네>라는 타이틀을 막 올려 보낸다.(참고로 마을은 고유어고, 동네는洞(마을:동)에 사람들의 집합을 의미하는 접사 '-네'가 붙은 한자어다. 고유어인 마을을 쓰라고 하지만, 동네라 쓸 때 어울리는 표현이 있고, 마을이라 쓸 때 어울리는 표현이 있다. 동네는 친근하고, 마을은 품는 느낌이다. ) 마을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키워드로 '잘 사는 마을'... 물질적으로 풍족한 부자동네가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가는 마을을 취재했다. 그러던 중 '성미산 마을'을 알게 되었다.


하늘을 뚫을 것처럼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도 작은 묘목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 성미산 마을의 시작은 작은 어린이집에서부터였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모여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만들었고,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함께 사는 마을이 되었고, 정말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라는 이름의 집을 지어 함께 살게 되었다. 마을공동체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성미산 마을을 취재하면서 '아! 저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1층은 가게로 함께 살이에 쓰일 임대료 수입을 얻을 수 있고, 2층은 공동주방으로 함께 밥을 먹는 공간이었다. 엄마가 퇴근을 늦게 해도 함께 밥을 먹을 언니, 오빠, 이모, 삼촌이 있었다. 밥 짓는 이모님을 고용, 그 비용은 입주한 사람들이 각출하고 재료 구입비도 공동으로 했다. 각자 장을 보고 상을 차리는 비용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버리는 음식이 줄고 외식이 없으니 식비 지출이 줄었다. 대부분 맞벌이 가정인데 퇴근  저녁을 차리는 시간이 줄어드니 가족 간의 대화의 시간도 늘어나고, 부엌일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만족도도 높았다. 3층부터는 함께 살고 싶은 가족들이 입주해있다. 공동 서재, 공동부엌과 같은 공유공간이 있으니, 집은 굳이 클 필요는 없었다. 없을 것 빼고 다 있는 소행주가 부러웠다. 부러우면 살면 되지? 소행주는 입주 조건이 있었다. 함께 살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했고, 회의를 통해 입주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규칙과 공동체 삶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함께 살이가 가능하다.


소행주에선 별명을 부른다. 어른도 아이에게, 아이도 어른에게, 낯설지만 흥미롭다. 어떤 별명들이 있었을까? 원고를 찾아볼까? 또다시 장기기억 저장소의 빙봉을 소환해본다. 그러다 핸드폰 연락처를 뒤적이다 '성미산'이란 단어를 눌러본다. 


 '가림토', '엘리스', '사슴'...   잊고 있던 빙봉들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가림토, 엘리스, 사슴 잘~ 살고 있죠?

성미산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고, 불량식품을 먹는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반찬가게가 있고, 성미산학교가 있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한식뷔페가 있고, 마을극장이 있었다. 취재를 한 날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마을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관객 역시 마을 사람들이었다. 연기는 서툴렀지만, 함께 웃고, 함께 즐겼다.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서울 하늘 아래, 이런 마을이 있다니! 영화 같고 비현실적이나 사실이었다. 나도 이 마을에 살고 싶다.   


함께 살아가는 건 생각한 대로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모으기란 모난 돌을 깎는 것과 같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10년 전, 이미 그 일을 시작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 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을에 살고 싶은 내 꿈은 10년 뒤...... 이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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