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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째붕이 Aug 19. 2023

치앙마이에서 생긴 이야기

인플루언서가 부러워한 제로 영향력의 삶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친해진 사람이 몇 있었다. 숙소 집주인 P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P와는 부쩍 친해져 P의 친구들과 함께 핏사눌록으로 여행도 가고 P의 가족들과도 가깝게 지내며 여러 날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C와도 종종 함께 밥을 먹었다. 여하간 여러 사람을 만났다. 즐기는 여행을 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와 교류를 하겠다는 의지도 전례 없이 0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긴 사람들과의 교류는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예상 밖인 일인 만큼 더 즐겁고 소중했다. 


여행에선 보통 현지인이 아닌 여행자들과 친해지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다소 긴 기간 동안 체류를 하다 보니 외부인보다 현지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더 많았다. 그중 친해졌던 태국인 중에 B가 있었다. 그는 팔로워가 38만이 넘는 인플루언서였다. 


B가 인플루언서라는 건 친해지고 나서 얼마 후에 알게 됐다. SNS를 하지 않는 통에 나는 38만이라는 숫자가 갖는 영향력에 대해 가늠할 수 없었고, 그 수치만큼의 놀라움도 느끼지 못했다. B가 인플루언서라는 사실은 그저 내가 낄낄대며 놀려댈 수 있는 조롱거리에 불과했지만, 내가 SNS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 38만이라는 숫자만큼의 놀라움을 주었던 것 같다. 내가 짓궂게 그를 놀려대는 와중에도 B는 종종 심각한 얼굴로 나를 향해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B가 인플루언서인 것을 알게 되고 나서 B의 핸드폰으로 SNS에 올라간 사진들을 살펴보다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이렇게 멋있어. 사진들은 모두 근사했고, 모두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얼굴들에서 가증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요즘 시대의 문법을 익히지 못한 문외한 같은 감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에 머쓱해지기 전에 B 역시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나를 따라 웃었다. 


배우도 가수도 아닌데, 단지 본인의 이미지 하나만으로 연예인 급의 파급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 극단적인 피상성이 나는 웃겼던 것 같다. 하지만 B가 SNS는 내 수입원이야 라고 말했을 때 나는 웃지 않았다. 부러워서는 아니었고(조금은 그랬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웠으니까, 밥 벌어먹고사는 일은 모두 숭고한 것이라, B가 그 말을 할 때만큼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장난을 좋아하지만 무례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조롱 섞인 놀림에는 모두 적절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장난과 달리 B의 질문에는 적절한 때가 없어서 무턱대고 날아와 나를 귀찮게 했다. 맥락 없이 해대는 질문에 나는 절반은 진지하게 답했지만 절반은 성의 없이 답하고 슬쩍 짜증도 냈다. 그때는 B의 질문이 너무 바보 같아서 짜증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선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준의 지식과 의지가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간, B의 질문들을 복기해 보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로 추려볼 수 있을 것 같다. 

SNS도 안 하는데 시간을 뭐하고 보내? (음...독서....?)

SNS도 안 하는데  그 스마트폰으로는 뭘 해? (음...검색...?)

SNS 계정도 없는데 여행하다 친구 사귀면 뭘 알려줘? (음....번호?라고 답했다가 대단한 노익장 취급받음...)

너는 온라인에서 없는 사람이잖아. 세상에서 고립된 기분을 느끼진 않아?

나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데(무심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너는 왜 그 관심이 필요가 없어? 나는 사람들이랑 연결된 느낌이 필요한데, 너는 왜 필요가 없어? 너는 왜?!


질문들은 이어지고 이어져, 내가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어떻게 외로워하지 않는지까지 당도했다. B는 궁극적으로 내가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B는 38만 명의 사람들 사이에 갇혀 질식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유롭고 싶어도 점점 더 종속되는 그 관계망 안에서, '좋아요'가 주는 숫자만큼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난 그냥 기질이 예민해서 남들보다 SNS를 더 피곤하게 느끼는 것 같아. 동기부여나 행복을 느끼는 데 있어서 피드백에 좀 무감한 편이라 SNS가 없어도 별 타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라고 답했을 때 B는 만족하지 못했다. 기질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그는 그게  "왜" 그런지 끊임없이 물었다. 


SNS는 눈앞에 진짜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게 만들고, 삶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내 인생과 정신적 건강에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제하는 거야. 나는 자존감과 자기절제력이 높아서 잘 통제할 수 있는 거고. 나처럼 되려면...... B는 이런 식의 답변을 원했던 것 같다. 


사실이기도 하고 또 재수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온라인을 포함한) 인간관계에 쉽게 피로해지는 내 기질 때문이라 대답했던 건데. 따지고 보면 타고난 성상 때문에 SNS를 멀리 할 수 있다는 답이 내 굳은 의지와 노력으로 멀리했다는 답보다 그에게는 더 맥 빠지는 귀족주의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B에게는, SNS에 거리감을 두고 싶은 애처로운 인플루언서에게는, 좀 잔인한 말이었으려나.


B의 질문들이 내게 다소 과도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태국인들의 SNS 중독 수준을 고려하면 그의 고민은 사실 지나친 일도 아니었다. 일단, 카페에 가면 평범한 사람들도 몇 시간이고 말없이 사진만 찍어대는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연남동 카페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여긴 그 수가 압도적이다. 앞서 언급한 P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도 나는 이 문제가 좀 심각하다고 느꼈는데, 모든 일정들이 사진을 찍기 위한 수단으로 느껴질 정도로 방대한 양의 사진을 찍어댔기 때문이다. 하루에 카페 3곳을 방문해서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던 날은 실로 공포체험을 방불케 했다. 이런 문화를 떠올려 보면 나를 향한 B의 미친듯한 질문 세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SNS에서 자유롭고 싶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늘어놓는 B를 향해, 나는 결국, 진짜 자유롭고 싶으면 이유를 찾지 말고 변화하기로 결심하라고, 이유를 찾는다고 변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사실 내 지론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냉정히 말하는 대신, 도파민 중독으로 설명될 일에 대해 자존감과 어린 시절 양육환경까지 들먹이며 이유를 찾는 건 과도한 일이라는 걸 좀더 차근히 말해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B는 정말 변화를 원했을까? 

B의 정신적 괴로움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그가 진짜 변화를 원하는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돈과 영향력은 취하되, 정서적인 압박과 불안감은 받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여러가지 이해타산을 따져보면 SNS를 끊는 게 정답일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이 한 가지는 안다. 사람이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작거나 큰 쾌락을 위해, 작거나 큰 우울감을 덤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 그 선택은 본인 몫이라는 것.



38만 인플루언서가 나의 제로 영향력의 삶을 부러워했다는 건 웃긴 이야기다. 그 질문과 고민들이 나를 향한 거대한 농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기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위안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내 존재감을 증명할 수 없을 때, 누군가 내 삶에 대해 그 진위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그래서 내가 가끔씩 잘못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때, 그때 다시 들려주면 좋을 이야기.

 

너도 나도 다수를 향해 영향력을 끼치는 시대에 제로 영향력을 가진 삶을 산다는 건 가끔씩 맥 빠지는 일이다. 

그러나 영향력은 없어도 편안한 마음으로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론 얼마나 좋은 일인지. 

사랑해 내 영향력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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