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여자친구는 주말을 끼고 친구들과 여행을 갔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은 오늘따라 약속으로 바쁘다. 평일을 힘들게 보냈으니 그저 잠을 자며 하루를 보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날이 너무 좋다. 이렇게 화창한 날 집에만 있기엔 어쩐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다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누군가를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인데, 그럴 사람이 없어 뭔가 더 외로워지는 기분이다.
문득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이 떠오른다. 사는 게 바빠서 한동안 들러보지 못했다. 간단한 짐을 챙겨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으로 간다.
너무 갑자기라 내가 올 걸 몰랐던 부모님은 나를 잠깐 반가워하다 본인들 일정이 있다며 외출을 나가신다. 냉장고를 뒤져 간단히 배를 채우고 마당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햇빛을 만끽한다. 마당이 아기자기 꾸며져 있다. 정성을 들여 집을 가꾼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것만으로도 부모님이 꽤 잘 지내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챙겨 온 책을 꺼내 읽으니 잠시 졸음이 몰려온다. 졸다 읽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저녁. 집에 돌아온 부모님과 따뜻한 저녁을 챙겨 먹는다. 부모님은 원래도 요리를 잘하시지는 못하지만 간만에 먹으니 꽤 괜찮은 식사처럼 느껴진다. 마당에 나와 불멍을 하니 부모님은 무심한 듯 간식거리를 챙겨주신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꽤 평화로운 저녁이구나 싶다. 집에 오길 잘했어, 역시 몸과 마음을 쉬고 싶을 때 잠시 들러가기 좋은 곳이야......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상상을 했다. 이 상상의 화자는 내가 아니다. 요즘 사춘기가 찾아온 큰아이가 주인공인데, 굳이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은 요즘 내가 한발 물러서는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씩 나와 부딪히는 아이를 보며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상상은 내가 바라는 나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나를 보러 자주 오지 않아도 좋다. 여자친구가 있다면 여자친구와 주말을 보내는 센스를 가진 녀석이길 바란다. 그래도 마침 약속이 없어진 어느 날, 딱히 만날 친구도 없는 어느 날, 날이 너무 좋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 아깝다 싶은 어느 날, 그런 날 이런저런 생각 없이 하루쯤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 필요할 때 나를 찾아와 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언제든 갑자기 들러도 부담스럽지 않게, 그 나름의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부모이면 좋겠다. 조금은 무심해 보인다 싶을지도 모르지만.
딱 그 정도 부모이면 좋겠다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정말 나에 대한 것들을 상상해 나가야지.
그러니까 이 글은 일종의 선언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