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남자를 데리고 집에 갔던 날부터 아빠는 말했다.
자네는 갯벌 속 진주를 발견한 거야.
아빠가 말하는 갯벌은 476-1번지. 회색 슬레이트 지붕에 기울어진 시멘트 담벼락이 처연해 보이는 우리 집이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길 꺼려했다. 오래되고 낡은 집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집을 보여주게 되던 날이면 다음 날 학교에 가기 싫을 만큼 부끄러웠다.
내 기억 속 오래된 집은 증조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시작됐다. 툇마루가 있던 초가집이었다. 쇠로 된
동그란 문고리를 잡고 창호지문을 열던 기억이 난다. 증조할머니는 호랑이 같은 성격에 아들을 끔찍이 여기셨지만 증손녀인 나를 좋아했다. 아마도 내 생각엔 같이 마실을 나갈 때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여기 우리 할머니 자리라고 요망 떠는 것이 할머니의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도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면 흙으로 된 집의 시원한 벽이 생각난다.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시원한 벽을 짚어가며 놀던 때가 말이다. 흙으로 된 집은 뜨거운 여름에도 서늘했다. 할머니 품에 안기면 호랑이 같은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 등을 울렸다.
네다섯 살 무렵 증조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병풍 뒤에 누워있는 증조할머니를 붙잡고 흐느끼던 친할머니를 보던 기억이 난다.
엄마 할머니 왜 울어?
어린 내 눈에 할머니는 우는 어른이었다. 할머니는 왜 울었을까.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에게 몇십 년 동안이나 지독한 시집살이를 당하고도 할머니는 왜 목 놓아 울고 있었을까.
병풍이 걷힌 자리에서 나는 할머니와 함께했다. 엄마아빠는 일하러 나가 없고 할머니는 나를 깨워 먹이고 입혀 유치원엘 보냈다. 밥을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리던 날엔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둘러 한 숟갈이라도 먹이고 내보냈다. 할머니는 바빠도 꼭 머리를 빗어 꽉 묶어줬고 나는 치켜 올라간 눈썹을 아래로 당기며 대문을 나서곤 했었다. 내가 학교에 올라갈 때도 졸업할 때도, 어느새 출근하고 퇴근하던 날에도 할머니는 늘 내 옆을 지켰다. 결국 할머니는 서른한 살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나를 키워냈다.
그렇게 수많은 역사가 담긴 476-1번지에서 나는 다정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아빠는 항상 미안해했다. 고모들서부터 너까지 보잘것없는 집에 신랑감을 데려오게 해서 말이라고.
나는 나를 키워낸 오래된 집을 사랑한다. 나는 그게 갯벌이던 바다이던 나를 키워낸 사람들의 품속으로 파고들고 싶을 뿐이다.
어제는 신랑과 집에 놀러 가 구들장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빠는 고기를 굽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싱글벙글이었다. 낮잠을 자고 해가져 선선해진 마당에서 둘러앉아 오이에 소주를 마셨다. 아빠의 말대로 내가 갯벌 속 진주라면 아빠는 바다이고 내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