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덕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숨기고 싶은 사실을 흙으로 덮어 묻을 수 있는, 나만 아는 무덤 같은 곳이다.
초등학교 5학년 명은은 한 학년 내내 자신이 잘 빚어놓은 거짓의 가정환경을 배경 삼아 반장 노릇을 한다. 젓갈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이 아닌 종이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와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인 어머니를 가진 가정환경 속에서.
명은은 곧잘 교내 글짓기 대회에 나가곤 했다. 주제에 대하여 정직하고 교과서적인 글을 씀으로 입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새로 전학 온 이란성쌍둥이 자매에게 글짓기 대회 금상을 빼앗기고, 어쩌다 보니 친해진 그 이란성쌍둥이의 솔직함에 영향을 받아 어쩌면 끝까지 밝히고 싶지 않았을, 완전히 솔직한 이야기를 써낸다. 결국 도내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쥔 명은은 5학년의 나이에 글쓰기에 대한 대가를 깨닫는다.
내 이야기를 써낸다는 것의 대가. 그것은 내 치부를 온 천하에 드러낸다는 것,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이 내 부끄러운 과거를 알게 된다는 것, 내 비밀은 더 이상 나만 아는 비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을 스물다섯이 넘어 체득했었다. 글을 쓰면서 나의 치부를 직시한다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또한 그 글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명은은 그 ‘거사’를 고작 초등학교 5학년 때 치른 것이다. 만약 5학년 명은을 마주할 수 있다면 숱 많던 명은의 머리칼을 정성스레 쓰다듬어주고 싶다.
내가 명은의 나이일 때 엄마는 휴대폰 충전기를 만드는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다. 아빠는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학원차를 몰았다. 명은보다 두세 살 많았을 중학생 시절 나는 담임선생님이 물어보는 질문에 어머니는 회사원이라고 답했고 옆에서 듣던 친구는 너네 엄마 물류센터 다니잖아,라고 말했다. 난 그 친구를 향해 아니라고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난 부모의 직업을 숨긴 명은의 마음을 너무나 알 것 같았다. 부모님의 직업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부모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명은의 엄마는 시장에서 줄곧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었지만, 나의 엄마는 공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장갑을 꼈다. 반장을 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명은의 엄마처럼 그것도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 아빠는 이일 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았고, 엄마는 그런 아빠 옆에서 시키는 일을 하며 살았다. 소젖을 짜다가 치킨 가게를 했으며 지금은 도배 일을 한다.
내가 가족에 대하여 직시하게 된 것은 스물다섯 처음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호기심으로 들어가 본 글쓰기 모임에서부터였다.
가족이란 내게 가장 소중한, 내게 가장 침울한 것이었다. 가족이란 사랑이기도 하며 치부이기도 했다. 사랑 말곤 굳이 내세울 것이 없었으므로.
내세울 것 없는 가족에 대해 쓰는 내내 후련했지만, 한편으론 솔직하게 쓴 나의 글이 가족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웠다. 그러나 가족에게, 그 옆에 있던 나에게 글을 보여주고 나니 편했다. 모두가 함께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단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듯했다. 엄마는 내가 없는 사이 책상에 앉아 내 글을 읽었고, 글을 읽던 아빠는 때때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단단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살얼음 판 같던 5학년을 보낸 명은은 6학년이 되어 가정환경조사서에 적는다.
아빠 직업:젓갈가게
엄마 직업:젓갈가게
고작 6학년이 자기 자신을 직시하고 인정한다는 것이 어찌나 부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