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는 글로써 사귄 벗을 말한다. 나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우라는 말을 몰랐다. 그 뜻을 알았을 때 문우라는 말을 아는 사람과, 또 문우를 두고 있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생각했다.
어제는 그 문우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치즈케이크를 들고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갔다. 겨울이라 해가 짧았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자동차 라이트에 비친 나뭇가지 위엔 소복이 눈이 쌓여있었다.
책방 문을 여니 커다란 책상에 둘러앉은 선생님들이 보였다. 그들은 나보다 먼저 모여 저녁을 먹고 온 상태였다. 자리에 앉으니 나의 글쓰기 선생은 차를 내어주셨다. 따듯한 루이보스 차였다.
우리는 둘러앉아 곶감을 뜯어먹으며 서로의 글쓰기에 대해 물었다.
못 보던 사이 한 선생님은 출판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소위 말해 돈 벌리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고.
글쓰기 선생은 대답했다.
책을 낸다는 건 나를 규정하는 일이에요. 당연히 글쓰기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다 선생은 눈을 돌려 나를 보더니 소희 선생님은 요즘 글 쓰세요, 물었다.
전 안 써요, 하는 말에 선생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나를 규정짓기엔 아직 어리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쓰다 보면 쓸 것도 없고 확신도 없고. 그럼에도 이들을 만날 때면 나는 쓰고 싶어 진다.
차를 마셨던 자리를 정리하고 선생님 댁으로 올라갔다. 선생님은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고 불을 피웠다. 그 옆에서 우리는 치즈케이크를 꺼내고 와인을 땄다.
따듯한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옆 사람과, 아니면 앞에 사람과 와인을 마시며 각자 자유로운 대화들을 했다.
두 번째 와인을 땄을 때 선생님은 이번에 낸 동시집을 집어 들며 말했다.
내가 쓴 동시 하나씩 읽어줄래요? 나 너무 내 자랑하는 건가, 선생님은 멋쩍은지 괜히 호호호 웃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동시를 하나씩 읽었다. 동시는 순수했고 말 그대로 일차원적이었다. 그러다가 시가 되는 순간이라고 하는 문장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곤 했다.
술을 마시며 읽는 동시는 처음이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순수한 것이 더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 선생님이 말했다.
“저는 사실 치유하지 못했어요. 그냥 이제 상처를 똑바로 볼 수 있을 뿐인 것 같아요.”
그 선생님의 말을 듣고 혹시 난 그동안 치유했다고 착각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는 자국이 남는 법.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난 그동안 상처가 지워졌다고 착각한 것 아닐까. 아니면 상처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 그게 치유와 같은 말인 걸까.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시곗바늘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돌아가는 길, 하늘엔 평소 같지 않은 불그스름한 반달이 떴다. 새삼스러웠다. 하늘에 떠있는 좀 다른 달도, 글로써 사귄 벗이 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