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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이 Jan 03. 2025

Step by Step, 우리집 전축의 추억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음악에 관하여'를 읽다가

 


Image by  pixabay



  초등학교 6학년, 정확히는 국민학교 6학년 봄에 새 집이 완성되었다. 겨우내 추위를 피해야 했지만, 오래된 한옥집이 있던 자리에 새 양옥집이 올라가는 동안, 내 방을 갖게 된다는 기대와 새집에서 살 수 있다는 설렘으로 두어 달을 기다렸다. 새집이 완성되고, 때마침 농협연쇄점(하나로마트)에 인켈에서 나온 모차르트 몇 주년 기념 전축세트 판매 행사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 3대가 도착했으니, 그중 하나가 우리 집 거실에 놓였다. 사촌 오빠네 싱크대 공장에 의뢰해 만든 옥색 문갑 위에. 


  양팔을 벌려도 닿지 않는 커다란 전축세트는 왼쪽 유리문을 열면 라디오가 맨 위에 있고, 그 아래 카세트가 두 군데, 그 아래로 CD플레이어 그리고 오른쪽 유리문을 안에는 LP 레코드와 선물로 준 LP판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스피커는 또 얼마나 큰지,  대형과 소형이 스피커가 세트로 양쪽에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열쇠까지 있는 유리문을 열면, 마이크를 꽂아 노래도 부르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도 할 수 있었고, 테이프 두 개를 나란히 넣어 복사까지 할 수 있었다. 자리를 꽤 많이 차지했지만 그래서 더 흐뭇해하셨던 아빠의 전축. 아니 우리 가족의 전축. 토요일 4교시를 마치고 집에 가면 항상 음악소리가 마당밖까지 우리를 마중 나오곤 했었다.

   박소현의 FM데이트 시간이 되면 공테이프를 넣고 노래를 녹음하느라 전축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노래 소개 멘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아빠는 거금을 들인 전축세트에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레코드 플레이어를 고모집에 가서 자랑을 하셨는지 큰 고모집에 있던 LP판 몇 장을 선물로 받아 오셨다. 그중에 변진섭의 LP판도 있었던 것 같다. 6개가 한 세트인 관광버스 메들리 테이프에는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한 명이 다 불러서 녹음을 했는데 원곡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노래였다사실 노래보다 앞 뒤 추임새가 더 많은 트로트 메들리는 가사보다는 몸을 흔들 수밖에 없는 쿵짝쿵짝 신나는 반주소리가 더 컸다. 엄정행 성가 찬송가와 '좋은 씨앗' 테이프도 큰 스피커로 들으며 교회에서 불렀던 음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언니가 준 카세트테이프에서 New Kids on the Block의 Step by Step을 처음 듣게 된다. 아마도 '나우'나 '맥스'처럼 여러 가수의 팝송이 들어 있던 테이프였던 것 같다. 좋은 곡들이 많았지만 1번 트랙에 있던 Step by Step을 처음 들었을 때 가사의 뜻은 제대로 알지 못했었지만, 그 멜로디와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Step by step, oo baby, gonna get to you, girl~"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도 알게 되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노래는 아빠만 좋아하는 줄 알았다. 춤도, 여행도 엄마는 관심 없는 줄 알았다. 엄마가 전축을 만지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농번기가 지나면 아빠만 동네 사람들을 관광버스에 태우고 여행을 갔으니까. 어렸던 우리 때문이 이었다는 걸 아이를 낳고 키우며, 친구 결혼식에 축의금만 보내야 하던 때에야 조금 알게 되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 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 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_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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