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만난 건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별일 없으시죠? “
이 말이 얼마나 감사하고 의미가 있는 말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별일 없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불안, 공포, 허망, 우울, 공허, 우려, 절망.. 이 모든 혼돈의 감정을 견디기 어렵고 애타는 마음이다.
마치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 준비된 선물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만난 건 정말 시의적절했다.
서서모임(슬초브런치3기)의 두 번째 책.
아직은 낯선 그 책을 하루 분량을 정해 곱씹으며 같이 읽자 했다.
처음에는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좋은 글귀가 있을까?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라고 선생님께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처럼 책을 잡아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건이 터지고 때마침 하루키 씨의 글은 맞물려 이 상황을 설명해 주고 위로를 주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 우리는 그 시간에 - 1995년 지하철 사린사건(옴진리교), 200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는 상황에 예루살렘상 수상에 나선 하루키 씨 - 살고 있었다.
사건의 형태는 달랐으나 본질을 같기 때문에.
혼돈과 불안으로 숨이 턱 턱 막힌다.
탐욕스러운 흉물들은 왜 우리에게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통을 주는지.
그들은 권력을 이용한 폭력과 불법을 일삼는데, 왜 우리는 민주주의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 끝없이 되새긴다.
"절대로 돼지랑 씨름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둘 다 진흙 탕에서 뒹굴게 되더라도 돼지는 그렇게 되는 걸 아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 찰리 멍거
외면하기보다 무엇이든 보는 쪽을, 침묵하기보다는 뭔가 말을 건네는 쪽을 선택한 하루키 씨.
그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있다는 그의 말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탐욕스러운 흉물들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커다란 벽을 세우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되겠다는 국민들의 처절하고 애타는 마음을 느꼈다.
참으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이 일을 예견한 듯 하루키 씨는 나에게 희망의 단서도 남겼다.
"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하며, 또한 냉혹합니다. 혹시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이길 가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그리고 서로의 영혼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는 걸 믿고, 그 온기를 한데 모으는 데서 생겨날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희망을 보았다.
살아 숨 쉬는 영혼들이 각자의 빛을 들고 모여 시스템을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시스템이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었다."
그들의 무차별적 파괴, 박해, 폭력으로 지리멸렬에 빠지기 바랐겠지만,
오히려 압도적인 다수는 그것으로 결속을 다지는 요인이 될 것이다.
가는 길마다 거센 태풍이 길을 막는 것처럼 번번이 우리의 노력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지.
그들의 계획대로 혼자였다면 상처받고 나약해져 꺾였겠지.
하지만, 우리는 강한 의지로 팔짱을 껴 단단하게 밀고 나아갈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흔들리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는 하루키 씨의 말처럼,
당신의 무차별적 훼손은 우리를 눈을 뜨게 하였거든.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절대 못 이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