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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이 Nov 23. 2024

반찬 배달

고시원에서 만난 인연

 세탁물을 찾으러 간 김에 장을 좀 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넉넉하게 이것저것 사 올걸. 

아이가 이모 선물이라고 준비한 쇼핑백을 친구에게 전달하면서 함께 가져다 줄 반찬을 만들었다. 전복을 넣어 미역국을 끓이고 소시지를 데친 후 케첩에 볶았다. 김치전 해 먹으려면 번거로울 테니 같이 갖다 줘야지. 계획에 없던 반찬 배달을 하려니 마음은 바쁘고 재료도 부족하고. 친구가 퇴근하고 저녁 준비하기 전에 배달 완료를 목표로 프라이팬을 돌리는 손목이 바쁘다.

친한 동네 이모, 아기 때부터 예뻐해 주고 빼빼로 데이라고 간식 꾸러미까지 보내온 이모를 위해 아이가 준비한 선물은 립밤과 핸드크림, 크리스마스 장식, 목캔디. 다이소와 올리브영을 오가며 혼자 골라온 선물이다. 



Image by Лариса Мозговая from Pixabay

 

  우리는 고시원 2인실 룸메이트로 만났다. 같은 거라곤 종교 하나, 지역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고시원에 온 목적도 달랐다. 누구와 친해지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내가 그녀와 첫날밤 클렌징크림을 문지르며 시작한 수다는 새벽에서야 끝이 났다.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온 친구와 취직을 위해 상경한 나. 그렇게 다른 목적으로 노량진 생활이 시작되었다. 고시원 총무로 있었던 선배찬스로 한 뼘이라도 넓은 방이 나오면 우리는 바로 방을 옮겼고 고시원 생활도 타지에서의 생활도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내가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헤어졌다가 백수가 되었을 땐 다른 친구들과 집을 구해서 같이 살기도 하고, 앞 길 깜깜한 시기에는 함께 새벽 택시를 잡아타고 새벽예배를 다녔었다. 각자 어두운 터널과 밝은 도로를 반복해 달리며 살다가 몇 년 전 내가 다시 이사를 하면서 한 동네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건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이사로 고민하던 차에 친구의 권유로 이 동네를 찾게 된 것. 




 


 부부의 인연만큼 친구의 연도 참 신기하다. 전혀 다른 곳에서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오다가 인연이 되어 가족만큼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게, 누군가를 만날 때 너무나 편하고 좋은 관계라면 상대방이 배려하고 있을 거라고 한다. 혹시나 내가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 힘들었던 청년의 시기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던 지난 시간들. 갑자기 불러도 모자 눌러쓰고 나가 산책하며 속상한 일 들어주고 털어 낼 수 있는 사이. 빈 주머니로 만나 커피 한 잔 얻어 마셔도 안절부절못하지 않고 갚을 날이 많아 편한 친구. 좋은 소식을 들으면 내 일처럼 기쁜 그런 친구. 좋은 인연 덕분에 우리 아이도 가까이에서 이모의 사랑을 받으며 지낼 있으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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