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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네텃밭 Nov 04. 2019

씨앗을 사지 않는 토종,
먹이사슬을 발견하는 자연농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 한 달에 한 번, ‘이달의 언니’를 소개합니다. 토종씨앗을 잇는 활동으로 씨앗의 권리를 찾고, 농생태학을 배우고 실천하며 자신과 주변 생태계를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과 주변을 살리는 언니들의 농사 이야기를 나눕니다. 네 번째 생산자는 언니네텃밭의 토종 지킴이, 서숙경 여성농민입니다.



삼광벼를 수확하기 전의 숙경 언니네 논


쌀은 그냥 단맛만 난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서숙경 언니가 처음 선보인 ‘삼광’을 먹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갓 지은 밥에서 꾹꾹 눌러 만든 누룽지 향이 나고, 막걸리를 담가보니 새콤하게 쏘는 맛이 어찌나 매력적인지요. 자신을 ‘양조장집 아들’로 소개했던 이가 삼광으로 담근 막걸리를 맛보고 표정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맛 없이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하게 올라오는 풍미를 느끼며 생각했습니다. ‘밥맛이 다르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하고요.

이렇게 맛있는 삼광벼를 생산하는 숙경 언니가 사는 고령은 ‘고령옥미’라는 브랜드의 삼광이 특산품이라 할 정도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삼광은 2003년 농촌진흥청에서 ‘최고품질 벼’ 품종 개발 연구로 만들어진 첫 번째 품종으로, 수량이 높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 유명하죠. 게다가 밥 맛도 좋아 숙경 언니 밭 주변도 온통 삼광벼를 재배하는 논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숙경 언니네 논은 조금 다릅니다. 삼광을 주력으로 키우는 중에도 열세 종류의 토종 벼도 함께 키우고 있거든요. 숙경 언니가 기르는 토종벼는 몇 단지의 논에 나누어 품종별로 100m씩 한 줄로 심었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낫질하며 수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숙경 언니는 왜, 인기 있는 삼광 논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고생스레 토종을 농사짓고 있을까요.



키가 작아 꼿꼿하게 서있는 삼광벼 앞으로 거칠게 누워있는 벼가 보이나요? 사람이 기르기 좋게 만든 개량종은 키가 작아 태풍에도 잘 버틸 수 있지만, 토종은 키가 큰 종이 많아 태풍이나 비바람을 맞으면 이렇게 쓰러지는 일이 많습니다.



종자를 한 번도 산 적 없는 16년 차 농민의 토종 이야기


사실, 숙경 언니에게 토종은 생각처럼 거창한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2003년 시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처음 경상북도 김천의 산촌으로 이주했을 때, 마을 어른들에게 농사도 배우고 씨앗도 받아 심었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다 토종이었다며 웃습니다.


들깨가 심긴 밭에서 포즈를 취하는 숙경언니
행정구역으로는 김천인데, 해발 700m 높이의 산촌에 살았어요. 마을엔 7가구밖에 없어서 어른도 몇 분 안 계셨는데, 그 어른들이 심으라고 (종자를) 줘서 심었던 게 돌이켜보니 토종이었죠.


농민으로 산지 16년, 그동안 씨앗을 얻고 자가 채종해 종자나 모종을 한 번도 산 적 없다는 숙경 언니. 처음에는 으레 그렇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농사였는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활동을 하며 농사를 짓다 보니 ‘토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토종을 지키는 운동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사명감을 갖고 토종을 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토종 씨앗을 지키고, 나누는 농민들의 모임 ‘토종이 자란다’의 멤버로도 가입했습니다. 토종이 자란다에서 여는 겨울 공부모임에는 아무리 바빠도 꼭 달려가고, 숙경 언니 역시 공부모임에서 종자도 얻어오지만 많은 종자와 농사 방법을 나눠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토종 농민들과 교류해 심게 된 ‘앉은뱅이 밀’로 선보이는 밀쌀과 국수는 언니네텃밭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식재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소농이기 때문에 반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는 국수. 농사와 농민운동으로 바쁜 와중에 밀을 맡겨 국수를 만들러 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매년 기다려주는 소비자가 있어 힘을 냅니다.


토종벼를 한 줄씩 심어 나락의 색과 높이가 다른 숙경 언니네 밭


삼광 주변으로 심은 토종쌀은 3년 전부터 짓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토종쌀을 키우기로 유명한 우보농장에서 쌀을 몇 종류 사서 먹어보고 토종벼 모임에서 13가지 토종 종자를 3g 씩 얻어 증식시키며 전량 언니네텃밭에 팔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 논에 한 종류의 벼를 심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언니네텃밭이 있다고 합니다.

“언니네텃밭은 가격을 생산자가 책정하고 생산자 위주의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많은 힘이 돼요. 경제적인 힘보다는 농민의 입장에서 소비자에게 알려주고, 소비자는 그걸 알아주니 정신적으로 힘이 되죠. (웃음) 그래서 토종벼를 사명감으로 지키면서 토종 농사를 늘리는 데에도 도전할 수 있어요.

언니네텃밭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들보다 많이 까다롭긴 하지만, 사정을 이야기하면 이해의 폭도 넓다는 숙경 언니. 바쁜 농사철에는 택배를 잘 못 보내기도 하지만, 농민의 바쁜 사정을 기꺼이 이해해주는 소비자들이 매일 자신이 먹고 싶은 품종으로 밥을 지어먹을 수 있도록 농사짓는 것이 언니의 목표입니다.





시골로 이주 하기 전 어린이책 전문서점을 했고, 시골로 이주하면서 어린이도서관을 하고 싶었어요. 서점을 하면 망해도 크게 안 망할 것 같고, 망해도 책이 남잖아요. 그걸 지금 거실에 모시고 살아요. (웃음) 





서점을 했을 땐 상가에서 서점 하고 방에서는 애들이 책 읽고 가고, 책 배달도 했죠. 일주일에 5권씩 빌려주고 갖고 오고. 그렇게 1년을 하니까 책 대여사업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으로 치면 북 큐레이션도 했어요.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으로 추천 도서를 소개하기도 했죠. 우리가 시대를 앞서간 부분이 있었네요. (웃음)
또 우리는 어린이책 운동도 함께 했어요. 그 당시에 전집이 유행이었는데 전집 불매운동, 통신판매 거부, 책값 할인 거부를 했죠.
전집은 끼워 팔기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작가 키우는 게 아니라 판권 사서
국내 작가 키우지도 못하고 외국책만 들어오고, 통신판매 할인해주니까 할인이 국내 작가, 서점, 영세 출판사 죽이는 거죠. 지금 농산물 가격을 후려치기 하는 것처럼요.





(김경수 농민) 우리가 농사지은 토종쌀로 담근 막걸린데 만들 때 만화책에서 보고 배웠어요. 그런데 다시 만들 수가 없네, 그 만화 제목을 까먹었거든요...





자연농, 순환농 방식으로 농사지어 왔는데 애들이 자연이 순환되는 방식을 스스로 알더라고요. 따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 교육도 ‘우리가 이렇게 살면 뭘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살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어요.






감자나 땅콩은 두더지가 한 번 오면 그냥 작살이 나니까 두더지가 싫어하는 꽃무릇을 심어둬야 해요. 따로 방제를 안 하는 대신 토종밭 군데군데 꽃무릇, 메리골드, 토종 박하를 꼭 심어둬요.






이제는 농사가 투기예요. 그 투기에 종자가 들어가니 농사의 이익을 따지려면 종자값도 거기에 들어가야 해요. 소비자는 모르겠지만 양파나 마늘은 종자 값이 비싸고, 농민들은 그만큼 농사짓기 힘들어요. 하지만 내 종자를 내가 보호하면 이런 것들에 대한 부담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농사지을 수 있어요. 토종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런 것도 있지만, 개량종자가 사라져도 다시 개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토종종자를 계속 갖고 있으면 기업에 의존 없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농사가 되죠.





전기도 없이 미니멀리즘으로 살았던

서숙경 가족식 마이웨이 산촌생활



첫 농사는 수렵, 채집에 가까웠어요. 산촌으로 들어가 채취할 것이 정말 많았거든요. 또 제가 밀양 출신이라 산 식물에 관심도 많고 잘 알기도 했고요.

겨울에는 고로쇠 수액을 받고, 봄에는 두릅, 취나물, 고사리를 뜯어먹던 김천에서의 삶. 심지어 처음 이주한 집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전기를 전혀 쓰지 않고 2년을 살았습니다. 이후에 전기가 있는 집으로 이주하게 된 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라네요.



그렇게 김천 산골에서 십 년을 살면서 사람답게 사는 건 자연 속에서 많은 생명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숙경 언니. 산촌에 살며 농민에게는 달갑지 않아 ‘유해조수’라 부르는 야생동물과도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본 멧돼지들은 부스럭 소리 내고 모른 척하면 알아서 가요. 사슴, 뱀… 사람이 지레 겁먹었을 때만 공격하죠. 뱀도 사람이 밟지 않으면 물지 않아요. 자연에는 사람도 살지만 앞서서 야생동물 터전이고, 같이 먹고사는 존재잖아요. 사람이 조심해야 하는 거예요. 알아서 인기척도 내주고요.



숙경 언니는 고령으로 이주한 지금도 여전히 달걀을 자급하고 있습니다.


경운 없이 농사를 지으면 가장 먼저 두꺼비가 나와요. 그 다음에는 뱀, 두더지, 쥐가 나타나죠. 두더지와 뱀이 나온 뒤에 멧돼지가 나오지, 처음부터 멧돼지가 나오는 법은 없어요. 멧돼지가 많이 나오면 지렁이가 굉장히 많다는 뜻이에요. 돼지들이 지렁이도 먹잖아요. 이렇게 자연스러운 생태계가 내 눈에 보여요. 김천에서도 지금 고령에서도 그렇죠. 이게 먹이사슬이 아닐까 싶어요.

소, 염소를 키우며 얻은 퇴비로 순환 농사를 짓고, 오골계 알은 일회용품을 안 쓰기 위해 볏짚으로 꾸러미를 만들어 판매했다는 숙경 언니. 이때부터 농산물 가격도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쌀값이 지금보다 쌌던 그 시절에도 쌀을 한 가마니에 15만 원씩 받았고, 농산물을 적게 산다고 더 비싸게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신랑이 느닷없이 1되 사는 사람은 2만 원, 1 말 사는 사람은 1되 기준 3만 원씩 받자는 거예요. 1되 사는 사람은 좋은 거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조금만 사 먹는 것 아니겠냐고요. 듣고 보니 ‘정말 그걸 먹고 싶지만 형편 안 되는 사람들 어떡할까, 그런 사람들은 수입농산물 먹어야 하나.’ 그런 고민에 그렇게 팔았어요. 많이 사면 더 비싸게요. 사람들이 이런 법이 어디 있냐 너무한다’하면서도 샀어요. 우리 농산물이 너무 맛있거든요.

첫 해에는 동네 어른들의 조언을 받아 비닐을 썼지만 이듬해, 주워도 주워도 땅에서 없어지지 않는 비닐 조각을 주우며 너무 속상해 울어버렸다는 숙경 언니. 그때 큰 교훈을 얻은 뒤로 비닐을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물 스스로의 힘으로 클 수 있도록 자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미니멀 라이프, 비전화 생활을 했던 거죠.
이런 방식이 여태껏 살아온 것 중 ‘가장 인간적인 삶’이었다 말하는 숙경 언니식 산촌생활. 언니의 가족은 6년 전 고령으로 이주한 지금도 TV 없이 냉장고와 선풍기, 세탁기 같은 최소한의 가전제품만 갖고 사는 검소한 삶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나의 일, 나의 자부심, 나의 여성농민운동



난 노동법도 내 일이어서 공부했고, 어린이책 운동도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였으니까 내 일, 지금은 농사짓는 것이 내 일이죠. 하지만 내 농사만 짓고 편하게 살 수도 있지만 그게 결코 편한 건 아니거든요. 내 삶이 궁극적으로 더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 여성농민운동도 하는 거죠.



숙경 언니는 노동운동으로 시작해, 어린이 책 운동을 거쳐 지금은 여성농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경북지역 사무처장을, 지금은 자주통일위원장을 맡고 있고요. 농촌과 농업분야에 많은 단체가 있지만, “전체 여성농민을 위한 활동은 전여농의 활동밖에 없다”며 이 활동을 고집합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 가서 급식을 먹어요. 근데 그냥 된 건 아니잖아요. 모르는 사람은 세상이 좋아져서 나라에서 급식을 먹네.’ 하겠지만  이면에는 우리가 했던 급식운동이 있어요. 우리가 만든 복수조합원제, 농민수당... 이런 것들은 내가 가만히 있으면 받는 혜택일지도 모르지만 자기를 희생하면서 활동했던 언니들 덕이죠. 여농 언니들이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주먹구구로 하기도 했지만 이게 여농의 힘이라 생각해요. 민주노총처럼 했으면 지쳐서 떨어져 나갔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이렇게 끈질기게 30년 동안 전여농이 있는 건, 내가 지치면 다른 언니가 하기도 하며 여성들이 서로를 위하고 희생하며 버텼기 때문이라는 숙경 언니. 언니가 농사만큼 운동도 열심히 하는 건 나와 농민이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운동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는 것이 숙경 언니의 지론. 농민이 잘 살아도 노동자가 못 살면 농산물을 사 먹을 수 없듯, 세상 일이 서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통일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앞으로 북한에 자유롭게 오가며 토종 종자를 교환하는 것이 통일운동을 하는 여성농민의 꿈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먹여 살릴 수는 있어


토종벼를 수확하는 날, 숙경 언니와 남편 김경수 농민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숙경 언니) 이걸(논) 보고 있으면 가장 좋아요. 작물이 크고 있을 때, 바람 불 때 괜히 와서 앉아있어요. 작물마다 느낌이 다 다르긴 한데 토종밭은 앉아있기만 해도 좋아요.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에 나락이 사각사각 움직이는 소리를 보고 듣고 있으면 너무 좋죠.”

(김경수 농민) 토종을 삼 년째 짓고 있는데 벌써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 줄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반대로는 농사짓는 나 자체는 매우 풍요로워요. 모든 사람들이 이런 풍요로운 마음속에서 살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살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업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자, 인간의 삶에 가장 중심이 되는 일입니다. 이 농업을 지키는 농민이 나라를 구할 수는 없지만 먹여 살릴 수는 있다며 자부심을 보여는 숙경 언니 부부. 무엇보다 농사를 지으며 자연 속에 있는 삶이, 자연과 닮아 사는 삶이 마냥 좋기만 합니다. 

그러면서도 농민도 생활인이기 때문에 살면서 돈도 필요하고, 판매가 안 되면 힘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농민이 사람들을 먹여 살리듯, 존재가 선명한 언니네텃밭과 소비자들이 농민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줍니다. 농산물이 품절되면 기다린다는 말, 활동가들이 때때로 전화해 안부를 묻는 말, 농사 지어줘서 고맙다는 말... 서로의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농사와 유통방식은 숙경 언니 부부에게 오늘도 농사를 잘 지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닿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농민들이 어렵고 힘들어도 계속 농사짓는 것 아닐까요? 특히 올해는 유난히 태풍이 많아 자연 앞에 인간의 존재가 하찮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언니네텃밭이 농민들에게 이렇게 힘을 주듯, 이제는 제도도 농민을 정책적으로 보호해줘야죠.



©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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