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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민 Nov 05. 2023

無題(무제) ep.01

늦어버린 22년의 10월

이른 아침 걸음을 재촉하며 일터로 나서는 길, 우연히 발견한 턴테이블을 직접 촬영한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함께했다. 실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연습을 하면서도 내내 마음이 기뻤던 그 곡. 쇼팽 첼로 소나타 G마이너와 함께. 근무지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걸음을 뜀박질로 바꾸어 달려가다가 3악장 선율에 눈물이 올라왔다. 아름다워서, 그래서 그랬다.


작년 가을, 예기치 못하게 가까운 거리에 있던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났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모두는 숨을 죽였다. 당시에 그날을 두고 많은 의견들이 오갔지만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에 섣불리 운을 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서가 없던 일상엔 질서가 부여되었고, 인파가 집중되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줄을 맞추어 걸어가게 되었다.’ 잃고 나서 생긴 질서, 그런 게 제일 슬픈 것 같다 ‘는 문장을 당시에 썼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렀고 침묵을 택했던 그 당시의 나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다시 꺼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주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외신에서는 사건을 파악하는 이런저런 기사를 보도했고, 당시 사건을 주제로 한 책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돌렸고,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묵혀둔 감정에 쫓기기 시작했다.


‘국가의 구성 요소는 주권, 영토, 그리고 국민인데, 그렇다면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그 구성원들을 사랑하는 것이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이 나라 국민 전체를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 ’ 결국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은, ‘평상시에‘ 누군가의 사랑이 다른 누군가의 사랑보다 덜 고귀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유사시에‘ 돈도 힘도 없는 이들의 사랑이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의 사랑을 지키는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그리하여 ’언제나’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러니까 평화를 함께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신형철 (2023) <인생의 역사> 161p ‘그런 애국심 말고 다른 것


오늘 아침 음악을 들은 첼로 소나타 중 3악장은 첼로와 피아노 둘 다 단순한 선율을 가지고 있고 빠르기가 느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완성도 있는 테크닉 보다 한 음 한 음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리의 높낮이를 세밀하게 살펴야만 하는 이 곡에 묻어있는 아름다움은 뒤를 돌아보게 하고 그를 위해 숨을 차분하게 고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아름다움을 느낀 나는 사실 정리하지 못한 생각 때문에 1년 전 그 자리에서 그 누구를 위해서도 진정으로 슬퍼한 적이 없어 부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내가 느낀 아름다움은 반쪽짜리였다는 것과 나머지 반은 애도에 묻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으려나. 늦게나마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는 일뿐이겠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싶다.


https://youtu.be/mIUPAWQIP4M?si=ruMGV7Cj9yIojoXY

Chopin Cello sonata in G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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