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이소라에 대한 단상
노래가 시작되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축 늘어진 한쪽 팔을 의자에 걸쳤다. 습관적으로 입 주변을 손으로 닦아가며 신중하게 노래를 이어 나갔다. 관객들은 이소라라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쉴 틈 없이 빨려 들어갔다.
너무도 집중했던 탓인지 가끔 툭툭 던지는 농담에 눈 녹듯 긴장이 풀렸다. 게다가 수백 번도 넘게 반복해서 들어왔던 노래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 그 믿기지 않는 사실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밀려왔다.
2년 전 겨울, 나는 이소라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순간을 되감아 보곤 했다. 마치 물건을 두고 온 사람처럼 기억을 자꾸만 들춰보았다. 그녀와 공유했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대체 무엇이 이토록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걸까.
질문을 곱씹어 보다가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노래에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삶의 내밀함이 담겨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랑이 주는 충만함을 노래하는 ‘Track 3’과 ‘청혼’, 슬픔을 털어내지 못하는 연약함이 담긴 ‘Track 7’과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가 있다.
나 또한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가사가 내 얘기처럼 들렸다. 한 살을 먹었을 때 지난해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어쩌다가 모든 걸 무던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시간이 흐르면 굳게 믿었던 마음은 왜 '한때'의 신념으로 변하는 건지. 눈에 밟혔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하나둘 놓아버렸던 질문들을 'Track 9'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중략)
- 이소라, Track 9
마음이 아플 때 찾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이소라를 말한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말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녀의 노래는 무언가를 발산하거나 터뜨리지 않는다. 수다스럽지 않은 고통이 실어 오는 노랫말은 마음을 따듯한 손길로 어루만진다.
어떤 날은 그녀가 왜 그렇게 고통스럽고 애절하게 노래하는 건지 궁금했다. 이를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책을 펼쳐 목차를 훑어보다가 반가운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문학으로서의 이소라 – 이소라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문학으로서의 이소라라니!”
곧장 그 부분을 펼쳐 단숨에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이소라는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불렀다. 그리고 해당 노래를 4시간 전에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했다. 원래는 ‘가을에 편지를 쓰겠어요’ 혹은 ‘아침이슬’을 부르려고 했으나 부를 수 없는 마음을 이유로 급히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별다른 반주 없이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불렀다고 한다.
그녀에게 노래는 곧 자기 자신이었다.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존중하는 그녀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스스로와 노래를 분리하지 않아 고통스러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한 마디라도 끝까지 품을 들여서 마침표를 찍었다.
본격적으로 내면의 어두움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세 번째 앨범 ‘슬픔과 분노에 관한’이었다. 그 이후로도 노래 속 그녀는 멀어져 가는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떠나간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이었다. 가령 애인과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바람이 분다'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소라는 아플수록 성장하고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의 고통은 수다스럽지 않다.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말할 힘이 없을 것이다. 없는 고통을 불러들여야 할 때 어떤 가수들은 울부짖고 칭얼댄다. 그는 그럴 필요가 너무 없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18, 88쪽.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렸던 스무 살 무렵, 성장통을 함께 겪어낸 이소라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셀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웠다는 걸. 고즈넉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오늘도 가슴에 자그마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1. Track3
2. Track8
3. 난 별
4. 믿음
5.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6. 바람이 분다
7. 시시콜콜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