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예술적 일탈을 상상하는 당신에게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또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멀리 떠나는 여행이 탈일상에 대한 욕구를 채워준다면 나에게는 연극이 그런 역할을 해왔다. 최대한 일상과 동떨어진 체험을 원했기 때문에 극장을 찾았다. 커튼콜까지 마친 뒤에도 다른 차원을 다녀온 듯한 이상한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매번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는 나에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사건은 반드시 발생한다. 그리고 사건 없이 극은 진행될 수도, 완성될 수도 없지 않던가. 이로부터 페스티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기대감과 떨림이 기인할지도 모른다. 축제의 현장에 모인 관객들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들, 그 사이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게 될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그곳에서 어떤 예술적 일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1947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는 피폐해진 인류의 정서적 단합을 위해 대규모의 국제 예술제를 창설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이었다. 이때 본 축제로부터 초청받지 못한 8개의 극단이 축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들은 주최측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그렇게 젊은 연극인들은 허름한 축제 주변부에서 독창적이고 자생적인 공연을 선보여 뜻밖의 호응을 얻어냈다.
저널리스트들은 이처럼 자발적이고 특별한 축제를 공식축제의 '주변부(fringe) 연극'이라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프린지(fringe)는 변방 혹은 주변부를 뜻하며, 문화적 의미로서의 프린지는 미래 지향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축제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프린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새로운 장르의 예술축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진행되면서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받아 점차 규모가 확대되었다. 현재는 세계 40여 개의 프린지 페스티벌이 매년 진행되고 있으며, 1980년 홍콩 프린지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아시아 지역에서도 프린지 페스티벌의 운영방식을 가진 예술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드디어 시작한다. 오는 8월 15일을 시작으로 8월 24일까지 10일간 진행되는 축제는 이색적이고 다양한 공연예술작품이 문화비축기지 곳곳에서 펼쳐진다. 본 축제는 1998년 독립예술제를 모태로 올해 22번째를 맞이했다. 이는 독립문화기반의 비영리 축제로서, 대안적∙실험적 문화예술에 대한 모색을 목표로 삼는다. 덧붙여서 필자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다양한 작품군과 프로그램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형식적으로 탈장르적 고민을 보여주거나, 주제적 측면에서 ‘주류적 가치’에 저항하는 전복성을 띠는 작품들이 대다수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차이와 다양성의 미학이다. 다양한 시도와 자유로운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창작환경을 마련해 줌으로써 ‘차이와 다양성의 미학’을 축제를 통해 구현하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한편 올해는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 기존의 남성 서사를 여성 서사로 새롭게 읽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배우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표현하는 1인 창작 혹은 공동창작의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이처럼 연극, 무용, 음악, 다원, 시각, 거리예술을 비롯하여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총 100팀, 1,500여 명에 이르는 예술가들이 공간 곳곳을 채울 예정이다.
문화비축기지라는 새로운 공간
축제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간에 대한 실험이다. 과거 석유비축기지였던 공간을 예술 아지트로 탈바꿈한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지난 5년간의 서울월드컵경기장 프린지를 마무리하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문화비축기지라는 공간을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는 장소의 맥락을 빌어 작품의 내용을 전달하는 예술계의 흐름과도 맞닿아있다. 프로시니엄 무대에 연극적인 장치를 설치하는 일반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어떤 공간이 가지고 있던 배경, 기억, 기능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메시지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극단 파랑곰의 대표에서 1인 창작자로 참여한 '박웅'은 실제 대기실 공간에서 공연을 펼친다. 무대를 앞둔 햄릿이 대기실에서 고뇌하는 장면을 위해 장소의 맥락을 빌려 보여주는 것이다. '공연집단 우주콜라주'의 경우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re)를 표방하며, 문화비축기지의 탱크 공간과 기존 콘크리트 옹벽 사이의 길을 적극적으로 공연에 활용한다.
이처럼 문화비축기지의 탱크, 슬로프, 계단, 화장실 등 모든 공간이 무대로 바뀌고 전시장으로 바뀐다. 그뿐만 아니라 광장데크, 잔디무대, 설비동에 이르기까지 비축기지의 공간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공간의 특이성을 살린 연극, 무용, 전통, 시각 등의 작품을 관람하며 곳곳에 숨겨져 있는 나만의 예술 아지트를 발견해보자. 축제를 경험하는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프린지의 자발적 참여 정신
프린지 예술의 원칙이 ‘Go It Yourself’라는 점은 흥미롭다. 스스로 알아서 한다. 즉,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때문에 지원이나 간섭은 필요치 않다. 이와 같은 프린지의 정신은 자유로움 속의 실험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주체성에 있다.
또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특징적인 운영원리는 참여 작품에 대해 예술적 기준에 의한 심사나 선정과정 없이 자유참가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즉, 누구나 자유롭게 참가하여 작품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예술인들의 실험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거대 자본이 중심이 되는 대중문화계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비주류적 문화예술활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운영원리는 공연에 대한 자체적인 재정부담이다. 이는 관객의 수요에 따라 퇴출하느냐 살아남느냐가 결정되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수반됨을 알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자유만큼 책임 또한 스스로 져야 한다는 프린지만의 철학이 엿보인다.
예술적 일탈을 상상하는 당신에게 필요한 TIP!
① 관람하고 싶은 공연의 날짜, 시간, 장소 체크하기
② 간편한 복장, 편안한 신발, 개인용 방석(의자), 휴대용 선풍기, 물 챙기기
③ 자유참가 프로그램과 기획프로그램 모두 즐기기
④ 프린지 살롱에서 놀고, 먹고, 마시고 즐기기
⑤ 조기예매 놓치지 않기
⑥ 사전 예약이 필요한 공연 반드시 예약하기
서울프린지네트워크는 민간 예술단체로 독립예술을 둘러싼 환경을 분석하고, 예술을 사회로 확산시킬 방법을 찾는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이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원하고, 예술가와 시민, 지역사회를 연결하여 예술 영역을 넓혀오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은 매년 여름 개최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다. 예술창작지원과 함께 문화기획 워크숍, 다목적 문화공간운영, 시민대상 프로그램 기획운영을 통해 문화, 사회, 생활에까지 맞닿아있는 보다 확장된 영역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기획하며, 건강한 예술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