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주의를 가장 격렬하게 흔든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은 단순한 경제학자를 넘어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세계적 의제로 끌어올린 상징으로 남았다.『21세기 자본』이 출간된 이후 피케티는 수많은 논쟁의 중심에 섰다. 19세기 마르크스가 자본의 자기 증식을 통해 계급 모순을 비판했다면 피케티는 21세기 데이터의 언어로 불평등의 역사를 새로 써냈다. 그의 연구는 냉정한 숫자와 곡선 속에서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피케티가 가장 강하게 주장한 것은 ‘자본수익률(r)>경제성장률(g)’라는 간명한 부등식이다. 피케티는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자료를 추적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게 유지된다고 밝혔다. 부의 축적이 생산의 성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의미였다. 노동을 통해 번 자산보다 이미 가진 자산이 더 빠르게 불어나기 때문에 불평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주의를 안정과 평등으로 이끌어간다는 낙관론에 치명타를 날렸다.
그는 단순히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방대한 역사적 통계를 동원했다.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의 수백 년간의 조세 기록과 자산 데이터, 20세기 이후의 소득 통계까지 모아 불평등의 궤적을 수치로 보여줬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근로소득 증가분 가운데 75%가 상위 1%에게 집중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막연한 불안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숫자가 제시되자 세계가 피케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피케티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불평등은 자본주의 발전의 부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본질이다. 아무런 개입이 없으면 부와 권력은 극소수에게 집중되고, 민주주의의 기반은 무너진다. 그는 불평등을 단순한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봤다. 그의 처방은 전 세계적 차원의 누진 자본세 도입이다. 부유층이 가진 자산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합된 세율을 적용하고, 국가 간 조세 경쟁과 자본 도피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소득세나 법인세 수준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자본 그 자체를 과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지구적 차원의 부의 재분배 없이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급진적 주장은 거센 반발을 불렀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자본세가 혁신과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제 전반의 활력을 해칠 것이라 반박했다. 또한 국가 간 협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글로벌 자본세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피케티는 부유세는 단순한 경제학적 제안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정치적 요구라고 반박했다. 세금은 사회계약의 핵심이며,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자본에 과세하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피케티의 연구는 이론적·정책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다. 중산층의 몰락과 불평등 심화는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부동산 자산 가치가 임금 상승 속도를 훨씬 앞서가는 현실은 노동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낳았다. 피케티의 도식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불평등을 설명하는 도구가 됐다.
그러나 피케티의 이론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불평등의 곡선이 언제나 같은 궤적을 그린다는 보장은 없으며 20세기 중반의 평등화는 전쟁, 경제위기, 복지국가 건설 등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 가능했다.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의 관계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피케티의 도식은 강력한 문제제기이지만 현실을 전부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피케티는 경제학을 수학적 모형의 추상적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 역사와 데이터 속에서 다시 읽게 만들었다. 케인스가 대공황기에 자본주의를 구했다면, 피케티는 불평등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구해야 한다고 외쳤다.
피케티의 경고는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잠식하는 자기 파괴적 경향을 내포하고 있으며, 불평등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자 부의 집중을 방치하는 것이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부는 누구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이를 민주주의는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세습 자본주의’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