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전격 체포했지만 법원이 이틀 뒤 석방을 명령했다. 검찰청 폐지가 확정된 지금 경찰은 스스로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정치의 회오리 속으로 들어섰다. 결국 남은 것은 '정치경찰'이라는 단어였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다.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이 오는 12월3일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있어 체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여러 차례 출석요구에 불응했기 때문에 긴급성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전 위원장 측은 공소시효는 6개월이 아니라 10년이라고 밝혔다. 실제 공직선거법 제268조 제3항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또는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관여한 경우 공소시효를 10년으로 정한다. 이 전 위원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에서 정치적 발언을 했다. 이 전 위원장이 직함을 걸고 한 행위가 직무와 무관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경찰이 내세운 시효 임박 논리는 근본부터 흔들린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사에서 "헌법상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한 인신 구금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상당한 조사가 진행됐고, 피의자가 성실히 출석을 약속한 만큼 현 단계에서 체포 필요성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법원은 체포의 적법성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적법하다는 것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법부의 판단은 경찰에 대한 절차적 경고이자 수사권 남용에 대한 신호이다.
'왜 지금인가'라는 타이밍은 정치적 의심을 불러왔다. 고발은 이미 반년 전 이뤄졌다. 그러나 경찰은 추석을 사흘 앞둔 시점에 전직 장관급 인사를 전격 체포했다. 법률적 절차보다 정치적 효과를 계산한 결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명절 연휴 직전 수갑을 찬 전직 공직자의 모습이 전국에 송출되는 순간 여론은 이미 법리의 영역을 벗어났다. 이 전 위원장은 "경찰의 행위는 계획적이고 조직적이었다"며 "재직 중 이미 두 차례 체포영장이 신청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까지 보고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과거 '정치검찰'이 보여줬던 권력 편향의 그림자가 이번엔 경찰의 이름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앞으로 경찰은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첫 시험대부터 경찰은 국민들로부터 의심받고 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수사 판단이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수사의 실패다. 법치를 구현해야 할 경찰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 자체가 조직의 위기다.
이 사안을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판단으로 축소할 수는 없다. 전직 장관급 인사의 체포는 상급 기관의 보고와 검토를 거쳤을 것이고, 책임은 경찰 지휘라인에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책임이다. 경찰 수뇌부는 무엇이 왜곡된 판단을 초래했는지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검찰이 과거 권력의 그늘에 휘둘려 신뢰를 잃었듯 경찰이 그 뒤를 잇는다면 제도 개편의 의미는 사라진다.
◆해당 글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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