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넓힌 세계, 나침반은 사람의 몫

3,000억 달러 증발과 그 너머의 시선

by gracious man

얼만전, 나스닥의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가 하루 밤사이에 3,000억 달러, 한화로 약 450조가 사라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 어도비 등 거대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하루아침에 급락하며 시장에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AI 에이전트의 부상이 지난 20년간 공고했던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의 공포를 넘어, 잠시 시선을 100년 전의 거리와 50년 전의 연구소로 돌려봅니다.

역사는 종종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1. 5,000년의 마차, 그리고 30년의 확장


인류가 바퀴를 발명한 이래, 약 5,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육상 교통의 중심은 '마차'였습니다. 수천 년간 마차는 권력이었고, 물류였으며, 삶의 풍경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1825년 증기기관차가 등장하며 이 오랜 질서에 첫 번째 균열이 생겼습니다. 철도는 마차로는 상상할 수 없던 속도와 규모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이어 1886년 칼 벤츠의 내연기관 자동차, 1908년 포드의 모델 T 양산이 뒤따르며, 이동의 확장은 철도의 선로 위에서 도로 위로, 다시 하늘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마차가 사라지는 현상을 보며 이동 수단의 위기를 논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이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습니다. 마차가 물리적 한계로 인해 인접한 마을과 도시를 연결하는 데 그쳤다면, 자동차와 비행기는 대륙과 대양을 넘어 인류의 생활 반경을 획기적으로 넓혔습니다. 지금의 AI 혁명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를 단순히 '소프트웨어(SaaS) 시대의 종말'로 규정하기보다는, 인간의 지적 생산성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 획기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2. 블록버스터의 몰락과 이야기의 해방


이러한 '확장의 역사'는 미디어 산업에서도 발견됩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 영화관의 상징이었던 '블록버스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 시장 전체가 축소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과거 영화 산업은 거대 자본과 배급망을 쥔 소수의 제작사들이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가 있어도 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대중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플랫폼은 이 진입 장벽을 낮추었습니다. 이제는 자본의 규모보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사례가 증명하듯, 창작자는 전 세계 시청자와 직접 연결되었고 소비자는 더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하게 되었습니다. 마차가 자동차로 대체되며 이동이 확장되었듯, 비디오테이프가 스트리밍으로 바뀌며 '이야기의 다양성'과 '창작의 기회'가 폭발적으로 확장된 셈입니다.


3. 코닥의 딜레마: 1975년의 발명과 거대한 성(Castle)


그렇다면 기술이 시장을 확장시킴에도 불구하고, 왜 기존의 거대 기업들은 위기를 맞이하는 것일까요? 그 답은 '코닥(Kodak)'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한 것은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이었습니다. 코닥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지키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성기의 코닥은 단순한 기업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였습니다. 미국 로체스터에 위치한 본사는 자체 발전소와 소방서를 갖추고 있었으며, 심지어 원재료 운송을 위한 전용 철도까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필름의 원재료부터 최종 인화지까지 수직 계열화된 이 거대한 인프라는 코닥의 영광이었지만, 디지털 전환기에는 가장 큰 족쇄가 되었습니다. 디지털로의 전환은 곧 자신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구축한 공장과 철도, 그리고 수십 년간 최적화된 시스템을 스스로 부정해야 함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혁신 기업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입니다.


4. 지도는 넓어졌고, 그러나 나침반은 사람의 몫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3,000억 달러의 증발을 목격하며 우리가 가장 깊이 들여다봐야 할 곳은 주식 차트가 아닌 '가치와 목적'입니다.


과거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사회는 마차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시대의 변화라는 명분 아래 소외시켰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인간의 편의와 이익을 위한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고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그 확장된 세계 안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최우선이어야 할 것입니다.


후지필름이 필름 기술을 버리지 않고, 축적된 '화학적 경험'을 화장품과 의약품 산업으로 '전이(Transfer)'시켜 새로운 목적을 찾아냈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의 재해석입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지도가 넓어질수록 필요한 것은 가야 할 목적지를 새롭게 정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진보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AI로 인류의 세계관은 더욱 넓어지겠지만, 그 안에서 가치와 목적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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