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은, AI를 모르는 사람

by gracious man

최근 AI 관련 이슈 중, 평소의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결과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어느 해커톤에서 석박사들을 제치고 2등을 차지한 학생의 인터뷰였다.


해커톤(Hackathon)은 '해킹(hack)'과 '마라톤(marathon)'을 합친 말이다.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팀을 이뤄, 아이디어를 실제로 작동하는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행사를 가리킨다. 보통 하루 이틀, 길어야 한 주. 마라톤처럼 짧고 강렬하게 몰입한다. 깊이 이해했는지보다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본다. 그래서 이 무대에서는 종종 의외의 사람이 이기곤 하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쟁쟁한 석박사 출신의 엔지니어들을 제치고 2등을 한 고등학생의 순위가 아니라 그가 던진 한마디다.


"제시받은 문제를 풀긴 했는데, 사실 지금도 그 문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는 같은 대회의 자필고사에는 백지를 냈다고 했다. 이해하지 못한 문제를 풀어 2등을 했다는 사실. 이 모순이 한참 머릿속에 남았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어쩌면 AI시대에 새로운 표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일한다.


책이나 자료에서 정보를 얻고, 그걸 머릿속에서 학습해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손으로 가공해 결과물을 만든다. 정보가 내 머리를 한 번 거쳐야만 결과가 나오는 구조다. 그래서 AI를 만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따라잡기가 버겁다고 느낀다. 그런데 AI나 개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세대는 과연 이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이 모습은 마치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과 닮았다. 아이는 문법책을 펴고 주어와 술어의 호응을 공부한 뒤 말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저 듣고, 따라 하고, 틀리고, 다시 말한다. "엄마 이거 줘"가 왜 문법적으로 옳은 문장인지 설명하지 못해도,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그 문장을 꺼내 쓴다. 이해는 나중에 따라오거나, 끝내 따라오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는 말을 잘한다. AI-native 세대도 비슷할 것이다. 그들은 AI를 공부하지 않는다. 그냥 묻고, 시키고, 대화하면서 문제를 푼다. 앞서 말한 학생은 정확히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문제를 '이해'한 게 아니라, 문제를 '말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해커톤이라는 무대는, 마침 이해의 깊이가 아니라 말할 줄 아는 능력을 측정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한 가지 명제를 설정할 수 있다.


AI 시대의 목표는 지능과 기억의 외주화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능력은, 풀고자 하는 문제를 명확하게 언어로 정의하는 것뿐이다.


흐름을 바꿔 그려보면 이렇게 된다.

기존 방식은 '정보 → 내 머릿속 학습 → 내 손의 가공 → 결과물'이다. AI-native 방식은 '결과물 정의 → AI에게 요청 → 결과물 확인'이다. 중간 단계가 사라진 게 아니라, 내 머리 밖으로 옮겨진 것이다.

물론 이 방식에도 그림자는 있다. 원하는 것을 언어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AI에 무언가를 던지면, 돌아오는 건 그럴듯하지만 쓸모없는 결과물뿐이다. 결국 진짜 문제는 AI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법'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듯, 우리도 AI라는 새로운 언어 환경에 놓여 있다. 문법책을 끝까지 떼고 입을 열 것인가, 일단 말을 걸어볼 것인가.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풀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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