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 오르한 파묵(민음사) ●●●●●●●○○○
희미한 등불 밑에서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지 나는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 놀라는 것이 보고 싶어, 동행과 함께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을 것을 청했다. 그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삶을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
밤이 되자 모두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 둘 다 기다렸던 정적이 내려앉은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당신이 지금 막 다 읽은 이야기를 그때 처음 구상했다! 내가 쓴 것들은 내가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내게 단어를 천천히 소곤거리는 듯, 서서히 문장으로 나열되고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이었다. 터키 함대가 우리 길을 가로막았다...."
- p. 193.
. 17세기 중반,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기 위해 배를 탔던 한 젊은 청년이 터키 해적의 습격을 받아 이스탄불로 끌려간다. 다행히 그는 어느 정도 학문을 갖췄고 운도 따라주었기에 다른 노예들과는 달리 의사이자 지식인으로서 어느 정도 대우를 받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노예는 노예일 뿐이고, 타지는 타지일 뿐이다. 온갖 설득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개종을 개부하던 그는 우연찮게 어떤 호자(이슬람 학자)의 조수로 들어가게 된다. 호자는 터키 사회로 동화하기를 거부하는 그에게 자신은 가진 기술과 지식만이 필요하다며 그를 회유하고, 그의 지식을 이용해 궁정 내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군주의 측근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여가며 처음 만났을 때는 단순히 외모가 닮았다고 묘사되던 둘은 차츰 서로를 닮아가게 된다.
. 이 책에서의 '나'와 호자는 일차적으로 베네치아와 터키,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도에 놓여있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은 모든 '나'와 모든 '타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개종과 동화를 거부한 채 고향으로 돌아갈 꿈만을 꾸는 '나'와 그런 나를 오로지 지식을 가진 유용한 '도구'로만 보는 호자. 그랬던 둘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로 인한 절망(호자는 지위와 인정, '나'는 고향으로의 귀환을 원한다)과 흑사병으로 인한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겪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절망과 권태에 빠진 호자에게 헛된 욕심에서 벗어나 내면의 진짜 자신을 바라보라고 장난과 악의를 섞어 이야기하고, 호자는 그런 나에게 네가 누구인지를 가능한 한 솔직하고 자세하게 고백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 놀이(?)가 계속됨에 따라 둘은 서로의 역할을 바꾼다. '나'는 자신을 바라보고, 호자는 자신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게 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고백하고, 그런 좌절과 고립의 시간을 거치며 서로가 서로를 또 다른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는 손을 내 어깨에 얹으며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고민을 나누었던 그의 어린 시절 친구 같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목덜미를 쥐고 나를 끌어당겼다. "이리 와, 같이 거울을 보자." 라고 했다. 희미한 등불 밑에서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지 나는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사득 파샤의 방에서 기다리며, 그를 처음 보았을 때도 이런 감정에 휩싸였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을 보았다. 지금은 그도 나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둘은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 이것은 매우 명백한 사실처럼 다가왔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내가 나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 재빨리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러나 그도 나와 같은 행동을 했다. 그것도 아주 노련하게, 거울 속의 대칭 상태를 전혀 흐트러뜨리지 않고. 내 시선도 흉내내고 있었다. 내 머리의 움직임, 거울을 보기 싫어하는 모습, 두려움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길을 거둘 수 없었던 나의 공포심도 흉내내고 있었다.
- p. 106.
. 그런 일련의 시간들이 지나고 군주의 어린 후계자가 그들을 세상으로 불러냈을 때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나'와 호자의 지식으로 만든 신병기는 전장에서 무력할 뿐이었고, 신병기에 의존한 원정 역시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이방인인 '나'에게 목숨으로 책임을 묻자는 논의가 오가자 '나'는 더 이상 터키에 남아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오르한 파묵은 내가 떠나고 호자가 남는 당연한 결말을 선택하지 않는다. 호자는 후계자의 총애를 받아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오던 최측근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으면서도 오랜 단절과 고립의 시간 동안 말과 글로만 알았던 '나'의 삶을 살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떠나고, '나'는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음에도 이탈리아로 떠난 호자의 삶을 대신 이어서 살기로 결정하고 호자의 침상에 들어가 편안한 잠을 잔다. 나는 그가 되고, 그는 내가 된 것이다.
. 둘의 선택이 이뤄진 이후 흘러가는 시간을 다루는 마지막 20여 쪽은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답고 동화 같은 부분이다. '나'는 그 전의 자신을 타인들과 구별하게 만들던 부분들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여전히 자신을 '호자'가 아닌 '나'로 바라보는 파디샤를 피해 시골에 은거해서 집을 짓고 아이를 키우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일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며 주변 사람들의 삶을 닮아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내가 된 그를 만난다. 그 해후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그 모습은 너무도 아련하기에, 어쩌면 '나'는 그를 만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오로지 맨 마지막에 그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 자개쟁반과 골풀로 짠 의자, 초록색 창틀, 새털 쿠션, 올리브와 체리나무, 뒤뜰의 그네 - 그렇게 그 땅의 풍경 속에 완전히 녹아든 채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모습만이 실제인지도 모른다.
처음에 그는 재미있어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내게 소리쳤다. "당신은 이탈리아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게 분명하군요!" 그런 후에 나를 잊어버렸다. 가끔 나는 곁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곳 정원에 세 시간 동안 앉아 그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 책을 다 읽을 즈음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한두 번 우리의 무기를 삼킨 늪 뒤에 있는 하얀 성의 이름을 소리쳐 말했다. 나와 쓸데없이 이탈리아어로 말하려고 했다. 그런 후 그는 읽은 것들을 소화하고, 놀라움을 진정시키고, 쉬기 위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즐겁게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에,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허공의 끝없는 부분을, 존재하지 않는 초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창틀 속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탁자 위 자개 쟁반에는 복숭아와 체리가 놓여 있었다. 탁자 뒤에는 골풀로 짠 긴 의자가 있었고, 의자 위에는 초록색 창틀과 같은 색의 새털 쿠션들이 놓여 있었다. 곧 일흔 살이 될 나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우물가에 앉은 참새와 올리브 나무와 체리나무가 보였다. 이것들 사이에 서 있는 호두나무의 꽤 높은 가지에는 긴 끈으로 묶은 그네가 희미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 p. 201.
. 보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을 동양과 서양의 이해와 융합의 이야기로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게 일반적인 독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 건 개인적인 것이기에, 내게 이 책은 모든 '나'의 이야기로 읽힌다. 꿈과 소망을 추구하지만 결국 그에 도달하지 못한 채 어느 지점에서 고개를 떨구게 되는 '나', 자아와 욕망을 하나씩 내려놓고 삶과 시간을 받아들이게 되는 '나'. 파묵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런 모든 '나'들이 도달하게 되는 어떤 지점을 그려낸다. 그 모습은 어딘가 서글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빛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색이었다. 새하얗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존재는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에서 어두운 숲 속의 구불거리는 길로, 언덕에 있는 밝고 하얀 건물에 도달하기 위해서 황급히 뛰어가면 그곳에 참가하고 싶은 축제,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길은 도저히 끝이 나지 않는다. 어두운 숲과 산자락 사이에 있는 평지에는 늘 넘쳐나곤 하는 시냇물이 만들어 놓은 더러운 늪이 있다는 것을, 그 늪을 넘은 보병과 포병의 엄호에도 불구하고 비탈길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한 길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얀 성처럼, 갈수록 어두워지는 바위투성이 비탈과 잠잠하고 어두운 숲처럼 완벽했다. 몇 년 동안 우연히 경험했던 많은 것이 지금은 필연이라는 것, 우리 군대가 성의 하얀 탑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호자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 p.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