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인생 리부트. 다시 일본으로

일본 취업 도전기

by 시와비

2014년 2월 18일. 나는 난생처음으로 '워킹 홀리데이'라는 이름의 티켓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낯선 공항의 냄새, 배낭의 무게, 그리고 1년간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동시에 밀려들던 그 순간이 바로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배낭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현지인의 삶 속으로 뛰어든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이미 오사카의 거리를 걷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일본 문화를 피부로 느끼며 자랐다. 일본의 음악, 애니메이션, 게임은 어느덧 내 어린 시절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의미도 모른 채 일본 노래를 듣고 게임을 즐기던 어느 날, 일본에서 전학을 온 한 친구에게 마음을 뺏겼다. 그 친구와 어울리다 보니 일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동경의 대상으로 변해갔다. 나는 스스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향상되는 실력에 만족하며 막연히 일본을 동경했다.


2013년, 직장을 다니던 내게 운명처럼 워킹 홀리데이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턱걸이에 걸린 나이였지만, 망설일 틈 없이 무작정 지원했다. 이윽고 10월, 잊고 있었던 한 장의 엽서가 도착했다. '귀하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심사를 통과하셨습니다.' 기쁨보다 막막함이 앞섰다.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던 그때, 회사가 갑자기 망해버렸다. 월급이 몇 달째 밀리고, 대표는 잠적했다. 삶은 갑자기 무의미해졌고,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같았다. 바로 그때, 잊고 있던 합격 엽서가 내 눈에 다시 들어왔다.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한 줄기 빛처럼.


솔직히 반대하실 줄 알았던 어머니께 일본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네가 그렇게 원하던 것을 드디어 하는구나.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따듯한 한 마디에 망설임 없이 오사카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일본에서의 에피소드는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일본어 학교에서의 3개월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낸 9개월. 일본어 학교에서는 호주, 베트남,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서툰 일본어만으로 소통해야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웃음으로 채우며 즐거운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착금이 바닥을 보이면서, 본격적인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첫 직장은 야키니쿠 가게였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서 보던 "이랏샤이마세!"라는 외침이 그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손님에게 등을 보이지 않기, 표정을 관리하기, 바닥에 앉지 않기 등 한국에선 신경 쓰지 않던 규율들이 날 압박했다. 이것이 바로 첫 문화 차이였다. 아쉽게도 직원들의 반한 감정과 맞물려 그곳을 그만둬야 했다.


첫 아르바이트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인의 소개로 공장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곳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었다. 일본인과 재일교포, 그리고 마을의 작은 이자카야는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가족처럼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함께 웃으며, 단합 대회까지 즐겼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깊은 정이 들었다.


10여 년 전 지난 1년의 도전과 경험은 나에게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방황하던 시절, '일본에 가고 싶다'라는 작은 꿈이 내 삶을 통째로 바꾼 기적을 만들었으니까. 덕분에 1년간의 일본 생활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소중한 나침반이 되었다. 그 기억을 품고, 나는 이제 마흔의 나이에 또 다른 미친 짓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