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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15. 2023

크리스천 결혼 수다

(1) 배우자 기도 제목

어릴 때부터 교회 선배들에게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배우자 기도는 꼭 해야 한다고. 동의한다.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낼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에 꼭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원하는 배우자 상을 써놓고 하나하나 기도하면 세심한 하나님께서 모두 응답해주신다고 했다. 실제로 모두 응답받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결혼에 대한 로망이 가득한 여고생이었던 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가득 원하는 배우자상을 써보기 시작했다. 

 하얀 셔츠가 잘 어울리는 남자, DSLR이 잘 어울리는 남자, 부모님께 존댓말 하는 남자, 신앙은 물론 훌륭해야 하고, 내가 존경할만해야 하고 등 주절주절 써 두었다. 아마 20년 지기 오랜 친구는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나의 이 부끄러운 예비 신랑 리스트를. 지금 보기에 유치한 제목들도 있지만 사실상 중요한 제목들도 많았다. 가정이 신앙 안에 있고,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있고 하는 것들.

 결론, 지금 내 남편은 하얀 셔츠를 입기엔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쑥색 셔츠가 더 멋있게 어울린다. DSLR은 아마 다뤄본 적도 없는 것 같고 휴대폰으로 아내와 아이 찍는 걸 좋아한다. 부모님께 존대를 쓰지 않지만 존중과 진심을 담아 대하고, 신앙이 없을 때 나와 연애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툴러도 가장으로서 신앙과 삶의 중심이 되어주고 있다. (아직 신랑의 가족들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 기도 제목 리스트는 하나님 앞에서 폐기 처분된 것일까? 하나도 응답받지 못한 불쌍한 인생이 된 것일까? 하나님이 응답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타협하며 살게 된 것일까. 

 사실 20대 초반에 작성한 나의 기도제목 리스트는 결혼을 앞둔 적령기 즈음, 하나님보다 내가 먼저 폐기처분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 제목은 단 하나였다.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가정'

 그건 배우자에게 내가 바라는 사랑이면서 동시에 내가 배우자를 향해 가져야하는 순종이기도 했다. 기도는 소원이 아니라 순종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배우게 된 것이다.

 처음 기도제목 리스트를 작성하고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며 많은 커플들을 보았다. 단순히 연애하고 헤어지는 커플이 아니라, 삶을 함께 걸어가는 부부들의 모습을 주로 관찰해보았다. 다른 많은 기도제목은 그들의 동행에 부차적인 것들이었고, 삶 속에서 그들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단어는 '긍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성장한 것이다. 

 보통 교회 동생들과 어떤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지를 이야기해보면 신앙, 가정, 성품, 직장, 재력, 외모 순으로 쭉 이어진다. 신앙을 1순위로 놓은 리스트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들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누가 봐도 괜찮은 배우자 상을 기도제목으로 놓고 있다는 것을! 디테일은 다르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의 이면에는, 누가 봐도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 나열한 항목들이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그 좋은 요소들을 정욕으로 반죽해놓으면 결국 그 열매를 맺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요소요소마다 기도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첫 기도제목 리스트가 부끄러워질 나이가 되었을 때, 다행히 나는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다가 나이만 채운 선배들의 후회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문득, 이젠 내게도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무르익을 때 좋은 요소들을 건강한 생각으로 엮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사람은 삶의 배경을 가진다. 조건 리스트를 접어두고 나의 삶을 먼저 돌이켜 보았다. 나의 신앙, 나의 가정, 나의 성품, 나의 직장, 나의 재력, 나의 자기 관리 등을 쭉 나열해보면서 나를 객관화하는 작업을 해보았다.  

 좋은 신앙인을 바라던 내 마음은, '나는 열정이 넘치지만 변덕이 심하고 마음이 약하니 조금 느리더라도 심지가 강한 사람이어야겠다.'  신앙과 환경이 좋은 가정을 바라던 내 마음은, '나는 생활 습관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으니 이런 부족한 나를 기다려주실 수 있는 넉넉한 분들이어야겠다.' 좋은 성품을 바라던 내 마음은 '나는 여기저기 퍼주면서 사랑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니, 때론 계산적이기도 하고 이성적으로 나를 제어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런 구체적인 가치관이 생겼다. 나아가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채워져도 나는 긍휼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 다 부족하더라도 나를 긍휼히 여겨줄 그릇이라면 나도 그를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이후로 동생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객관화해보는 시도를 사랑으로 격려하고 있다. '네 주제 파악이나 해' 하는 말로 들리지 않도록 진심을 담아 귀한 기회를 가진 후 배우자감을 만나게 축복하고 있다. 오히려 나는 이 기회를 갖기 전 자존감이 지하 오백층까지 내려가 있던 사람이었다. 어느 찬양의 고백처럼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주의 은혜임을 진실로 시인한 후 내 삶과 내 생각을 되짚어 보는 것은 회개의 열매를 맺는다. 잘못했어요가 아닌, 나를 정죄하던 현장에서 주의 사랑으로 돌이켜 깊이 잠기는 회개. 그 이후에야 나는 배우자 후보들의 눈을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 기도제목 리스트는 나의 성장과 함께 같이 성장해왔다. 하나님 앞에 건강한 한 자녀로 서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받기를 그보다 먼저 교회가 주께 순종하듯 남편에게 순종할 마음이 내게 있기를, 그래서 결혼도 주의 뜻을 이루는 일임을 인정하고 난 후에 결혼한 선배들의 삶을 지탱해온 '긍휼'이라는 한 가지 기도제목을 명확하게 정했다. 나의 어설프고 약점이 많은 인격도 마지막까지 무릎 꿇려서 순종하게 되는 지점일 것이고, 기도를 통한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찾는 내게 멋진 응답으로 지금의 남편을 보내주셨다. 첫눈에 번개에 맞은 것처럼 '기도 응답이다!' 하고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시간을 쌓아가고 그 눈동자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물과 진실을 본 후, '이 사람이다.' 하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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