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속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들
얼마 전 방 한쪽에 있는 오래된 상자 안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받은 롤링페이퍼를 발견했다. 당시 중학교로 올라가기 전에 반 친구들 모두 원으로 빙 둘러앉아 종이를 돌려가며 서로에게 칭찬 한마디씩 써 내려가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삐뚤빼뚤한 글자로 가득 채워진 종이를 보며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을 그려보니, 13살의 꼬마 아이는 꽤 사회성 좋은 아이였던 것 같다.
종이 안에는 ‘착하다.’, ‘활발하다.’, ‘배려심이 많다.’는 등의 듣기 좋은 말이 빼곡했다. 주위 어른들의 인정과 칭찬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던 13살 아이는 아마 롤링페이퍼를 받고 나서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나 어렸을 적 평판을 다시 들여다보니 왜인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꽤 최근까지도 '성격 좋다'는 주변의 평가와 소속감을 즐겼던 나는 사실 내면 깊숙이 타인의 호감을 사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부정적인 평가에 곧잘 상처받곤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내 욕구와 감정을 숨기며 마냥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써왔던가.’
몇 년 동안이나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씁쓸해진 마음으로 꼬깃꼬깃한 모양 그대로 롤링페이퍼를 내려놓고 말았다. 고이 접어 넣으려다, 어딘가 반듯하고 바른 것들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고자 내 본성과는 다른 성격을 취하는 페르소나가 여러 개 자리하는 동안 정작 나를 지켜줄 진짜 자아는 길을 잃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삐죽한 내 모양이
언젠가 아름다움일 줄 모르고
둥글어졌어 어디든 잘 굴러
누구든 가져다가 어디든 쓸 수 있어
이 세상은 다 좋아해
내가 날 깎아내 삐죽이 뚫고 나오면
잘려진 그 모조각
차곡히 모아 놓은 건
다 그 속에 있어 나란 건
윤종신 - <모난돌> 일부
어쩌면 ‘보통의 삶’은 위 가사처럼 모난 부분을 조금씩 깎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둥글둥글 사회에서 잘 굴러가는 삶 말이다. 사회화의 과정을 거칠수록 타인의 평가를 걱정하며 비난받지 않기 위해 신중히 행동했다. 별난 모습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 십상이었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처럼 적당히 튀지 않으면서 잘 섞이려고 했다.
하지만 진실한 욕망을 적절히 표출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대신 숨기고 억누르는 습관을 들여온 그동안의 삶에 의문이 들곤 했다. '좋은 사람이란 결국 가면이 많은 사람일까?'하고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가 정한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오로지 가면만 생산한 것에 대한 후회였다.
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와 대비되는 불안정한 내면을 '그림자'라고 한다. 사회화를 위한 페르소나와 개성화를 위한 그림자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데, 전자에만 지나치게 힘을 쏟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뒤엉킨 내면을 잘 보살필 수 있는 걸까?
노래 <모난돌>은 그저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둥그러지는 건 당연하다며, 내 의지의 영역은 벗어난 문제라고 다독인다. 다만 내가 깎아내 버린 가면 속 고유의 모조각을 버리지 말고 차곡차곡 모아두는 편이 최소한의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수록 「특별한 일」 일부
그리고 여기, 언어를 ‘씀’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모난 자신을 지키는 시인이 있다. 시를 통해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저 느끼는 그대로의 삶을 기록한다.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것. 와중에 느끼는 외로움을 그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 시인은 시 곳곳에서 오랫동안 곱씹은 그간의 신념을 드러낸다.
가수가 노래 가사를 통해, 시인이 시를 통해 잘려 나간 모난 조각 같은 마음을 읊조리듯, 저마다 자신의 모조각을 토해내고 보관할만한 곳이 필요하다. 잡다한 생각과 감정을 꾹꾹 눌러 쓴 메모장은 모난 조각을 보존하는 나의 작은 공간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 하루를 정리하는 생각과 감정들, 마음에 드는 구절 같은 것들이 쌓인 기록물을 들여다보면 진심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과 어떤 삶을 그리고 있는지가 조금씩 명확해진다.
최근 들어 타인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울퉁불퉁한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밤마다 기록물을 찬찬히 훑어보는 습관도 실은 낮 동안 여러 사람을 마주하며 흐려졌을 자신을 되찾는 일종의 의식 같은 행위였던 셈이다.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특권과도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데이터는 아주 극소수이기 때문에 어떤 우연이나 쓸데없는 것은 없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 문득 느끼는 감정은 뇌가 저장한 수많은 데이터 중 일부가 추려진 것이라는데 마냥 놓치고 흘러버리는 건 너무도 아까운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노래로, 언어로, 그림으로 혹은 사진으로 그 순간을 습관적으로 담아놓는다. 가장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는 건 마냥 둥글게 세상을 굴러다니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잊지 않기 위한 간절한 생존법과 다름없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무수한 가면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만의 흔적을 남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 아트인사이트(2019년 3월 6일)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0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