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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를 하지 않을 권리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왜 우리는 그 선택을 하지 않는가?

by 시월아이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육체적으로 말도 못 하게 힘들었지만 딱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바로 임신 후 모유수유가 끝나는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생리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폐경을 맞은 여성들이 노년기를 맞이했다는 설움보다 생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더 크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생리통으로 인한 고통과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아무리 커도 나이 듦보다 젊음이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임신으로 인해 찾아온 생리 없는 시간 동안 나는 그 홀가분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았다. 초경을 시작했던 열두 살 이후 생리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모든 중요한 일정들은 나의 월경주기에 맞춰 이뤄지는 삶을 살아왔던 터다.


나는 유독 생리통이 심했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생리통의 증상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복통과 요통은 기본이고, 구토, 메스꺼움, 몸살기운과 같은 근육통, 두통, 어지러움, 심지어 도벽까지... 생리통은 그야말로 여성의 일상을 뒤흔든다. 내가 주로 겪은 증상은 요통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은 나의 학교 생활, 직장 생활, 여가 생활, 수면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 시절 난로 하나 없던 교실에서 추위와 통증에 온몸을 덜덜 떨며 책상에 엎드려 있는 일이 한 달에 일주일은 되었다. 생리 기간도 남들보다 유독 더 길었다. 남자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시간에는 생리통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어 그냥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는 진통제조차 쉽게 먹을 수 없었다. 진통제를 먹으면 중독이 되고, 나중에는 3알 4알을 먹어도 더 아플 수 있다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생리혈이 가장 많아지는 이틀째부터 나흘째까지는 정말 앞이 하얘질 정도로 통증이 심해, 하루종일 친구들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버티었다. 그런 생활은 매 달 반복되었다.


대학 시절,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 의자에 드러누운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진통제만 제대로 챙겨 먹었다면 그렇게 아프진 않았을 것 같은데 왜 그때는 부모님 조차 진통제를 챙겨주며 적극적으로 먹으라고 하지 않았는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취직한 회사에서 일을 배우는 시기에 생리통이 심하게 왔다. 나는 아침부터 시작된 통증에 게보린 두 알을 밀어 넣었지만 한 번 시작된 통증은 빨리 가라앉지 않았다. 까탈스러웠던 선배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탕비실로 들어가 게보린 한 알을 더 먹었다. 이윽고 선배와 같이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던 나는 어지러움과 손떨림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선배는 내게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생리통이 심해 게보린 3알을 먹었다고 했더니 미쳤냐며, 차키를 건네주었다. 자기 차에 가서 조금 누워있다 오라며...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줄곧 해외사업부에서 일을 했던 터라 해외출장도 잦았고 출장을 앞두고는 바이어와의 미팅으로 2박 3일을 꼬박 새우는 일도 간혹 있었을 정도로 업무량은 어마어마했다. 생리 기간이 겹치는 출장 일정은 그야말로 잔혹했다. 미국과 터키가 주 담당지역이었기에 비행시간을 포함한 이동시간은 10시간이 기본이었다.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앉아있는 것은 통증을 떠나 불안감을 동반하는 불쾌함 그 자체였다. 생리기간과 출장 스케줄이 겹치는 날은 비상이었다. 충분한 진통제와 더 충분해야 하는 생리대, 속옷 등 내 캐리어는 평소보다 더 많은 짐과 걱정으로 지퍼를 잠그기도 힘들 만큼 뚱뚱했다. 현지에서도 활동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시로 화장실을 찾아 뒤태를 점검해야 했고 평소에는 변비가 있었지만 생리기간에는 장활동도 활발하게 일어나 식사도 조심해야 했다. 그야말로 온전히 일에 전념할 수 없었다. 나의 집중력은 나의 생리와 함께 흐려지고 머릿속은 불안감으로 가득했으니까.


엄마 역시 생리통을 종종 앓았다. 내가 7살 정도였던 어느 날, 엄마는 일을 가지 않고 방에 누워 계셨다. 어린 내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배가 아프다고 하셨다. 그 길로 나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500원 동전 하나를 들고 동네 슈퍼에 가서 까스활명수를 사다 드렸다. 그때 엄마가 아팠던 이유가 생리 때문이었다는 것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다행히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만 생리통이 조금 있었고 평소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으셨다. 딸은 엄마 체질 닮는다는데 난 왜 그렇게도 아팠던지. 엄마는 그런 나에게 결혼해서 애 낳으면 다 해결된다는 근거도 없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결혼 전까지는 그 말이 왠지 듣기 거북했다.

아이를 낳으면 여자의 몸은 180도 모든 것이 한 번 뒤집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임신과 출산은 엄마의 몸을 휘젓고 뒤엎고 붕괴시키는 엄청난 사건임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도 나에게 그런 희망고문을 하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엄마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나의 생리통은 아이 둘을 출산한 이후에도 없어지거나 약해지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둘째가 돌 무렵 되던 해 고등학교 때 막역했던 친구가 오랜만에 집으로 놀러 왔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생리통으로 인해 진통제를 4시간 간격으로 챙겨 먹고 있었다. 친구는 그런 내게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너, 셋째 생각 있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런데 왜 피임 안 해? 너 생리통도 심하잖아."

"피임? 그거 남자들이 묶으면 되는 거 아니야? 나보고 하라고?"

"여자들도 하잖아. 몰라? 여자가 하는 게 훨씬 좋아. 생리를 안 하니깐.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나처럼 아이 둘 낳고 키우면서 학교에서 아이들도 가르치는 그 친구는 배구 동호회 활동도 프로 선수급으로 열심히 참여하고 있을 만큼 항상 기운이 넘치는 친구였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둘째를 낳자마자 피임장치를 자궁 내에 삽입하는 미래나 시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생리통이 없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생리를 하지 않으니 그로 인해 겪는 일상의 모든 불편함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며, 피임 시술을 강력 추천했다.


며칠 후 나는 남편과 상의 후 둘째를 분만했던 산부인과를 찾았고 생리통이 극심하여 피임시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시술은 짧게 끝났지만 통증은 3일 정도 지속됐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바로 생리를 하지 않는 삶이었다. 내 서랍장에 쌓여있던 대형 생리대와 생리혈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입어야 했던 위생팬티는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뜨거운 여름에는 축축함과 불쾌함이, 매서운 겨울에는 추위에 더욱 심해지던 요통이 30일 중 7일이나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사라졌다. 남편 역시 매달 생리 기간만 되면 찌그러져있던 나의 표정과 예민함에서 해방되었다며 좋아했다. 진작 하지 않았던 과거를 한탄했다.


이후에 나는 피임시술 전도자가 되었다. 첫째 딸아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 엄마들에게 피임 시술을 얼른 하라며 재촉했다. 하지만 열렬한 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생리통이 있든 없든 생리 기간만 되면 잠도 깊이 못 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피임시술을 망설이는 데에는 친구 남편들의 반응도 한몫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자신이 피임을 하겠다는 친구 남편들의 반응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생리통 없고, 생리대 없는 세상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목적으로 피임시술을 하겠다는데, 남자들은 여자들의 피임의 의미를 다른데 부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나는 서양의 피임 문화가 어떤지 잘 모른다. 굳이 서양의 경우를 빗댈 필요도 없어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아이를 가지지 않고 편안한 성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 혹은 미혼 남녀의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남성이 콘돔을 사용하거나 여성이 경구용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미래나와 같은 자궁 내에 삽입하는 피임 시술이 있다는 것도 알리고는 있지만, 이 시술이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게 상당히 어려울 수 있는 시술인 만큼 보편적인 피임 방법으로 내세우진 않는다. 특히나 간편하게 남자들이 피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피임은 그다지 많이 행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성이 피임을 하게 되면 생리를 하지 않게 되는 엄청난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막는다는 목적으로만 그것이 행해져야 하며, 그것도 남성이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암묵적인 사회 전반의 강한 인식이 나같이 생리 하나로 인생이 달라진 여성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개선해야 할 인식임에 틀림없다. 여성의 피임은 남성의 피임과 같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출산계획이 더 이상 없다면 상대방은 이에 대해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혹여나 하는 의심으로, 혹은 여성의 자궁에 인위적인 기구를 삽입하는 것이 그 어떤 전통적인 여성상에 해가 된다는 막연한 부정적인 견해가 여성들이 피임을 하여 생리를 하지 않을 권리를 막아서는 안된다.

또한 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경구용 피임약이나 피임기구 시술 등 다양한 피임법에 대한 올바른 정보 역시 올바른 루트를 통해 정확히 모든 국민에게 알려야 하고 통증이 심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있는 여성들이 피임을 통해 생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여성의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무리 자유의지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 하더라도 나의 원초적인 성역할을 바꿀 순 없다. 생리통으로 배를 움켜쥐고 허리를 틀며 사경을 헤맬 때마다 차라리 자궁이 없었으면 한 적도 있었다. 겪지 않는 여자들도 물론 있다. 임신과 출산이 크게 어렵지 않은 엄마들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생리를 한다는 것이 여성의 특권이고, 위대한 엄마가 될 준비이며, 신성한 여성의 의무라고 치장만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아직도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있는 천년 묵은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에게만 고리타분한 가부장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책임을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국가가 된 지 오래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방향은 그저 아이를 낳은 가정에 돈을 더 지원해 주거나, 아빠 휴가를 더 주는 것에 그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다. 여성의 생리를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몸상태와 동일시하는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생리를 해도 불임, 난임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여자의 생리가 진정한 혹은 성숙한 여자가 되었다는 몸의 신호가 아닌,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기 때문에 성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 모두가 동등하게 어릴때부터 제대로 교육 받아야한다. 생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야 말로 여성의 인권을 지키고 존중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초석이며, 이 동등한 관계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부부의 가정은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인생 전반에 크나큰 행복을 마련해주는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직장에서 당당하게 월경휴가를 쓰지 못한다. 너무나 가난하여 생리대를 살 수 조차 없는 여자 아이들이 생리 기간 동안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말아 생리대를 대신하여 쓰는 것을 보면 심장이 쪼그라든다. 남녀공학 중고등학교에서는 체육시간에 간혹 하얀색 체육복에 생리혈이 묻어 나와 그 일로 인해 상처를 받는 여학생들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경험자로서, 그리고 딸을 가진 엄마로서 가슴이 미어진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통해 육아뿐만 아니라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것이 남자와 여자, 그리고 우리 사회까지 함께 성을 쌓아 올려야 한다. 인구를 늘리는 것에 목표를 두기보다 행복한 국민, 행복한 여성을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나의 삶의 가장 크고 가장 길었던 고통이었던 생리통이 사라지고 나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그것은 아프지 않고 나의 일상이 유지된다는 보통의 그러나 그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한마디로 마법 같은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그것은 마법이 아니고 족쇄였다. 생리를 안 할 수 있는 게 진정한 마법인 것이다. 안 할 수 있고, 안 아플 수 있다. 그 선택도 자유에 맡겨져야 한다.



* 이 글이 남성의 인권을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 글에서 나는 남성은 하지 않는 생리학적 현상인 생리를 하는 여성이, 그로 인해 얼마나 긴 시간을 여성만의 '특권'이라는 말로 포장된 채 그 고통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출산 계획이 더이상 없어진 여성들이 생리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피임에 대해 사회와 일부 남자들이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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