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건망증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첫 아이를 임신한 후 여러 몸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건망증이었다.
살면서 우리는 때때로 해야 할 일을 깜빡하거나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린다. 특히 시간에 쫓기거나 해야 할 일이 쌓여 정리가 잘 되지 않거나,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많아져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것을 '실수'가 아닌 '건망증'이라는 하나의 장애로 판단하게 된다. 치매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 단계의 심각한 건망증이 아니고서야 젊어서 겪는 건망증은 바쁜 현대인들의 피할 수 없는 버퍼링 정도로 여겨지는 게 보통이다.
여성의 임신은 몸에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지만 환영할만한 변화는 거의 없고 (간혹 피부가 좋아진다는 분도 계셨다.) 속이 더부룩하고, 살이 찌고, 예민해지거나 산전 우울증 등 그야말로 우울한 증상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출산 후에는 탈모, 산후 우울증, 극심한 체중의 감소나 증가, 양육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 출산 전보다 더한 부정적인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 전반을 거치면서 우리는 '건망증'이라는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아주 불쾌한 기억 장애를 가지게 된다. 모든 여성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많은 여성, 아니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고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건망증은 아주 사소했다. 남편에게 짜파게티를 끓여주다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면과 함께 건더기수프, 짜장수프를 모두 넣어버려 짜장탕을 만든 적도 있었고, 그냥 라면을 끓이다가 계란이나 파를 깜빡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은 이것을 매우 싫어했다. 아마도 남편은 이것을 성의의 문제로 여겼던 것 같다.
아이들 어린이집에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수시로 잊어버렸다. 추석에 혼자 한복을 입고 가지 않은 적도 있고, 미술 도구 준비물을 깜빡하는 것도 여러 번, 어떤 날은 가방도 없이 아이만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 역시 그런 나에게 불만이 가득했다. 엄마가 되어 최소한의 일조차 하지 않는 그런 엄마.
첫째 아이는 너무 예민해서 힘들게 키웠다. 태어난 지 백일쯤 지나서부터 밤에 통잠을 잤지만 그 대신 낮에는 단 10분도 자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7시에 잠이 들고 밤새 두어 번 우유를 먹고 나면 다시 아침 6시까지 잘 잤다. 낮에는 고통이었다. 낮잠을 한 시간씩이라도 자야 내가 화장실이라도 편히 가고 커피라도 한 잔 편하게 마실텐데 단 한숨도 자지 않고 잠투정만 하루종일 해대며 울었다. 덕분에 나는 종일 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있어야 했다. 아이가 잠들면 꿀 같은 육퇴를 즐기고 싶었지만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지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첫아이 때도 입덧을 심하게 했지만 둘째 아이 때는 입덧은 물론 급성 부비동염(축농증)과 망막박리 수술로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등 열 달 내내 여기저기 고장이 났다. 출산 후 두 아이 모두 모유수유 중 유선염이 오면서 두 달 정도만 수유하고 젖을 떼야만 했고, 둘째 아이 출산 후에는 왼쪽 무릎의 연골이 찢어져 통증에 시달리다 출산 3개월 만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은 수술한 다리를 땅에 디딜 수 없었기에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의자를 밀고 다니며 뜨거운 여름 내내 이유식을 끓여냈다.
이 모든 육체적인 아픔들이 나의 뇌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신체적인 아픔들은 아이들이 커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라졌지만 건망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첫 아이 두 살쯤에 시작한 카페를 둘째 아이가 두 살이 되자 1개를 더 늘려, 2개를 동시에 운영했다. 모두 개인 카페였기 때문에 매일 주문해야 할 식재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집에서 필요한 생필품과 식재료까지 구매하려니 핸드폰을 하루종일 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10개 가까운 쇼핑몰에서 이것저것 주문을 해야 했고 그러다 가게와 집의 물건들이 뒤섞여 배달되기도 했다. 최저가를 찾아 헤매다 보면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결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 케어로 잠시 정신을 돌리면, 결제를 한 줄 알고 물건이 배송오기를 기다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게 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남편은 집에 필요한 생필품들이 제때 채워지지 않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매번 깜빡하고, 세탁기 빨래는 탈수가 끝난 지 한 시간이 지나도 꺼내져 있지 않은 등의 사소한 나의 실수에 정신 좀 차리라며 타박하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남편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다. 그의 일상은 단순했다. 남편의 직장은 교대근무제였기 때문에 퇴근 후 집에서는 직장일에 대해 일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고민도 해야 하고 절차도 복잡한 요리는 아예 할 줄 몰랐고, 대신 빨래, 청소, 정리, 분리수거 등의 일은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심지어 밖에서 회식을 하여 술을 많이 먹고 들어온 날에도 어김없이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
그런 그에게 나는 실수투성이로 보였을 것이다. 이쯤 되니 나의 건망증은 부부싸움의 씨앗이 될 만큼 악(惡)이 되었다. 작은 실수에도 인상을 찌푸리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내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보았다. 나도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IT 회사의 해외사업부 과장이었고,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지금은 내가 할 일이 너무 많고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라고.. 하지만 나의 변명은 현실을 바꿔주지 않았다. 실수와 건망증이 반복되면서 나의 자존감은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 기분은 처참했다.
그러다 하루는 가입만 해 두고 거의 들어가 보지 않았던 지역 맘카페를 들어가 보았다. 다른 엄마들의 건망증은 어떨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할 때 가장 흔하게 빠뜨리는 것이 있다. 바로 공갈 젖꼭지 (일명 쪽쪽이)이다. 이것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똑같은 것으로 살 수도 없다. 밖에서 아이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대략 난감한데, 아이가 사용하는 공갈 젖꼭지가 없다면 그날 외출은 포기해야 한다. 바로 이 중요한 공갈 젖꼭지를 외출할 때마다 빠뜨려서 집에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고, 마트에 갈 때 지갑이나 핸드폰 안 가져가는 경우도 애교에 속했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소아과에 유모차에 아이 태우고 갔다가 아이가 유모차에서 내려 혼자 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이 엄마는 그것도 모른 채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가다가 아이가 조용하길래 보니 아이가 없어져 거의 실신할 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무언가를 깜빡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아이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여자들은 외출 시 가지고 나가야 할 것들이 넘쳐난다. 화장품 담은 파우치 (종류도 많아 이것만 해도 꽤 무겁다), 지갑, 핸드크림, 티슈, 생리대, 데오드란트, 여분의 스타킹 등등...
반면 남자들은 뒷주머니에 지갑 한 개, 앞 주머니에 핸드폰 하나면 끝난다.
엄마들의 가방 속 내용물은 확연히 달라지지만 가짓수는 훨씬 더 많다. 일명 기저귀 가방이라는 것으로 바뀌고 아이들 물건들로 가득 찬다. 아빠들은 엄마가 챙겨주는 가방을 들고 다니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무언가 하나 빠지면 고스란히 물건을 챙긴 엄마의 잘못이 되어버린다. 부부 사이 긴장감이 돌고 아이는 울고 외출은 엉망이 되었던 경우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엄마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마트 앱으로 장을 보고, 돌아올 아이 생일에 어린이집에 보낼 답례품을 고민한다.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도 저녁 반찬을 고민하고, 아이들이 잘 먹지 않을 것에 미리 화가 난다. 아침에 일어나 여유 있게 출근 준비를 하고 먼저 집을 나서는 남편을 보면 울화통이 치밀고 아이들을 챙겨 함께 출근을 하는 자신의 삶에 행복이란 두 글자는 없다고 느낀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걸려온 어린이집 전화에는 항상 가슴이 철렁한다. 직장에 있어도 집안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집에 있어도 출근해야 하는 내일이 걱정이다.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은 삼시세끼 먹을거리 걱정으로 진정한 휴식과 여유를 바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미혼 여성이 결혼을 꺼리고 출산은 더욱더 꺼리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찾을 수 있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육아와 집안일에 적극적일 것이라 아무리 좋게 예상해 보아도, 결국은 내 '책임'인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혼과 육아를 스스로의 사회적인 위치와 개인의 자유로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육체적 자유를 포기하고 희생해야 할 선택적 가치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적 가치이기에, 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하는 일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남성이 단순히 육아와 살림을 분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육아와 살림을 동등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기혼 여성에게 더 필요한 것은 바로 가족과 사회의 관심과 이해이다. 수십 수백 가지의 일을 해내야 하고, 거기서 오는 만족감보다 실수하고 빠뜨리고 잊어버리는 등의 사소한 잘못들로 인해 결혼 전 당당했던 모습과 콧대 높던 자존감은 사라지고 점점 차오르는 몸과는 반대로 위축되고 쪼그라들고 만다. 그러한 여성의 심경적 변화와 육체적인 변화를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과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애 낳았다고 다 뚱뚱한 건 아니야. 노력을 안 하니깐 안 빠지지"
"애들한테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니야? 집에서 도대체 뭐 하는데?"
"요즘 일 안 하는 여자가 어딨어? 왜 혼자 징징대?"
"반찬이 이게 뭐야? 신경 좀 써"
"우울할 게 뭐가 있는데? 생각을 바꿔봐"
"정신을 어디다 두는 거야? 왜 이렇게 깜빡해?"
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이런 말은 하지 않았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몸도 마음도 지친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다.
그.래.도.괜.찮.아.
일단 스스로에게 먼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