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우아하게 살고 싶지

그런데 환경이 안 따라주네

by 작가는아닙니다

앞으로 2~3일 동안은 푹 쉬어서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할 예정이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 1년 만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서 체력을 너무 많이 소진했기 때문이다. 타고난 에너지가 많지 않은 나는 평소에도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분배해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하루치 에너지를 오전에 다 써버린 것이다. 전쟁 같은 오전이었다.


시작은 아침 9시 전에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였다.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병원을 많이 다니시게 됐는데 타고난 성격이 '대~충' 이시기도 하고 연세가 많으셔서 기억을 못 하고 놓치는 부분들이 많아지셔서 자주 만나 병원을 같이 다닌 지 몇 개월이 되었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병원과 진료과가 여러 곳인데 그중에서 비정기적으로 가시는 2곳을 제외한 정기적으로 가시는 3곳을 모시고 다녔다.

듣고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으셔서 진료받으며 들은 내용을 다시 한번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리고 텍스트로 요약한 내용을 카톡으로 남겨서 볼 수 있게 해 드리고 진료일을 아버지 핸드폰 달력에 표시해 놓고 스케줄을 관리해 드렸다. 아프다, 불편하다.. 말씀하시는 내용을 찾아보며 유튜브에서 의사 분들이 세미나처럼 강의하는 1시간이 넘는 영상을 틀어놓고 보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몇 개월째이지만 짜증이 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하지 않았었다.

어제까지는 말이다.


아버지와 데이트한다 생각하고 병원에 가는 날은 같이 점심도 먹고 카페도 가고 산책도 했다. 실제로 아버지와 둘이서만 만나 몇 시간씩 같이 있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에 대해 알아가는 게 좋았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있을 때면 어머니가 쉬지 않고 계속 말씀을 하셔서(엄마 미안) 아버지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가 없는데 이렇게라도 아버지와 도란도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2주 전에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셔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신 일이 있었다. 주말이라 동네에서 밥을 먹다가 연락을 받고 뛰어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나중에 남편이 "달리기 진짜 빠르더라, 내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어"라고 했었다. 몸은 비만이지만 내 다리는 우사인볼트가 됐었다.

다행히 구급차에서 정신을 차리셨는데 쓰러지시면서 턱이 움푹 파이듯이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났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응급실에서 조치 후에 집에서 며칠 있으시다가 통증이 너무 심하셔서 흉부외과에 진료를 보러 갔는데 입원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날 바로 입원을 하셨다.


입원해 있는 동안 의식 잃고 쓰러졌던 것과 관련해서 해당 과에 협진이 되는지 입원 병동에 계신 간호사분께 여쭤보니 알아보고 연락을 주시겠다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너무 계속 전화를 하면 바쁜 분들한테 실례일까 싶어서 연락 주시겠지 하고 2, 3일을 기다렸는데 감감무소식이라 다시 문의를 하니 "연락드리라는 내용이 인계가 안 됐나 보네요" 라며 따님 요청을 듣고 아버님께 여쭤봤는데 나중에 어지러우면 그때 진료받겠다 하셔서 진행을 안 했단다. 또 아버지의 '대~충' 처리하는 성격이 나온 것이다.

입원 전에 간호사, 콜센터 직원과 몇 번씩 통화하고 병원에 방문해서도 물어보고, 어떻게든 빠른 시일에 진료받을 수 있게 방법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걸 옆에서 다 보셔놓고도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나중에 받을게요" 하신 것이다.............................


한숨이 났지만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다시 협진 요청을 했다. 그런데 또 처리가 안되고, 전화할 때마다 받으시는 분들이 달라서 했던 설명을 하고 또 하고, 협진 요청을 일주일 사이에 4번을 반복했다. 퇴원한 후에 진료를 받으려면 힘들고 번거로우니 입원해 있는 동안 받는 게 좋다고 아버지에게 설명을 드렸고 알겠다고 대답도 하셨다. 그런데 의료진과 이야기할 때는 말을 애매하게 하셔서 의료진은 안 하겠다고 하시는 줄 알고 또 진행을 안 하고, 관련 내용을 나한테 연락은 주지 않는 무한 반복인 상황에 지쳐가고 있었는데 오전 9시도 안 돼서 아버지가 전화를 하시더니 아주 해맑게 "금요일에 퇴원하래~"라신다. 입원해 있는 일주일 동안 지루하셨는지 퇴원한다니 좋아하는 어투였다.

“그래? 협진 요청한 거는 언제 할지 전달받은 거 없어?"

“그건 아무 말 없는데?"

“그래...? 알았어, 끊어봐"


그 후의 일은 위에 설명한 바와 같다. 바쁜 간호사분들의 아쉬운 일 처리와 아버지의 생각 없는 '대~충'인 성격의 환장할 콜라보로, 나는 결국 폭발을 했고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고 간호사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안달복달 걱정을 달고 사는 어머니에게 협진이 왜 진행이 안됬었는지 알려드리기 위해 카톡으로 전달하면서 "OO이 한테(남동생) 아빠 의식 잃고 쓰러져서 응급실 갔었고 입원 중인 거 또 말 안 했지? 걔도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동안 걔한테는 다른 말만 하고 정작 중요한 건 왜 알리질 않아? 주변 사람 챙길 줄 모르는 애라 그나마 엄마한테 듣는 게 전부인데, 엄마는 일이 생겼을 때는 말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 해결되고 나서 '이런 일 있었어'라고 간략하게 말하니까 걔는 집에는 늘 별 일이 없고,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는데도 챙길 줄도 모르는 것 아니냐."라는 잔소리를 했다. 할 생각이 없던 잔소리였지만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것 같은 2주 동안의 피곤했던 상황에 지쳐 폭발한 나는 잔소리를 추가하게 된 것이다.


나와 남동생은 2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꼬꼬마 시절부터 나는 장녀, 남동생은 막내로 대해 왔었다. 그리고 남동생은 이기적이고 주변 사람에게 무관심한 성격이라 부모님 관련해서 일이 있을 때 의논해서 같이 하고 싶어도 말을 꺼내면 백이면 백, 무조건 싸움으로 이어졌던 대략 20년 동안의 수많은 경험이 쌓여 동생은 나에게 의지가 되지 않는 존재였기에 내가 알아서 부모님을 챙기며 살아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남편이 속이 깊고 세심해서 결혼 후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부모님을 챙겨줘서 내 어깨에 올려져 있었던 책임감을 남편이 덜어 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잔소리한 카톡의 1이 없어진 것도 잠깐, 뜬금없이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딸에게 잔소리를 들은 어머니께서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아빠 병원 입원했는데 누나가 고생했다. 전화 한번 해라'라고 한 것 같았다. 내가 한 잔소리의 요점은 '집에 일이 생기면 제 때에 알려라, 부모님께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버지한테 괜찮냐고 전화를 해야지 왜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냐..... 상황을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전화를 하는 거냐.....' 싶어 한숨이 나왔다.

가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들여다볼 줄 모르고 어머니가 말하는 만큼만 듣고 시키는 것만 실행하는(거의 무언가를 시키지 않는데), 아주 정확하게 시키는 것만 하는 동생의 수동적인 점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그런데 역시나였다. 제대로 상황을 알고 있지도 못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복어 같은 상태였던 나는 말을 돌려서 좋게 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 뒤는 상상에 맡기겠다.


약속이 있던 나는 전쟁과 같은 오전을 보내고는 후다닥 준비를 하고 친구를 만났고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던 중에 "나도 우아하게 살고 싶지~ 그런데 환경이 안 따라주네~ 에휴~~"라고 하였다.

곱-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

정말로.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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