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전상서? 쓰레기 보물섬!

쓰레기들도 같이 이사를 갈 순 없어

by 작가는아닙니다

나는 게으르다.

상위 1%의 부지런함을 가진 어머니와 상위 1%의 게으름을 가진 아버지에게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타고난 것은 게으르지만 필요할 때는 부지런해지고 부지런함을 보고 자라서인지 부지런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여름이 가기 전 이사를 가야 하기에 그동안 쌓아둔 짐을 정리하는 요즘.

나도 물건에 애정을 많이 줘서 잘 버리지 못하는지라 이해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것까지 있어?’싶은 남편의 물건들.

남편은 그것들을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지만 내 눈에는 한 단어의 물건으로 보인다. 쓰레기.


40대 남자의 책장에 10살 미만이 보는 ’ 즐거운 과학생활‘이라는 책은 왜 있는 걸까? 무슨 내용인지 펼쳐봤더니 먼지 냄새가 요술 램프에서 지니가 나오는 것처럼 나온다.

“켁… 어릴 때 즐거웠음 됐잖아??? 하……“

‘차라리 40대에 맞는 과학책을 사렴… 이왕이면 책 말고 유튜브로 보면 좋고….’

보물섬, 등등등, 등등등 나도 어릴 때 봤을 나의 어머니가 수십 년 전에 버린 책들이 한가득이다.


책장 위에 올려져 있던 박스를 열어봤더니 그 옛날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 봉투 뭉치가 있다. 버리라고 남편에게 줬더니 “이름이 쓰여있어서 좀 그런데” 란다. “우리나라에 동명이인이 몇 명인데 이름 석자로 개인정보가 보입니까?” 했더니 버리란다.


쾌적하게 살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 추억타령이다. 추억이나 경험은 머릿속에 있는 거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물건에 있는 게 아니라고 하면 사람마다 추억을 간직하는 방법은 다르단다.

좋다. 그럼 추억 되살리는 용으로 하나만 있으면 된다.

“20대에 군대 선임이 여자 친구 준다고 접으라고 시켰다는 종이 장미는 왜 아직도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거야?”했더니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남편은 개그랍시고 작은 박스 위에 종이 장미를 대더니 “이렇게 쓰려고?”란다.

“이렇게 쓰려고 20년 전에 미리 접어 뒀어? 그냥 필요할 때 접는 게 낫지 않겠어? “했더니 머쓱해한다.


나도 학창 시절 친구가 준 쪽지도 보관하는 사람인지라 추억타령하는 게 무슨 마음인지는 안다. 하지만 정말 예쁜 추억인 거면 잘 정리해서 먼지 쌓이지 않게 모아둬야지 않냐는 것이다. 그래야 그 추억이 그리울 때 꺼내서 볼 수 있으니.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으면서 막상 보면 아까워서 버리지 말라고 하는 건 추억용이 아니다. 그저 버리는 게 어색해서이다. 필요 없는걸 제 때에 버리는 것도 결정력이다. 한 마디로 결정 장애인 것이다.


이사업체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짐을 옮겨야 하는데 나한테 필요한 짐을 옮기는 비용을 지불해야지 쓰레기 옮겨준 비용을 주겠다는 건가 싶다.

나는 쓰레기를 돈까지 주고 옮기고 싶지는 않다. 남편이 짜증이 났는지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난 그 말을 똑똑히 들었고 30분 사이에 책장 한 칸을 비웠다.


쓰레기를 윗사람인 양 모시고 살고 싶은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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