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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r 29. 2018

일상의 펑크를 꿈꾸며

[북리뷰] 작은 몰입 - 로버트 트위거

 목표를 쫓는 인간


보통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는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알기 위해서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에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위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고, 또 그걸 쪼개서 한 달 단위의 목표를 만들고, 그 다음엔 일주일, 하루, 시간 단위까지 쪼개 계획을 설정하라. 그리고 이를 꾸준하게 실행하라. 꾸준히 하기 위해선 뭐 중간에 스스로에게 보상을 줘야하고, 어쩌구 저쩌구... 책을 다 읽으면 열의에 불타올라 계획표를 작성한다. 그리고 3일 동안 열심히 수행한다. 그리고 일주일 쯤 지나면 한숨과 함께 한마디 튀어 나온다. 망했어. (내 이야기다)


왜 하나를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걸까? 나는 끈기가 부족한 걸까? 그런데, 나만 이런 걸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교육 체계에서 목표가 너무 거대하단 것이다. 어떤 분야든, 특히나 처음 배우는 경우 초반에 실질적으로 보여주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아무리 끈기가 강한 사람도 도중에 관둘 확률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배운 것을 바로 써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교육 체계는 전문가 수준의 거대한 자격을 갖추는 기적적인 목표를 향해 가기만 한다. 그렇게 1만 시간씩 배워봤자 헛똑똑이들이 많아질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배운 것을 5년 후가 아니라 당장 써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작은 몰입, 마이크로마스터리


저자는 목표 달성의 새로운 법칙을 제시한다. 작은 몰입으로 당장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바로 마이크로마스터리다. 마이크로마스터리는 작은 몰입만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최소 단위의 과제를 뜻한다. 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걸 끝까지 완전하게 해내는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


마이크로마스터리의 시작은 흥미다. 흥미를 느끼는 어떤 것을 놓치지 말고 그에 대한 아주 작은 과제를 만들어 끝까지 결과를 내보는 것이다. 흥미를 가진 일이기 때문에 해내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또한 지속적인 작은 몰입과 결과를 내면서 생긴 끈기와 의욕은 어떤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는 자질이다. 마이크로마스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나만의 기술이자 지식이 되기 때문에 갯수가 많이 쌓일수록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창의성도 발휘하게 된다.



 나도 이런 적 있어!


이 책이 재밌는 점은 책 분량의 절반 이상이 실제 마이크로마스터리의 종류와 학습법이 상세하게 써있다는 점이다. 2부에 들어있는데 무려 39가지나 된다. 그럴싸해 보이는 스케치, 스탠딩 서핑(쓸만해 보인다), 검으로 허공을 가르며 웅웅 소리 내기(이런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3시간 만에 일본어 읽기 등 종류도 아주 다양해서 누구든 하고 싶어질 만한 기술이 꼭 하나는 들어있어 보인다.


저자는 1부에서 설명한 마이크로마스터리의 6가지 체계를 바탕으로 학습법을 작성해놓았다. 여기서 가장 눈여겨볼 단계는 첫번째인 입문 묘책인데, 이는 "한 방에 그 일의 수행력을 끌어올려서 즉각적 효과를 느끼게 해주는, 즉 보상과 연관된 신경화학 반응이 벅찬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방법"이다. 즉 초보가 그 일을 쉽게 달성하게 해주는 꿀팁이라 할 수 있다. 이 입문 묘책을 잘 사용함으로써 초반에 지루함을 느끼고 관두는 경우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읽으면서 내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자기계발서의 경우 "그래, 이렇게 해야지!"라는 그 순간의 깨달음과 동기만 줄 뿐, 책을 덮고 난 후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쓸모가 없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마이크로마스터리의 사례를 읽다보면 자신이 살아오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익혔던 작은 기술들이 떠오른다. 나의 경우 서핑이 그랬는데, 일일 강사가 되어준 백인 할아버지의 입문 묘책은 이것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 앞을 보지 않나? 서핑도 똑같아. 앞을 보지 않으면 넘어져." (책에도 마이크로마스터리 사례로 서핑이 나오는데, 입문 묘책이 똑같다) 나는 생애 첫 서핑을 시작한지 한 시간 만에 파도 위에 설 수 있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2011년 장재인과 김지수가 슈퍼스타K를 휩쓸었고, 통기타 열풍이 불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던 나도 통기타를 샀다. 처음 연습한 곡에 어려운 코드가 하나 있었는데, 손에 힘을 키우기 전이라 그 부분에서 계속 소리가 거슬렸다. 그게 싫어서 지지부진하다가 한 달만에 때려쳤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우연히 친구의 기타를 만져봤는데, 그 코드가 너무 쉽게 잘 잡히는 게 아닌가? 그 친구의 기타는 25만원, 내 기타는 15만원이었다. 10만원의 차이가 그렇게 클 줄이야. 그때 만약 내가 25만원 짜리 기타를 샀다면? 수준급으로 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기타치면서 부를 수 있는 노래 한 곡 정도는 지금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성공에 이르는 숨겨진 길


물론 현대 사회의 기술과 지식들은 너무 고도화되어있고 복잡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걸 시작부터 전문적으로 잘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기술과 지식의 결과물들에 너무 많이 노출된다. 그래서 입문 비용을 과하게 예상하고, 새로 시도하는 걸 주저하게 된다. 또는 전문가를 찾아가 끊임없이 배움만 구한다. 이런 현실을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학력 인플레이션이 팽배하고 있다. 대체 왜 그럴까? 사람들이 너무 겁을 내 사회에 나가 장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기 위해 굳이 20년이나 학교에 다닐 필요는 없다."


아이러니한 건 진짜 성공한 사람들은 오히려 마이크로마스터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재들은 한 우물만 깊게 파는 게 아니라 얕은 우물을 여러 개 팠다. 정보이론의 아버지 섀넌은 저글링에 깊은 흥미를 보였고, MIT 복도를 외발 자전거로 지나다녔다. 그리고 기술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로봇 시스템을 개발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손가락으로 접시를 돌리는 기술에서 느낀 흥미를 파고들어 양자전기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이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창의적 사고가 화두로 떠오른 시점은 창의적 사고를 낳는 다양한 지식, 정보, 관점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부분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마이크로마스터가 되는 것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학습 능력이 뛰어난 창의적 인재가 되는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성공에 이르는 숨겨진 길은 무엇이든 흥미를 갖고 뛰어드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위 천재들의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그래, 해봐


내가 획득했던 마이크로마스터리는 전부 우연의 결과였다. 삶에서 중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기에 작은 목표에 몰입할 수 있었고, 달성할 수 있었으며,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를 더 쌓아나가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너무 어려워보였고, 이를 하기 위해선 일단 어딘가에 가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 배워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당장 해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나에게 완성은 너무 멀어보였다.


돌아보면 현실적으로 하지 못할 이유는 거의 없었다. 마이크로마스터리는 흥미를 갖고 뛰어들 자유를 허락받는 것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이 허락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펑크 밴드들은 한 가지로 유명했다. 노래와 연주 실력이 서툴렀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다. 대단한 연주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하지만 클래시를 비롯한 여러 펑크 밴드의 곡들 상당수는 지금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서툰 뮤지션들이 만든 명곡인 셈이다."


이상적인 순간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단순화된 시도를 찾는 것. 펑크 밴드들이 보여준 정신과 태도가 바로 마이크로마스터의 정신이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그래, 해보자. 못 할 이유가 없잖아?"


이 책을 읽은 모두가 펑크 정신을 가지고 흥미에 뛰어들 자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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