휩쓸리듯 살다가 큰일 나겠다는 걱정이 코 앞으로 다가온 건 2015년 겨울이었다. 스스로 왜 선택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전공의 학과로 온 탓에 학교 공부에 흥미를 눈곱만큼도 붙일 수 없었다. 대부분 흥미가 없어도 토 나오는 노력으로 학점을 채워나갔지만 나는 그저 흥미를 좇았다. 덕분에 학점은 눈곱만큼도 못 받고 군대로 떠났다. 21개월 동안, 정확히는 전역 한 달 전쯤부터 고민된 진로에 대한 고민은 흥미가 없어도 노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었다. 약간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그 힘으로 1년 반 동안 꾸역꾸역 공부와 동아리 생활을 했다.
3학년이 끝나고 겨울이 왔다. 부족한 학점을 메꾸기 위해 거의 매 학기 계절학기를 들어야 했다. 그때쯤 되니 졸업과 사회라는 두려운 미래는 계속 다가와 이제는 시선을 억지로 돌려도 어렴풋이 미래가 시야에 잡혔다. 어렴풋한 미래는 그 모양이 너무 뻔해 보였고, 그중 무엇도 내가 원하는 형태는 없는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생존 본능이 발동했고, 거침없이 1년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은 학교 시스템에 들어가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됐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만 4년이 지나 이제 5년 째다. 거침없었던 그 클릭 하나로 내 인생의 방향이 꽤나 바뀐 건 확실하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의 의문에 대한 그럴싸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찾았다고 생각해 지금 하는 일을 찾아 직장을 구했지만, 직장에는 답이 있지 않았다. 어떤 직장을 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동종업계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짙어졌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걱정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돌아가 4년 전, 그때 휴학을 하고 내가 1년 동안 매진했던 공부는 '나'였다. 지금이야 '나답게'라는 말이 트렌드 코리아에 오를 만큼 요즘 청년 세대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굉장히 낯선 개념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했고, 앞으로는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알고 싶었다. 예전부터 단순히 연봉을 많이 주는 직장이나 좋은 직업을 갖는 것보다, 내가 본질적으로 만족할 수 있고 내 중심이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삶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원했던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기질을 타고난 것이다.
작년부터 '나답게 살아야지'라는 말이 마치 스무 살 무렵 전국을 강타했던 '아프니까 청춘이지'라는 문장과 비슷하게 유행한다. 마치 진리인 양 받아지는 이 말 또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될 것만 같다. 결국 생존을 위한 안정을 쟁취하지 못한 대부분의 청년에게 '나다움'이란 넘을 수 없는 울타리 너머에 맺혀 있는 신 포도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답게 사는 것과 2020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남기를 함께 두 손에 쥐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조금이나마 느껴봤고, 그 둘을 다 손에 쥐고자 타협한 결과를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 이 예측은 마음이 쓰리다. 나의 오늘과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모두 울타리 너머의 '나다움'이란 탐스러운 열매를 따러 가는 과정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