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자. 슈퍼히어로가 ‘꿀 빨던’ 시절은 끝났다. 마블이 아무리 새로운 배우들을 투입해 갱생을 시도해도, DC가 화려한 기술을 선보인다 해도 변심한 팬들의 마음은 쉽게 안 바뀐다. 대중은 이제 히어로가 피로하다. 그런 시대에 슈퍼맨이 돌아왔다.
슈퍼맨이 누구인가. 슈퍼히어로 족보 최상단에 위치한 히어로 중의 히어로, ‘조상뻘’ 히어로다. 게다가 능력은 물론 성품까지 ‘깔 게 없는’ 이 신적인 능력을 지닌 히어로는 인간미 품은 히어로들이 사랑받는 현대 히어로 시장에서 다소 동떨어진 존재처럼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가까이하기엔 너무 완벽한 당신, 나쁘게 말하면 다소 지루하고 고루한 캐릭터다. 그런 슈퍼맨을 다시 리부트 한다고? 어떻게?
제임스 건에 의해 리부트된 <슈퍼맨>의 오프닝은 이러한 우려를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도 같다. 놀랍게도 영화는 슈퍼맨에게 패배를 안기며 출발한다. 슈퍼맨의 전사를 브리핑한 짧은 내레이션이 끝나면 하얀 설원 위에 온몸이 구겨져서 괴로워하는 슈퍼맨의 모습이 보여진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어 죽상을 한 슈퍼맨은 우리가 익히 알던 신적인 존재와는 다르다. 슈퍼독 크립토가 망토로 질질 끌어준 덕분에 겨우 살아나는 슈퍼맨이라니. 제임스 건은 출발에서부터 신적인 슈퍼맨을 지상으로 내리꽂아, 이 존재 역시 실패할 수 있고 아픔을 느끼는 히어로임을 천명한다. 영리한 접근법이 아닐 수 없다.
슈퍼맨은 1938년 미국 대공황 시기, DC 코믹스를 통해 등장했다. 콘텐츠엔 동시대인의 욕망이 담기는 법이다. 슈퍼맨은 당시 경제공황에 시달리던 미국인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미지를 통해 인기를 공고히 했다. 슈퍼맨 캐릭터가 영화적으로 가장 큰 화력을 뿜어냈던 건 리처드 도너가 연출하고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했던 <슈퍼맨>(1978) 시절이다. 당시 슈퍼맨은 대중이 히어로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품은 존재였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을 보고 자란 세대에 ‘히어로=슈퍼맨’이란 강한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됐다.
그랬던 슈퍼맨은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2006)를 지나면서 대중과 다소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 시대는 변했다. 대중들이 신적인 존재보다 인간미 한두 스푼 머금은 히어로에게 더 열광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결정적으로 <맨 오브 스틸>(2013)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의 잭 스나이더는 슈퍼맨을 흡사 배트맨과 같이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어버렸다. 미국의 낙관을 상징하기엔 너무 멀리 가버린 설정이었다. 어두워진 슈퍼맨의 최근 이미지를 제임스 건은 <슈퍼맨> 오프닝에서부터 박살내면서 시작한 셈이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임스 건이 메가폰을 잡는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그러길 바랐던 바다. 제임스 건은 경쟁사 마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부작을 성공으로 이끈 감독이다. 이때 그가 보여준 장점 중 하나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B급 유머’다. ‘B급 유머’ 구사에 일가견이 있는 제임스 건이 유머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슈퍼맨을 다시 소환한다고 했을 때 누리꾼들의 호기심이 치솟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슈퍼맨>엔 ‘B급 유머’뿐 아니라 제임스 건의 DNA가 곳곳에 널려 있다. 슈퍼맨의 원맨쇼가 아닌 협업을 강조하는 액션이 대표적이다. 슈퍼맨이 홀로 고군분투할 때마다 ‘저스티스 갱’이 나타나 슈퍼맨을 돕는 동시에 허세를 떨며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한다. 슈퍼맨 같은 ‘메타휴먼(초인)’인 저스티스 갱은 그린 랜턴(네이선 필리언), 호크걸(이사벨라 메르세드), 미스터 테리픽(에디 가테지)으로 구성된 3인조 팀으로 뭔가 엉성하고 어딘가 어색한데, 임무는 또 잘 해낸다.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나사 하나 빠진 듯 우당탕했던 멤버들의 협업이 저스티스 갱을 통해 <슈퍼맨>에서도 펼쳐진다. 유쾌하고 흥겹다.
‘정의 수호’라는 슈퍼맨 특유의 정신은 이어지지만, 그가 상대하는 악당은 이전과 달리 추상적이지 않다. 제임스 건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다분히 상기시키는 사건을 극 중심에 박았다. 전 세계 정치는 물론, 금융ㆍ경제ㆍ문화까지 쥐고 흔들고 ‘가짜 뉴스’ 문제를 짚기도 한다.
영화 초반 슈퍼맨은 독재 국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분쟁 지역에 개입했다가 사면초가에 놓인다. 슈퍼맨으로서는 힘없는 국가의 국민을 도왔을 뿐인데, 그것이 국제 외교에 참견한 모양새가 되면서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어버렸다. 히어로라는 존재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건, 마블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깊게 다뤘던 문제다. 히어로를 국가가 관리하는 ‘슈퍼히어로 등록법’을 둘러싼 히어로들 간의 시각차와 그로 인한 다툼 말이다.
물론 <슈퍼맨>은 <시빌워>처럼 이 이슈를 깊게 짚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를 통해 슈퍼맨이 지향하는 바를 확고하게 보여준다. 그가 지향하는 건 다음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단지 위기에 처한 지구인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분열이 넘치고, 자극적인 선동이 가득한 세상에서 제임스 건은 슈퍼맨을 통해 선함의 필요성을 되살린다. 고루해 보일지언정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그 정신을 말한다.
<슈퍼맨>에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상당히 많다. 일단 거대한 물량을 투입한 액션이 연이어 이어지는데도 시그니처라 할 만한 특별한 액션은 보이지 않는다. 액션의 포만감이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위기가 고조되는 과정에서 쌓인 긴장 대비, 그 위기가 풀리는 과정은 다소 ‘어물쩍’이라 김이 팍 새는 면도 있다.
커크 앨린, 조지 리브스, 크리스토퍼 리브, 브랜드 루슨, 헨리 카빌에 이어 슈퍼맨 쫄쫄이 의상을 입는 영광을 얻은 데이비드 코런스웻의 매력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마블의 인기 히어로들이 배우의 개성을 흡수해 사랑받았음을 상기했을 때, 데이비드 코런스웻은 반대로 캐릭터에 묻어가는 면이 커 보인다. 사실 이건 큰 단점인데, 배우에게 느끼는 매력은 주관적인 부분도 크니 데이비드 코런스웻이 슈퍼맨을 디딤돌 삼아 어떤 배우로 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히어로가 한물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에 DC 스튜디오는 가장 긴 역사를 지닌 히어로를 통해 베팅을 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모험이 히어로 판에 새로운 긴장을 선사할지, 아니면 히어로물은 정말로 끝났다는 인식을 공고히 하는 작품으로 남을지.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