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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니아> 물파스는 등장하지 않지만 개성은 확고하다

by siwoorain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한국 영화 걸작을 꼽을 때마다 어김없이 호출되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말이다. 시대를 앞서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평가 속에 시대와 함께 재평가되고 또 재평가됐던 이 영화가 태평양을 건넜다. 문익점처럼 씨앗을 가져가 할리우드에 뿌린 건 <지구를 지켜라!>의 투자 배급사였던 CJ ENM이다.


이 프로젝트에 올라탄 창작자들 때문에 더 구미가 끌린다. <유전> <미드소마>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리 애스터가 리메이크 공동 제작을 맡았다. 연출은 국내에서도 마니아 팬을 보유한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이 감독이 누구인가. <더 랍스터>(솔로들이 호텔에서 짝을 찾는 데 실패하면 동물로 변하게 된다는 이야기)에서 장준환만큼이나 보법이 다른 상상력을 보여준 감독이다. <지구를 지켜라!>와 제법 궁합이 맞아 보인다.


문제는 리메이크된 영화 중 지금까지 한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극장 개봉 없이 곧장 DVD 시장으로 직행한 <엽기적인 그녀> 리메이크작을 비롯해 <올드보이> <시월애> 등 기존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기는커녕 말라 비틀어져 생명력을 잃은 바 있다. 그렇다면 <부고니아>는 어떨까. 또 한번의 실패로 기록될까. 아니면 한국 영화 리메이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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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는 같지만, 뉘앙스는 다른 리메이크


내용은 이렇다. 양봉을 하며 살아가는 공장 노동자 테디(제시 플레먼스)는 사촌 돈(에이든 델비스)을 꼬드겨 그가 일하는 기업의 대표 미셸(엠마 스톤)을 납치한다. 미셸이 지구를 파괴하기 위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테디는 이 기업의 생체실험으로 인해 어머니가 병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미셸을 통해 외계인 수장을 만나려 한다. 어머니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다.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켜라!>가 지녔던 기승전결의 뼈대를 크게 비틀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외계인들의 통신수단으로 들이민 설정(그래서 미셸은 납치되자마자 삭발을 당한다)도 그대로이고, 원작에서 신하균이 연기한 납치범 병구가 양봉을 한다는 요소도 그대로 유지해 제목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부고니아’는 그리스어로 죽은 소의 사체에서 벌이 생겨난다고 여긴 고대의 잘못된 믿음을 뜻한다.


그러나 원작과 <부고니아>는 ‘뉘앙스’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를 이끄는 건 캐릭터 변화다. 원작에서 병구에게 납치당한 백윤식이 연기한 화학회사 CEO 강만식은 ‘악덕 기업인’의 표상 같은 인물이었다. 조폭을 고용해 노조 간부에게 린치를 가하는 그에겐 주가조작과 부패 스캔들도 늘 따라다녔다.


인간 문명에 대한 경고


반면 그를 치환한 캐릭터인 <부고니아>의 미셸은 글로벌 바이오 기업의 여성 CEO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유능함을 자랑한다. 원작과 달리 <부고니아>는 이 인물의 품성을 평가할 만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다만 새벽 일찍 일어나 강도 높은 운동과 요가로 몸과 정신을 단련하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자기 관리에 철저한 인물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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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납치당한 상황에서도 미셸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납치범들을 설득하려는 기개를 보인다. 이처럼 선악 구도가 흐릿해지면서 (병구에게 기울어졌던 원작과 달리) 관객의 감정이입의 폭이 좀 더 넓어졌다. 순수한 광기를 보였던 병구와 달리, 음모론에 빠진 극단주의적 면모가 강한 테디로 인해 주인공들 간 대립에도 좀 더 꼿꼿한 긴장이 실린다.


캐릭터 변화는 메시지 변화로 이어진다. 원작은 강만식이라는 ‘갑’을 통해 자본과 권력에 날을 세웠다. 반면 <부고니아>는 마약, 환경오염, 핵 등으로 지구를 황폐하게 만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결말은 원작과 달리 ‘지구 폭발’이라는 극단으로 나아가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선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는 없지만) 인간 문명에 대해서만 그만의 엄중한 처벌을 내려서다.


<부고니아>엔 물파스와 때밀이 수건 같은 획기적이고 가성비 좋은 고문 도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병맛’이 약하다. 대신 요르고스 란티모스 특유의 차갑고도 냉소적인 유머가 극을 이끈다. 리메이크 과정에서 감독이 자신의 개성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다만 B급 유머는 <지구를 지켜라!>의 정수와도 같은 매력으로 여겨진 요소이기에, 원작 팬들에겐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원작을 모르는 편이 오히려 관람에 이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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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인물은 미셸로 분한 엠마 스톤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가여운 것들>(2023)에서 워낙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준 터라, 이번 영화에서의 삭발 감행이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기를 위해서라면 머리카락 정도야 대수겠느냐는 자세와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은 이 배우의 범상치 않은 행보를 응원하게 만든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지식


1. <지구를 지켜라!>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의외의 인물이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디카프리오 주연의 <타이타닉>이 전 세계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 인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안티 디카프리오’라는 사이트가 생겨났는데, 해당 사이트에 가입한 사람들은 “디카프리오의 앞머리는 외계인과 교신하기 위한 것이고, 그가 여자들을 홀려 지구를 정복하려 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장준환 감독은 이 소식을 듣고 <지구를 지켜라!>를 떠올렸다.


2. 당초 <부고니아>는 장준환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기로 기획됐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에게 메가폰이 맡겨졌는데, 장준환의 개성이 할리우드에 이식됐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3. 창의성 고갈이라는 엄중한 평가와 함께 한국 영화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지금,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가 해외에서 리메이크된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한국 영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사저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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