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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Dec 21. 2021

마블-소니, 스파이더맨 동맹 ‘윈윈(winwin)’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블은 떡밥의 제왕이나니. 마블 스튜디오가 소니 픽쳐스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고 만든 두 번째 스파이더맨 솔로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에서 닉 퓨리(사무엘 L. 잭슨)는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홀)를 소개하며 말했더랬다. “벡은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이야. 핑거스냅이 우리의 차원에 구멍을 뚫어놨어.” 다중우주로도 불리는 ‘멀티버스(multiverse)’는 돌이켜 보면, 스파이더맨/피터 파커(톰 홀랜드) 미래에 대한 거대 예고였다. 다양한 캐릭터를 통한 횡적 확장을 노리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겐 사랑의 묘약과도 같다. 영웅을 떼로 모으는 건 마블이 지난 10여 년간 집요하게 파고든 전략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그 호출 영역이 멀티버스를 통해 더욱 광범위해질 것임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우렁차게 선언한다. 

    

미스테리오로부터 정체를 강제 노출당한 피터 파커는 유명인에게 따르는 사생활 감시와 가짜 뉴스 등으로 골치가 아프다. 평범한 일상을 찾기 위해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세상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잊도록 마법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피터의 소원을 들어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주문 오류로 멀티버스가 열리고 그 속에서 소니 픽쳐스 시절 ‘스파이더맨’ 빌런들이 하나둘 소환된다.     


소니 스파이더맨 VS 마블 스파이더맨     

판권 문제로 낳아준 아버지(마블 스튜디오)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스파이더맨이 MCU에 합류한 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였다. 마블과 (스파이더맨 저작권을 손에 쥔) 소니의 전략적 제휴 덕분이었다. 소니로부터 스파이더맨 자유 이용권을 잠시 돌려받은 마블 스튜디오는 빠르게 솔로 무비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존 왓츠의 손에 탄생한 ‘마블 스파이더맨’은 우리가 기존에 봤던 ‘소니 스파이더맨’, 그러니까 샘 레이미 버전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이나 마크 웹 버전의 스파이더맨(앤드류 가필드)과는 확연히 달랐다.      


소니 스파이더맨들이 생계형 히어로로서 수트를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 입고 홀로 고군분투할 때, 마블 스파이더맨은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부터 선물 받은 첨단 수트를 입고 어벤져스 형·누나들과 팀을 이뤄 발랄하게 활동했다. 어벤져스에서 스파이더맨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마블 팬들을 열광시킨 부분.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스파이더맨 특유의 정서인 외로움이 생략된 점은 소니의 오랜 팬들로부터 아쉬움을 사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노 웨이 홈> 그런 소니 팬들의 아쉬움을 보충해 주는 작품이다. 방법은 ‘아이언맨 주니어’로 불리던 피터 파커의 완전한 정신적 독립이다. 이를 위해 <노 웨이 홈>이 꺼내든 건 흥미롭게도 소니 스파이더맨의 절대 테마였던 “거대한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다. 한마디로 <노 웨이 홈>은 피터 파커의 뿌리를 찾아가는 영화다. 샘 레이미와 마크 웹이 시리즈 1편에 다뤘던 ‘상실감’을 존 왓츠는 3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피터 파커에게 외로움의 정서를 돌려주고 동시에 그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서사를 획득한다.  

    

무엇보다 <노 웨이 홈>은 관객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찌르는데 훌륭한 수완을 발휘한다. 어떻게? 추억 소환을 통해. 단순히 소니 시절의 빌런을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까지 캐스팅해 팬들에게 기쁨의 ‘입틀막’을 선사한다. 마블과 소니의 전략적 협상이 스파이더맨 리부트에 그칠 줄 알았지, 마블의 MCU 흐름 안에 소니의 20년 역사가 포개지는 마법을 일으킬 줄 누가 알았을까.      


악당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노 웨이 홈>이 기존 히어로 영화와 차별화되는 것은 빌런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피터 파커가 의도하지 않게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됐듯,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등장해 온 빌런들도 뜻하지 않게 힘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다. 닥터 옥토퍼스(알프리드 몰리나, 2004)는 실험 도중 발생한 돌발 사고로 원치 않게 악의 화신이 된 박사였고, 리자드(리스 이판, 2012)는 본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장애 없는 세상을 살도록 돕고 싶었던 파충학 권위자였다. 일렉트로(제이미 폭스, 2014) 역시 평범한 전기공이었으나 우연한 사고로 악인이 된 인물이다. 그린 고블린(웰렘 대포, 2002)은 하물며 피터 파커 절친의 아버지. 그러니까, 이들도 알고 보면 피터 파커의 이웃이었다.      


<노 웨이 홈>은 스파이더맨의 활약에 몰입하느라, 뒤돌아보지 않았던 이 사실을 파고든다. 톰 홀랜드가 연기한 피터 파커는 말한다.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는 주어져야 하잖아요!” 순진한 얼굴로 빌런을 치료해 주자 주장하는 피터 파커의 선택이 온전히 이해되는 바는 아니고, 그로 인해 꼬이는 상황이 고구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것이 스파이더맨의 천성임을 영화는 증명해 내려 안간힘 쓴다.  


<노 웨이 홈>이 아쉬움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 액션 합이 그리 도드라지지는 않고, 수트의 차별화가 크지 않아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웰렘 데포가 연기한 그린 고블린에 비해 샌드맨과 리자드가 너무 납작하게 묘사된 것도 아쉬움이다. 그러나 ‘노 웨이 홈’은 앞서 이야기했듯 이성보다 보는 이의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이고, 이를 통해 약점을 살짝 눈감게 한다.     


비즈니스적으로 영악한 팬무비     

실제로 기억 저 너머의 추억을 건드리는 뭉클한 장면이 여럿 연출된다. 가령, 연인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를 구하지 못한 자책 속에서 살았던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연인인 MJ(젠데이아 콜먼)를 구해 낼 때, 저릿한 감동이 밀려온다. 무엇보다 스파이더맨들은 모두 그들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그로 인해 자책한 공통의 아픔이 있다. 사람은 결코 타인의 슬픔을 100% 이해할 수 없지만, 이들이라면 다르다. 이들은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이들은 완벽한 위로를 서로에게 건네며 앞으로 나아간다.      


여러 짜릿한 순간에도 불구하고, <노 웨이 홈>이 <스파이더맨> 20년 역사 중 최고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 망설여진다. 이 영화의 감흥은 전작의 영광과 엄청난 캐스팅에 크게 빚지고 있을 뿐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비즈니스적으로 영악하게 뭉쳐진 느낌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하면 팬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소니-마블의 합동 능력은 대단한 것이며, 이런 거대 이벤트를 팬 입장에서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마블과 소니의 전략적 동거는 현재까지, ‘윈윈(win-win)’이다.     


('데일리임팩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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