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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May 22. 2022

<범죄도시2> 1편이 사랑받은 이유 꿰뚫은 영리한 속편

강력반 형사는 조폭과 함께 충무로를 먹여 살려온 직업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분야의 거성 중 하나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다. 부패 경찰 조형사(안성기)와 원칙주의 신참 강형사(박중훈)가 짝을 이뤄 빚어내는 '버디 무비' 형식의 이야기는 이후 출현한 형사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신분을 이용해 부정축재를 즐기는 조형사는 '비리 경찰'이라는 하나의 캐릭터 원형이 되기도 했다.     


<투캅스>와 같은 뿌리(강우석 감독)에서 태어난 <공공의 적>(2002)의 형사 강철중(설경구)은 범인에게 빼앗은 마약을 거래하고 뒷돈을 챙기는 청출어람을 시전했는데, 캐릭터가 사랑받으며 한국 영화로서는 드물게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영화 <강철중>(2008)으로 시리즈가 이어졌다. 아내 눈치 살피는 봉급쟁이지만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하나는 투철했던 <베테랑>(2015)의 서도철(황정민) 형사와 잠복근무를 위해 마법의 치킨 소스까지 제조한 <극한직업>(2018)의 독수리 오형제 형사들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통쾌한 액션과 유쾌한 웃음을 바탕으로 두 영화 모두 천만 관객을 모집했다.     


이제껏 이런 형사는 없었다     

그리고 <범죄도시> 마석도(마동석)가 당도했다. 2017년 추석에 개봉해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흥행을 석권한 <범죄도시>의 마석도는 기존 선배 형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 싱글이야"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들로부터 자유로운 그는 나약함이나 피로감이라는 단어와는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슈퍼히어로적 형사' 이미지를 영화에 채워넣었다. 보통의 형사 장르에서 관객은 '우리 편' 형사의 안위를 걱정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마석도와 붙는 악당을 걱정하게 했으니, 이제껏 이런 형사는 없었다.     


5년 만에 찾아온 <범죄도시2>는 1편이 왜 사랑받았는가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영리한 속편이다. 존재 자체가 같은 편에겐 무기이고 상대에겐 흉기인 마석도 형사의 '응징'이라는 큰 틀을 유지한 채, 악역 빌드업에 정성을 들이고 유머를 적절히 곁들였다. 곁가지를 최소화하고 '범죄' 그 자체만 보고 달려가는 집중의 자세 또한 그대로다. '주인공의 가족사'라든지 '형사의 생활고'라든지 '싱글 형사의 로맨스' 같은 건 사족인 양 모두 빼고 사건 하나만 팬다. 이 영화의 템포가 남다르게 느껴진다면 그건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는 편집도 있지만, 군더더기 없이 직선으로 내지르는 선택과 집중의 힘 덕이다.     


'더 크게, 더 많이'라는 속편의 법칙은 <범죄도시2>도 비켜가지 않는다.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했던 1편의 무대를 베트남까지 확장하며 더 다양한 볼거리를 담으려 한 흔적을 드러낸다.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기 위해 현지로 떠난 마석도가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무자비한 범행을 저지르는 강해상(손석구)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액션도 다채로워졌다. 베트남 가옥의 좁은 복도에서 펼쳐지는 액션과 버스에서의 1대1 결투신 등 공간 활용이 특히나 흥미롭다. "전매특허인 복싱 외에도 유도, 호신술 등의 기술을 연마하고자 했다"는 마동석의 말처럼 다양하게 근육을 쓰는 마석도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치고는 수위가 꽤 센 편인데, 액션의 방향이 카타르시스를 향하면서 잔혹한 느낌을 살짝 눌러주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유머. 이 시리즈의 유머는 무심한 듯 기습적으로 튀어나와야 제맛이다. 1편에서 "혼자 왔니?"라는 장첸(윤계상)의 질문에 "어, 나 아직 싱글이야"라는 기상천외한 대답으로 모두를 폭소케 한 상황이 대표적이다. 그런 면에서 유머 공력은 전편에 비해 약하다. 특히 극 초반, 작정해서 웃기려는 장면이 여럿 포착되는 데 과하게 힘이 들어간 탓에 적시타를 날리지 못하는 인상을 노출하기도 한다. 영화가 시작된 후 30분 지점까지 다소 불안한 눈빛으로 이 영화를 감상한 건, 그런 과도한 유머가 눈에 너무 자주 띄어서다. 그러나 상대적인 평가일 뿐 <범죄도시2>의 유머가 약한 건 아니다. 초반엔 종종 엇박자를 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황을 노린 유머들이 적재적소에 등장하며 종국엔 판세를 만회한다.     


마석도 vs 강해상,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의 맞대결     

1편 인기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건 빌런들의 존재감이었다. 장첸으로 분한 윤계상을 비롯한 진선규(위성락 역), 김성규(양태 역)의 합이 어찌나 쫄깃하고, 조선족 말투는 또 어찌나 맛깔스러웠는지. 이 영화로 윤계상이 재발견됐고, 진선규는 오랜 무명을 딛고 날개를 달았으며, 신인급이던 김성규도 충무로에 빠르게 안착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윤계상이 범죄집단과 대치하는 장면에서 내뱉은 "니, 내 누군지 아니?"라는 대사는 그해 유행어로 떠올랐으니, 그 존재감을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당연한 일이다. 2편을 만들면서 제작진은 빌런 캐릭터 구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해법은 '다르게'에 찍힌 듯 보인다. 여러 빌런에 힘을 실었던 1편과 달리 2편에선 강해상이라는 '절대 악'에 집중해 '마석도 vs 강해상'이라는 1대1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부담 백배인 빌런 캐릭터를 껴안은 손석구는 장첸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악당을 선보이며 2편의 커다란 구멍일 수 있었던 빌런의 존재감을 효과적으로 막아낸다. 다만 1편과의 차별화를 성공시켰다는 것이지, 캐릭터만 두고 보면 장첸처럼 그리 오래 화자될 캐릭터는 아니다. "니, 내 누군지 아니?" 같은 포인트 대사나, 장첸처럼 핼러윈데이에 따라 해보고 싶은 독특한 스타일을 챙기지 못한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1편에 비해 흐려 보이는 몇몇 지점에도 2편의 전체 화력이 약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장점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마동석이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는 범죄영화 속에서 <범죄도시> 시리즈를 특별하게 하는 건 마.동.석이라는 존재감이다. '할리우드에 드웨인 존슨이 있다면 우리에겐 마동석이 있다'는 느낌을 안기는데, 마동석 개인이 지닌 개성이 캐릭터에 깊숙이 관여해 극에 연신 활기를 부여한다. 관객에게 안도를 안기는 듬직한 어깨, 권선징악을 향해 박력 넘치게 뻗는 주먹 같은 것들 말이다. 화룡점정은 우람한 몸에서 튀어나오는 의외의 귀여움이다. 그 낙차에서 <범죄도시>의 재미가 피어오른다.     


충무로에서 형사물이 끊이지 않는 건 범죄 소탕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액션을 내세운 시각적 쾌락을 챙기기에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이행하기에 마동석은 최적화된 재능을 지닌 배우이고, <범죄도시>는 그런 그를 최대치로 활용한 영화다. 주인공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더 통쾌하게 악당을 '뽀갤' 것인가를 지켜보게 하는 형사물은 흔하지 않다. <투캅스> <공공의 적> 시리즈처럼 연작물 행보를 선언한 <범죄도시>가 만들어갈 앞날이 궁금하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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