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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l 22. 2022

<토르: 러브 앤 썬더> 마블의 전성기는 지났는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사랑은 일거에 식지 않는다. 쌓은 정이 있기에 식더라도, 서서히 식는 법이다. 시작부터 웬 사랑 타령이냐면, 마블 때문이다. <아이언맨>(2008)으로 첫 삽을 뜬 후,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세계관을 확장해 온 세월도 어느덧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그 시간 동안 마블은 전 세계 관객을 울리고 웃겼고, 추억도 선물했다. 그런 마블을 향한 팬들의 사랑도 상당한 것이어서 ‘마블 덕후’들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졌다. 2019년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은 그런 마블과 팬들의 쌍방 사랑이 절정에 이른 시기로, 국내에서도 무려 1400만에 가까운 관객이 마블 영웅들이 외치는 “어벤져스 어셈블(Avengers Assemble)”에 큰 환호를 보냈다.     


문제는 이후다. 마블 성공 신화의 두 축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아이언맨)와 크리스 에반스(캡틴 아메리카)가 <엔드게임>을 마지막으로 퇴장한 후, 마블은 확실히 삐걱거리고 있다. 새로 합류한 히어로들이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고, 시리즈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슬슬 고개를 들더니, 디즈니+와의 크로스오버로 MCU 진입장벽마저 높아져 버린 상황. 마블이 위험한데?     

MCU에 8편이나 출연한 원년 멤버 토르(크리스 헴스워스)가 <토르: 러브 앤 썬더>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던 건 그래서다. 토르가 꺼져가던 마블에 대한 애정 불씨를 다시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런데 아뿔싸! <러브 앤 썬더>는 개국공신으로서의 믿음직한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마블을 향한 근심에 돌만 얹는 결과물이다. 다우니 주니어-에반스와 달리 마블과의 계약 연장을 선택했던 크리스 헴스워스는 불운하게도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마블이 진짜 위험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엔드게임>에서 이어진다. “이젠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라며 발키리(테사 톰슨)에게 ‘뉴 아스가르드’를 맡기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과 우주여행을 떠난 토르는 나름의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몸에 덕지덕지 붙었던 지방을 불태우고 몸짱으로 다시 환골탈태하며. 그러던 중 도살자 고르(크리스찬 베일)가 신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뉴 아스가르드로 돌아오는데, 그곳에 예기치 못한 깜짝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 과거 연인이었던 제인(나탈리 포트만)이다. 자신의 옛 무기인 묠니르를 들고 있는 제인이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토르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사실 <토르> 솔로 무비가 매번 좋았던 건 아니다. <토르: 천둥의 신>(2011)은 <어벤져스>(2012)를 위한 2시간 광고 같은 느낌이 강했고, <토르: 다크 월드>(2013) 역시 아이언맨 같은 솔로 무비에 비하면 다소 미약한 느낌이었다. 그런 토르의 체면을 일 거에 반전시킨 이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그가 연출한 <토르: 라그나로크>(2017)는 능력 대비 저평가되던 토르를 재발견하게 만들며 그의 주가를 상승시켰다. 마블이 타이카 와이티티에게 <러브 앤 썬더> 연출을 다시 맡긴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허망하게도 영화는 일보 전진 없이 돌림노래에 그치고 있다.     

일단 유머의 ‘양’은 필요 이상으로 많고, ‘질’은 기대 이하로 낮다. 원년 멤버 중 유독 백치미가 발달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만큼은 박력과 진지함을 보여왔던 토르다. 3편 <라그나로크>가 유독 사랑받은 것도 이러한 유머와 진지함의 조율이 좋았기 때문. 그런데 <러브 앤 썬더>는 그 선을 넘어 버린다. 시종일관 너무 가볍달까. 유머 타율마저 높지 않다 보니, 어색한 순간이 여럿 포착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담으려고 한 것도 패착이다. 딸을 잃고 신에게까지 버림받은 후 어둠과 손잡은 악당. 왕관의 무게를 덜고 정체성을 찾으려는 왕자. 헤어진 여인과의 재회. 그런 여인의 불치병. 안타까운 부성애, 이 와중에 ‘신들의 신’ 제우스의 등장까지. 웬만한 영화에 한두 개 정도 들어가는 클리셰들이 <러브 앤 썬더>엔 너무 많다. 이것들이 잘 섞이지도 못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캐릭터 빌드업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다크 월드>를 끝으로 하차한 나탈리 포트만을 마블로 재소환하려고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연기파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누군가의 여자친구’ 역에 다시 응할 리는 만무한 일. 그런 그녀에게 영웅으로서의 1인분 분량을 맡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제인이 묠니르를 잡게 되는 과정이 지나치게 진부해서 흥이 떨어진다. 매력 넘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을 초반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도 재능 낭비.      

제우스 역에 무려 러셀 크로우라는 명배우를 캐스팅했지만, 도무지 이 배우가 왜 여기에 나와서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지 살짝 안쓰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빌런으로 출연한 크리스찬 베일이 혼란스러운 서사 속에서 그나마 존재감을 보여주지만 어디까지나 배우 개인의 역량일 뿐 연출력과는 무관하다. 그러고 보니 <러브 앤 썬더>가 가장 확실하게 증명한 건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의 능력치다.       


결정적으로 <러브 앤 썬더>에는 우리가 마블 영화에 환호했던 ‘흥분’이 빠져있다.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가 부재한 데다가, 새로운 전진 없이 의무방어전만 한 까닭이다. 토르가 큰형님으로서 향후 MCU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딱히 생기지 않는 것도 뼈아프다. 이것은 ‘페이즈 4’에 들어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결함이기도 한데, 캐릭터들 매력이 딱히 잡히지 않다 보니 이들이 뭉쳐서 활약하는 향후 그림에 대한 설렘이 좀처럼 일지 않는다.      


솔로 무비의 주연으로 활약한 히어로가 다른 작품에선 카메오로 출연하고, 또 어떤 작품에선 떼로 등장해 협업하는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 자체를 바꾼 마블의 전략에 슬슬 과부하가 오고 있는 것일까. <엔드게임>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위해 지난 10년 동안 달려왔다고 보면 됩니다.”라고 말한 마블 수장 케빈 파이기는 이후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나. 여러 캐릭터를 내놓으며 빌드업을 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 비전이 아직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마블의 전성기는 지났는가, 라고.      


(SRT 매거진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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