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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l 26. 2022

<헤어질 결심> 탕웨이, 미결로 남을 결심

탕웨이와 안개

어떤 사람은 나와 달라서 끌리지만, 또 어떤 사람은 나와 너무 같아서 끌린다.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탕웨이)와 장해준(박해일)은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산에서 추락사한 남자의 아내인 중국인 여자와 그런 여자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취조해야 하는 형사. 의심받고 의심하는 관계. 그러나 남자는 직감적으로 알아본다. 저 여자, 나와 같은 종족이라는걸. 의심은 호기심이 되고, 호기심은 관심이 되고, 남자는 이윽고 궁금해진다. 그녀라는 사람이.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저서 <사랑의 단상>에서 사랑은 “미묘하고도 은밀한 기호들의 천국”이라고 이야기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은밀하고도 미묘한 사랑의 ‘밀어/기호’를 형사와 피의자 사이의 탐문과 미행과 잠복근무에 포갠다. 그리하여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대사는 암호가 되고 은유가 된다.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의 미세한 떨림을 보며 관객은 눈치챈다. “(휴대폰 암호)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라고 서래에게 던진 해준의 속뜻이 ‘당신이라는 사람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다’라는 말의 다름 아님을. 그녀의 집을 엿보는 잠복근무엔 혼자된 여자를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이 숨어 있음을.      

서래의 ‘서툰 한국어’는 그런 해준을 더욱 안달 나게 만드는 화약고다. 불명확한 단어의 뜻을 해석하기 위해 해준은 서래가 속삭이는 말 하나에도 더 집중한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라는 서래의 혼잣말 앞에 서성이다가,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라는 언어 앞에서 소용돌이친다. 그렇게 ‘저 사람은 범인일까’라는 물음은 서서히 ‘저 사람도 나를 사랑할까’로 옮겨붙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제스처가 지닌 의미를 해독하려 밤잠을 설쳐 본 이들이라면, 서래가 방출하는 기호 앞에 배회하는 해준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 안개처럼 속이 좀체 잡히지 않는 탕웨이의 묘한 표정은 드라마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촉매제다. 남편의 죽음 앞에 동요하기는커녕 피식 웃음을 흘리는 예상치 못한 탕웨이의 압도적인 연기는 직업적 사명감이 투철한 해준과 그를 믿고 따르는 형사들은 물론 관객까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랑을 간접화법으로 다루는 <헤어질 결심> 안에서 탕웨이는 남성을 파멸시키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행보를 과감하게 비틀고, 관객의 의심과 맞서는 동시에, 사랑하는 이의 붕괴된 마음을 봉합하기 위해 스스로를 봉인함으로써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이번에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결로 길어 올려버린다.      

영화를 복기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서래가 감정을 감추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속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미스터리하게 보이는 건 왜일까. 그녀의 의상이 녹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건 왜일까. 그녀 집의 벽지 무늬는 왜 산 같기도 하고, 파도 같기도 할까. 그건 서래의 문제라기보다 서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당신과) 한마디라도 하려면 살인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라고 말하는 서래의 대담한 사랑법을 보통의 사랑 문법 안에서 바라보기엔 너무 낯설어서 은연중에 밀어낸 게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혼란을 겪는 건 서래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와 해준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 안에서 탕웨이는 운명처럼 들이닥친 사랑을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껴안고 나아갔다. 스크린 데뷔작 <색, 계>(2007)에서 탕웨이가 연기한 왕치아즈는 혁명을 위해 친일파 핵심 인물 이 선생(양조위)을 미인계로 꿰어 암살하려는 스파이. ‘색’(色) 안에서 서로를 이성적으로 경계하던 이 선생과 왕치아즈는 ‘계’(戒)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무섭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감한다. 서로가 서로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걸. 이 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는걸. 그리고 맞이하는 파국. 영화에서 탕웨이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감정을 안개처럼 숨기는 연기를 하다가, 진짜 그 역할에 빠지고 마는 여인의 운명을 강단있게 연기해 낸다.      

영화는 왕치아즈가 스파이라는 사실을 이 선생이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신이 있던 ‘색’의 세계로 돌아간 이 선생과 달리, 왕치아즈는 혁명 대신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다는 것을. 서래로 인해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자 도망치듯 이포로 달아난 해준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서래가 이와 같다.      


<만추>(2011)의 애나(탕웨이)는 어떠한가. (흥미롭게도) 서래처럼 폭력적인 남편을 죽인 애나는 그 죄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어머니 장례식을 위해 특별 휴가를 나온다. 그리고 서래처럼 안개의 도시(시애틀)로 간다. 사랑에 크게 다친 후 세상과의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애나의 심장에 다시 피가 돌기 시작하는 건 언어가 다른 한국인 남자 훈(현빈)을 만나면서다. 중국어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애나와 그 뜻도 모르면서 자신이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 ‘하오(좋아요)’와 ‘화이(나빠요)’로 맞받아치는 훈. 이때 애나에게 훈의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언어를 써도 상대를 오해하거나 오해받기 십상인 세상에서, 애나는 훈의 마음을 꿰뚫는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해준보다, 먼저 그 뜻을 캐치한 서래가 그러하다.      

<헤어질 결심>의 엔딩을 보고 난 후, 불현듯 떠오른 영화는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였다. ‘사랑한다’라는 직접적인 말 한마디 없이 절절한 사랑을 그려냈던 <화양연화>에서 차우(양조의)와 수리첸(장만옥)은 사랑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헤어진다. 이별 후 차우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찾아 벽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그녀와의 비밀을.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서래 역시 해준의 미제 사건이 되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그와의 영원을 기약한다. 이뤄졌다면 그 끝이 존재했을 사랑를 원천봉쇄함으로써 유예시키는 결심. 만조 속에 자취를 감춘 여자와 그런 여자의 흔적을 찾아 파도와 맞서고 있는 남자.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를 볼 수 없는 사람들. 남은 생애를 서래라는 풀지 못할 실마리를 안고 살아가게 될 남자의 운명. 박찬욱이 쓴 어른들의 사랑은 어찌 이리도 먹먹한가. 


(퍼스트룩(1st Look) 매거진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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