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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Apr 06. 2023

장국영,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장국영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상징했던 배우였던 것 같아요. 우리 속의 아프고 약하고 작았던 마음들을 장국영 씨가 보여줬기 때문에 그 마음이 다치고 훼손된 것 같아서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장국영이라는 얼굴을 볼 때마다 우리 속의 약한 부분들을 떠올리게 되는 연상작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중혁 작가가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에서 한 말이다. 나는 이 표현이 장국영에 대한 가장 적확하고도, 섬세하며, 핵심을 꿰뚫는 최고의 수사라고 생각한다. 처음 듣고 무릎을 치다 못해 발목까지 쳤다. 장국영에게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던 나에게 김중혁 작가가 언어로 그 실체를 건져 올려 준 느낌이었달까. 지금도 장국이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아리다. 시리고 아프다. 김중혁 작가의 말대로 그의 어떤 부분이 나의 약한 부분을 시종 찌르기 때문일 것이다.      

4월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 2003년 만우절에 홍콩 만다린오리엔탈 호텔에서 투신하며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한 장국영. 올해도 어김없이 4월 1일엔 창국영 영화들이 방송사에 편성됐고, 그를 추억하는 이들의 글이 SNS에 넘실거렸다. 그리고 <해피투게더>가 재개봉했다. 아니, 재재재개봉했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라더니, 아무리 그래도 도대체 몇 번째 재개봉인가. 그런데 왜 또 재재재개봉할 때마다 나는 찾아보고 있는가. 나의 아프고 약한 마음을 장국영이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되뇌어본다.     


장국영은 테스토스테론이 들끓는 홍콩 누아르의 물결 속에서 변종처럼 불쑥 튀어나온 배우였다. 울기(鬱氣) 가득한 분위기와 위태롭게 흔들리는 눈빛과 근육도 군살도 키우는 것 같지 않은 물결 같은 육체…그렇게 그는 ‘낭만적 마초’로 사랑받은 주윤발이나, 터프함으로 강호를 호령하는 유덕화 등의 배우와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우리에게 침투했다. ‘기대고 싶다’보다는 ‘내 어깨를 빌려주고 싶다’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는, 비슷한 종류의 아련함과 비애를 품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기 앞가림은 할 것 같았던 양조위의 인물들과도 달랐다.     

<해피투게더>(1998)에서 장국영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보영’을, 양조위가 그런 보영을 기다리고 돌보는 ‘아휘’를 연기한 것은 뒤돌아보니 운명 같은 것이었다. 홍콩에서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아휘와 보영.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연인은 길 한복판에서 헤어지고, 이후 여러 번 스치고 엇갈린다. 아휘는 제멋대로 떠났다가 내키면 돌아오는 보영을 부러 멀리하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결심만으로 되는 것이었던가. 어느 날 밤 피투성이가 된 채 아파트 문을 두드리는 보영 앞에 아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후 내가 가장 사랑스러워하는 장면들, 아니 아휘가 평생 붙들고 싶어 하는 나날이 펼쳐진다. 아휘는 부상으로 두 손을 붕대로 싸맨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영의 수족이 되어 준다. 얼굴도 씻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고, 밥도 먹여주고, 담배도 사다 주고…그런 아휘의 품에서 어리광 부리는 보영은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다. 때론 얄궂다. 몸살로 드러누운 보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다는 말이 겨우 “배고파, 밥 줘.”다. 아, 이런 이기적인 남자를 보았나. 그러나 아휘는 그런 보영이 싫지 않다. 아니, 이 시간이 끝나버릴까 불안하다. 아휘는 읊조린다. ‘사실 나는, 보영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랬다.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아휘도 관객도 철부지 같은 보영을 미워할 수 없었던 건 장국영이 부여한 ‘어떤 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해피투게더>는 본래 장국영이 연기한 보영 중심으로 기획된 영화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의 기질이 아르헨티나에서도 발동했고, 기약 없이 길어지는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없었던 장국영이 홍콩으로 돌아가면서 아휘 중심의 결과물이 됐다. 분명 이는 본래 주연을 맡기로 한 배우에겐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것이 장국영에게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비중은 작든 말든, 장국영은 등장하는 족족 자신의 인장을 박아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극 중 사랑의 밀어를 나눈 상대가 누구인가. ‘눈빛이 트레이드 마크이자 서명’인 양조위 아닌가. 양조위가 깊고도 애잔한 눈빛으로 보영을 내내 그리워하고 있으니, 장국영 없는 장면에서도 장국영이 양조위의 눈을 통해 보이는 듯한 착각이 인다. 이런 극강의 조합이라니. <해피투게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해피투게더> 이전에 왕가위와 함께 한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3)에서도 장국영은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받을까 두려워 꼬리를 끊고 도망감으로써 상대는 물론 그 자신도 외로워졌던 남자였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결핍 때문에 정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비정했던 <아비정전>의 아비. 형수가 돼 버린 여인을 마음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동서서독>의 고독했던 구양봉. 그래서였을까. <해피투게더>에서 아휘의 빈자리를 확인한 보영이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 때, 그 눈물은 아비의 눈물 같기도 했고 구양봉의 눈물 같기도 했다. 그렇게 장국영은 90년대 홍콩 사회에서 허무와 외로움의 초상이 됐다.      

그가 지닌 고유한 이미지는 왕가위 영화 밖에서도 위력적인 것 이어서 공중전화 부스에 매달려 아내와 마지막 통과를 나누던 <영웅본색2>(1987), 비극적인 운명을 노래한 <야반가성>(1994) 등에서도 보는 이들에게 슬픔을 감염시켰다. 특히 첸 카이커와 작업한 <패왕별희>(1993)에선 진한 화장 뒤에 마음을 숨긴 채 사랑하는 이를 평생 지켜보는 데이를 살아내며 세계 영화인들을 울렸다. 그러나 이러한 독보적인 이미지와 스타성이 황색 언론에게도 너무 매혹적이었단 사실이 그를 불행하게 했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광적인 의문을 품은 언론의 가십과 짜깁기된 루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장국영을 괴롭혔으니, 그런 그를 외롭게 방치했다는 사실에 수많은 사람이 그가 떠난 날 그렇게 울었는지도 모른다.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는 이승에서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면 저승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코코> 세계관에 따르면 장국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 자일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내 청춘도 끝났노라’ 허탈하게 눈물짓던 이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그를 추억하고 있고, 장국영 이후의 세대들은 스크린에서 끊임없이 현현되고 있는 젊은 날의 그를 통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는 정말 그(아비)를 잊지 못했다”라는 <아비정전> 속 수리진(장만옥)의 대사는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퍼스트룩'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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