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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Apr 05. 2023

<에어>, 나이키는 어떻게 상품이 아닌 꿈을 팔게 됐나

얼마 전, 나이키가 미국 힙합 아티스트 트래비스 스콧과 협업해 내놓은 에어 조던1 로우 블랙 팬덤 '드로우(Draw·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 상품의 구매 권한을 부여하는 판매 방식)'에 도전했었다. 결과는 꽝. 익숙하다. 나이키 드로우에 응모했다 떨어진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래도 운 좋게 걸릴 때가 있다. 그렇게 에어 조던 짐레드도 샀고, 범고래로 불리는 덩크 라인도 구매했다. 집 근처 나이키 매장에서 에어 조던 시리즈를 선착순으로 기습 발매할 땐 전력 질주해 손에 넣기도 했으니…. 아, 나는 나이키가 던진 마케팅 거미줄에 걸려든 물고기인가.     


리셀(resell·되팔이)은 하지 않지만, 그 흐름이 궁금해 종종 찾아보긴 한다. 1985년 발매 당시 65달러에 불과했던 에어 조던1 시카고는 오늘날 2만 달러(약 2300만원)에 거래된단다. 조던이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후 5번째 경기에서 신은 나이키 에어십 농구화는 소더비 옥션에서 17억원에 경매됐다는데, 내가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송중기)이었다면 나이키부터 찾아갔을 게다.     


드로우니, 리셀이니, 경매니,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러니까 다 조던 탓(?)이다. 스니커헤드(sneakerhead·스니커즈 수집가이자 마니아) 문화의 시초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나이키가 1980년대 중반 획기적으로 내놓았던 에어 조던 시리즈였으니 말이다. 그런 마이클 조던과 그의 독점 운동화 라인인 '에어 조던'의 탄생 비화를 그린 영화가 나온다고 하니, 지나칠 수가 있나. 게다가 이 작품은 할리우드 대표 죽마고우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의 세 번째 협업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에어>다.     

때는 바야흐로, 마이클 조던이 프로 세계에 입단하기 전인 1984년. 컨버스, 아디다스에 밀려 점유율 10%대에 머무르던 나이키는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역전의 용사를 물색 중이다. 당초 세 명의 스타와 계약하려 한 나이키의 계획은 그러나 스카우트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의 강한 주장으로 뒤집힌다. 소니 바카로 가라사대, 어중간한 세 명에게 예산을 분산투자하지 말고 강한 한 명에게 몰아주자! 그렇다면 그 한 명은 누구?     


여기서 소니 바카로의 선견지명이 고개를 든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마이클 조던. 소니는 노스캐롤라이나대 농구부에서 신입생으로 뛰던 조던의 영상을 보고 그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한다. 당시 조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주목받는 선수이긴 했지만, NBA 무대는 아직 한 번도 뛰지 않은 신인. 아무리 잘한다 한들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대형 신인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몸값이 싼 것도 아니어서 나이키 농구 부서 예산으로 끌어오기엔 또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런 선수에게 모든 걸 베팅하겠다고? 이건 소니로서도 굉장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상을 통해 확인한 자신의 '직관'을 믿고, 나이키 CEO 필 나이트(벤 애플렉)에게 예산을 조던에게 몰아 달라고 요구한다. 설득에 설득. 또 설득에 설득, 그렇게 소니는 필 나이트를 설득해 낸다. 그러나 난관은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첫 번째 문제는 컨버스와 아디다스 역시 자금력을 앞세워 신인 조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 더 큰 문제는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 팬이라는 점. 나이키를 애들 장난감 신발 정도로 아는 조던의 마음을 소니 바카로는 얻어야 한다. 어떻게?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정신과 꺾이지 않는 인내, 놀라운 직관, 절실함과 팀워크로.     

이 계약의 결과를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거래는 성사됐고, 에어 조던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며 나이키의 운명뿐 아니라 산업 판도를 바꿔버렸다. 나이키의 에어 조던 출시는 스포츠 스타 마케팅 최고의 성공 사례로 기록돼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영화다. 업계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팀이 든든한 자금력을 지닌 경쟁팀을 제치고 중요한 계약을 따냈다는 점에서 '언더독'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고, 안전하고 빤한 선택을 하려 했던 회사 조직이 팀원의 기지를 받아들여 모험을 한다는 점에서 '성장' 드라마로 보이기도 하며,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기업 스토리'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이클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 조던(비올라 데이비스)을 게임 체이서처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일견 통찰력 강한 어머니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에서 델로리스 조던은 자신의 아들 이름을 나이키가 사용하는 대가로 '에어 조던' 전체 매출의 5%를 받는 계약을 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그려진다. 스포츠 선수가 제품 수익의 일부를 받는 계약을 맺은 건 마이클 조던이 최초. 이 계약 조건이 없었다면 마이클 조던은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나이키를 먼 산 바라보듯 바라만 봐야 했을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조던이 작년에 나이키로부터 받은 돈은 2억5600만 달러(3225억6000만원)다. 지난 50년 동안 약 10억 달러(9억7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선수활동으로 번 돈보다 많다. 문득 든 생각. 소니의 선견지명과 델로리스 조던의 선견지명 중 누구의 선견지명이 더 앞설까.     


영화에서 마이클 조던(을 연기한 배우)은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만 살짝살짝 나올 뿐 얼굴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벤 애플렉은 그 빈자리를 실제 마이클 조던의 영상으로 채웠다. 마이클 조던이 대학에서 뛰었던 영상부터, 최고의 자리에 오르던 순간의 기쁨, 아버지를 잃었을 때의 슬픔, 슬럼프와 이를 딛고 일어나는 영상이 영화 안에 비집고 들어가 상영되며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에어>의 백미는 소니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조던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그는 에어 조던의 내구성이나 통기성 등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이 신발을 신었을 때, 신발이 지니게 될 가치를 설파한다. "신발은 신발일 뿐이지. 누군가가 신기 전까지는." 흥미롭게도 이것은 오늘날 나이키가 상품을 파는 방법으로 이어진다. 나이키의 신발 마케팅을 보라. 그들은 상품을 팔지 않는다. 스포츠맨을 향한 존경심과 정신, 꿈을 앞세울 뿐. 그것이 소비자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하는 비법일 것이다.     

조던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이는 감독 벤 애플렉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2007)로 심상치 않은 연출력을 선보이고, <타운>(2010)에서 첫 번째 연출작이 우연이 아닌 실력이었음을 증명해 내고, <아르고>(2012)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며 연출에서도 탁월한 감이 있음을 보여줬던 벤 애플렉은 <에어>를 통해 그러한 믿음을 더 공고하게 다진다. 연기도 한층 물이 올랐다. 필 나이트를 이토록 잔망스럽게 연기해 내다니.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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