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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Apr 26. 2023

장항준, 행복을 전파하는 남자

스스로 만든 꿀팔자


돌이켜보면 진짜 좋았던 시절엔 그걸 못 느꼈던 것 같아. 어느 순간 깨달았어. 아, 매사에 즐기지 않으면 행복이 와도 온 줄 모르고, 나중에야 ‘아 그때가 좋았구나’ 생각하는구나. 앞으로 뭐가 올 줄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는 너무 좋아.  
(감독 장항준) 
저는 정말 형님을 리스펙트 하는 게 있어요. 형의 (삶의) 태도? 너무 해피하고 즐거워서 그게 전파돼요.
    (배우 이선균)    

tvN 여행 버라이어티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서 맏형 장항준의 말에 이선균이 보인 반응이다. 모르긴 몰라도, 장항준의 행보를 바라봐 온 이들이라면 이선균의 저 말에 모두 공감하지 않았을까. ‘신이 내린 꿀 팔자’라 불리고 ‘윤종신이 임보하고 김은희가 입양한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장항준이지만, 그런 팔자를 만들고 주변에 사람을 모은 건 ‘행복을 전파해 온’ 장항준 자신이다.      


가수 중 방송인으로 가장 성공한 이가 윤종신이라면, 영화감독 중 방송가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는 이는 장항준일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윤종신과 장항준은 절친이다. 친구라서 유유상종인 건지 유유상종이라 친구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윤종신이 10대들에게 예능인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듯 장항준 역시 본업을 의심받곤 하는데, 심상치 않은 입담 때문이다.  

    

그런 그를 두고 누가 그랬더라. 기타노 다케시처럼 영화도 찍는 개그맨 아니냐고. 유쾌함이 천성인 양 머무는 공간을 환하게 밝히는 재능은 특히나 감탄스러울 정도다. 나는 SBS 범죄 스토리텔링 예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정규 편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현대사를 친근하게 전달하며 문턱을 낮춰준 1대 ‘이야기꾼’ 장항준의 역할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낮춰서 남을 높이는 화법이나, 이명세 같은 선배 감독부터 슈퍼스타 RM까지 모든 출연자를 편하게 대화로 이끄는 면모도 tvN <알쓸인잡>, JTBC <방구석 1열> 등에서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장항준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가 ‘한국의 아가사 크리스티’라 추앙하는 아내 김은희 작가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잘나가는 아내를 둔 이유로 (가수 장윤정의 남편) 도경완, (가수 이효리 남편) 이상순과 함께 ‘신이 내린 대한민국 3대 남편’으로 언급되는 그는, ‘누군가의 남편’으로 불리는 상황에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1도 없이 순수하게 아내의 능력을 추켜세우고 자랑스러워한다.      

“저는 가장이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점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족 구성원이 본받을 점이 있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우리 집 가장은 김은희 씨예요.”라고 말하는 자존감 높은 이 남자는 때론 그 관계를 개그 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나를 보고 ‘셔터맨(능력 있는 아내를 둔 무직 남편)이라는데, 우리 와이프가 너무 버는 거지 제가 못 벌지는 않거든요...그런데 또 그런 게 좋아! 서민적인 이미지?”라고 억울할 수 있는 시선마저 장점으로 꿰어내는 위트란.      


“기본적으로 가장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은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아이, 아내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대통령보다도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할 땐 그런 마인드를 지닌 사람을 동반자로 둔 김은희 작가도 남편 못지않은 ‘꿀 팔자’ 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김은희 작가가 딸에게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라고 말할까.      


그런 그의 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리바운드>는 뭐랄까. ‘장항준의 의인화’ 같은 작품 같달까.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사랑스러운데 그 기운에 급기야 스크린을 뚫고 전파된다. 제목마저도 그렇다. 덩크슛도 아니고, 점프슛도 아니고, 리바운드라니. 골인되지 못하고 림이나 백보드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을 다시 낚아채는 리바운드는, 실패가 없으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기술. 실패를 재도약으로 바꿀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이 순간을 포착한 영화는, 6명의 선수만으로 전국 고교농구대회에 출전하며 끝까지 고군분투한 기적과도 같은 승부를 추적한다.     

나는 영화가 품은 낙천성만큼이나 이 영화를 홍보하고 다니는 장항준의 자세를 흥미롭게 주시하는 중이다. 그는 <리바운드> 알리기 위해 MBC <전지적 참견 시점>, SBS <미운 우리 새끼>, JTBC <아는 형님>, SBS 파워 FM <배성재의 텐> 등에 출연했다. 배우보다 더 바쁜 예능 홍보 스케줄이다. 이렇게 개봉 영화를 들고 여러 예능에 나가는 감독도 드물지만, 나가서 분량을 쏙쏙 빼먹는 감독은 더 드물고, 이 와중에 웃기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감독은 더더욱 드물다. 왜 그는 이토록 열심히 할까.  

  

자기 영화 애정에서 나온 홍보 마인드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예능 작가 출신’이기도 한 그가 예능을 그저 홍보 수단만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의심이 일단 가능하다. <라이터를 켜라>로 연출 데뷔하기 전, 장항준이 먼저 몸담았던 곳은 예능이었다. SBS <좋은 친구들> 작가로서 많은 이들을 섭외하고 예능 대본을 써 본 장항준은 제작진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어렵게 섭외했는데 게스트가 몸을 사리면, 부른 사람도 난감하고 보는 시청자는 불편한 법이다. 실제로 그는 <좋은 친구들> 시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직접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던 소유자다. 나는 그의 열혈 홍보가 영화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홍보의 장을 마련해 준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또 하나의 가능성. 사실 <리바운드>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곡절이 많은 작품이다. 2012년 영화화에 착수하며 500여 명의 배우 오디션까지 봤으나, 스포츠 영화는 안된다는 편견 속에서 투자가 물거품 되는 아픔을 겪었다. 스태프 해산을 지켜보며 장항준 감독은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그렇게 끝났다 싶었던 프로젝트가 다시 꿈틀거린 건 게임회사 넥슨코리아가 투자자로 나서면서다. 영화 자체가 ‘리바운드’였던 셈이다.      


예능 홍보는 분명 신경 쓸 것도 많고 일견 피곤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엎어질 뻔한 영화가 완성돼서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었고, 그것을 홍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장항준은 모르지 않는 듯하다. <슬램덩크>의 그 유명한 대사,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 때인가요? 전 지금입니다”를 떠올려 본다. 아직 내일은 오지 않았고, 어제는 지나간 과거이니,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건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매사에 즐기지 않으면 행복이 와도 온 줄 모르고, 나중에야 ‘아 그때가 좋았구나’ 생각하게 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바로 장항준이다.     


+퍼스트룩(1st Look)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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