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 노동 4편 중 3편
지난 이야기
지인의 소개로 청담동의 한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일을 시작하게 된 육선이. 첫 직장, 첫 사회생활이었다. 사장님은 육선이에게 달콤한 미래를 제시했지만 당장의 근로 조건은 몹시 부당했다. 지금의 육선이는 사장님이 제시한 미래가 애초에 공수표였다는 걸 알지만 그때의 육선이는 몰랐다. 그렇게 박봉으로 일하던 육선이는 부당함에 정정당당히 대응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회사 몰래 사적으로 수업료를 받는 식으로 앙갚음(?)하려 했다. 머지않아 부정이 들통난 육선이는 당시로서는 큰 벌금을 때려 맞고 회사에서도 쫓겨났다. 그 지경이 되어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라며 자신을 원망하고 불신하게 된 육선이였다.
새로운 이야기
직후에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반성했다. 혼자 버스에 타거나 잠들기 전에 '정직하게 살아야 해, 남을 속이면 안 돼, 남에게 피해를 주면 다 돌아오게 되어 있어'라고 웅얼거리는 식이었다. 남이 보면 술에 취했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 같았을 것이다. 실제로 반쯤 그렇긴 했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그때의 부정적인 상황에 과몰입해 있었다. 20대 중반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사건사고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 상황은 양면적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무기력이 밀려왔다. 하지만 벌금을 내기 위해 빌린 빚도 쌓여 있었다. 왼손엔 무기력, 오른손엔 빚이랄까? 다행히 내 마음은 오른손을 향해 있었다. 빚을 빨리 갚고 싶었다. 무기력이 이따금 찾아왔지만 길게 머물진 않았다.
일부러 일에 매진했다. 동시에 두 개의 일을 했는데 하나는 스타트업의 아르바이트로, 신용산역 인근 거리를 활보하며 맘카페 어플의 베타테스터를 모집하는 일이었다(무식한 방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어느 기업 회장님의 개인 트레이너로 주 2회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오전에 주 2회 회장님 트레이닝을 하고 오후에는 스타트업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 번째 일로 탈잉이라는 플랫폼에 등록해서 PT 회원을 모집하기도 했지만 그건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기업 회장님 트레이닝은 절대 놓쳐선 안 될 가성비 노동이었다. 일주일에 세 시간 일하는데 월급이 150만 원이었다.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새벽 6시에 헬스장을 청소하고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이했다. 뿐만 아니라 24시간 숙식 근무까지 거치면서 생존력이 바퀴벌레 수준으로 발달한 상태였다. 그에 비하면 이 일은 천국이었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회장님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항상 아침 일찍 수업을 했다. 자연스레 하루 전에는 일과를 서둘러 끝낸 뒤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 눕는 루틴이 생겼다. 그날도 그런 하루였다. 길거리 영업을 더 빡세게 해서 목표치를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오후부터 조금씩 오한이 들더니 저녁이 되니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럴 땐 온몸이 과긴장 상태가 되어 힘이 엄청 들어간다. 식은땀은 줄줄 흐르는 데 몸은 너무 춥다. 애인은 내 상태를 보곤 지금이라도 회장님 수업을 미루라고 했지만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을 하고 싶었다. 빚, 돈, 책임감,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뒤얽혀있었다.
편의점에서 산 감기약을 때려 넣고 보일러와 전기장판을 만땅으로 튼 채 패딩까지 껴입고 땀을 빼며 선잠을 잤다. 일어나서도 상태가 크게 회복되진 않았다. 비장한 각오로 내복부터 반팔티, 맨투맨, 후드티 2장 그 위에 패딩 점퍼를 입고 길을 나섰다. 대중교통에서의 기억은 없다. 회장님을 만나니 긴장을 해서인지 몸 상태가 약간 나아졌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떨리는 몸과 윗니-아랫니를 통제하며 (방심하면 턱이 떨리면서 이빨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1시간 30분 수업을 끝냈다. 오후엔 스타트업 알바도 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병원에 달려가 생애 첫 수액을 맞았다. 그때 나에겐 수액이 홍해에 나타난 모세급의 기적이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수액 만세.
지금 생각해도 독하게 산 시기였다. '정직함'을 몸으로 체험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뭐랄까, 도덕 교과서에 적혀 있듯 당연히 지켜야 할 단어지만 실제로 만나보진 못한, 소문만 무성한 먼 지인 같은 느낌이었다. 소식은 종종 듣긴 하지만 앞으로도 볼 일이 있겠나 싶은 그런 지인 말이다. 하지만 정직함을 어긴 대가를 치르면서 그 단어의 무게를 어깨에 쌓인 짐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정직하지 않음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먼저 속였지만 나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한 청담동 사장님, 자기도 모른 채 매출 누락에 이용당한 회원분들, 나에게 돈을 빌려 준 내 또래의 친구와 선배들, 정확한 자초지종도 모른 채 내 신변의 변화를 이해해야만 했던 가족과 애인,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훼손된 나 자신도 있었다.
다른 피해를 과소평가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를 꼽자면 마지막-나 자신-이었다. 남들에게 입힌 피해는 몸과 시간을 갈아 넣으면 보상할 수 있는 길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서 당장 빚을 갚는 데 몰입했다) 오염된 자신을 회복하는 건 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감을 잡기도 어려웠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전자는 감기, 후자는 알레르기 비염과 비슷한 것 같다. 감기는 일단 치료가 끝나면 경미한 후유증은 남더라도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치료가 되지만, 알레르기 비염은 주기적으로 신경 쓰고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 '과거의 잘못'과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도 새까맣게 잊어선 안 되고 잊혀지지도 않는다. 비슷한 유혹이 언제든지 다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경계하고 관리해야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
뻔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싸게 배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장을 좀 보태서, 십억백억을 횡령한 은행원이나 빌라 백개 천개를 떼어먹은 전세사기범들을 보면서 나도 그때 배우지 않았으면 저렇게 되진 않았을까 라는 걱정을 할 때도 있다. 남들은 오버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마냥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기만 했던 뇌순남 시절이 그리운 건 아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보다는 근거 있는 경계가 낫다.
이 시기에 배운 건 정직해야 한다는 것, 나 하나쯤이야 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내 안에 비뚤어진 욕망과 콤플렉스가 있으니 외면하지 말고 꾸준히 경계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정직하게 살려는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내 욕망의 일부는 돈과 허세를 향해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 (웃음)
청담동에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은 시기적으로 2014년부터 2017년에 걸쳐 있다. 당시에는 마냥 힘들고 괴로웠지만 이때의 농도 짙은 경험이 귀중한 배움으로 이어진 것 같아서 지금은 되려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한 '정직함' 외에도 몇 가지 인상 깊은 교훈들이 있는데 분량 상 다음 글에서 다뤄보려고 한다. (이때의 일화도 꽤 재밌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교훈들이 찰흙처럼 모여서 반죽된 곳이 2019년에 세운 '근력학교'라는 피트니스 센터다. 반죽이 5년째 제대로 굳질 않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많은) 회사지만 2014년 청담동 시절부터 2018년 프리랜서 시절에 이르기까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곱게 빚어보려고 노력했다. 어떤 교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했는지에 대해서도 다음 또는 다다음 글에서 다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