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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Dec 02. 2023

이직을 고민하는 미래의 식솔에게

이직 (20231203)

ELSA이야기

이번 이직 소동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어. 그래서 그동안 거기에 쏟던 많은 에너지가 남아돌아 지금 조금 여유가 생겼어. 방향성이 없어진 에너지는 애꿎게 나한테로 향해서 한동안 스스로를 지나치게 괴롭히기도 했지. 그러다가 점차 방향을 찾은 거야. 공부. 공부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적합한 방향이라는 걸 살면서 처음 느낀 것 같아. 요새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효능감이 중요하다, 이런 말이 교리처럼 떠도는데 정작 그게 뭔지 어떻게 하는지 감도 안 온다고 뜬구름 잡는 말이라고 장장 6년 이상을 고민했었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을 좀 잡은 기분이랄까. 생산적이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방향. 공부. 학습. 어지럽게 방황하던 마음이 조금은 정리가 되고 비로소 안정을 찾은 기분이 들어. 다른 회사에 가서 새로운 걸 시작하거나, 지금 하던 것을 관둘 가능성이 당장은 없어진 상태니까 하던 거에 마음 다잡고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마음을 안 줄 때에는 몰랐는데, 현재 하던 업무에서 공부할 것도 배울 것도 꽤 많더라고. 그리고 현재 회사는 그런 학습의 기회를 꽤 많이 제공해 준다는 것도 이제야 보이더라고. 이전에는 그런 기회가 있는 걸 알아도 관심 없고 애써 무시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가능할 때 누리고 싶더라고. 내가 이직을 했었다면 누리지 못할 기회 들이었을 테니까. 수동적으로 타성에 젖어 출퇴근만 반복했었는데, 이직을 포기하게 되고 오히려 주체성을 찾은 기분이 들어. 지금 회사에 다닌 지 1년 반 지났거든? 꽤 오래 다녔는데, 난 이번 이직준비를 하면서 또 포기하고 나면서부터 비로소 이 회사에 정식으로 입사한 기분이 들어.


어쨌든 여기 남기로 했으니 나에겐 이곳이 '좋은 곳'이어야 하니까 정신승리 합리화를 해보자면 아래와 같아. 근데, 합리화 아닌 것 같아.

  

    함께 업무 하는 사람들 모두 합리적이라는 것 : 현 회사에는 무능한 사람은 현재까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물론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은 있는데 아무래도 회사니까 이기적인 일 잘하는 사람이 착한 무능한 사람보다는 나으니까. 그래서 가끔씩 문득 나와 함께 일하는 여기 사람은 모두 다 합리적이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 그리고 그건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믿을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흔하지는 않을 테니까. 업무 시간은 더 늘어나는 것 같은데도 그들과 서로 돕고 의견을 교환하고 함께 업무를 해 나가는 것이 전혀 거부감이 없으니 과중한 업무를 하는 기분은 안 들더라고. 그런 분위기의 부서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 한편, 그 회사에 계시던 분의 말에 따르자면, 워라밸이 좋고 정년 보장(?)이 되는 것의 단점은 일하지 않는 고인 물들이 많고 그에 따라 옆에 다른 사람들의 업무는 과중되는 괴상한 분위기가 있대. 한량처럼 눌러앉아있는 중장년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하더라고. 내가 그런 분위기를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교육 지원하는 회사의 태도: 그다음으로 중요했던 항목 중 하나였던 것 같아. 현 회사는 규모가 매우 크고 실제 판매하고 양산중인 제품이 있다 보니 쌓이는 '데이터'가 정말 많아. 매 분마다 수십만 개의 데이터가 쌓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직원들의 '데이터 분석' 능력 향상을 위해 교육을 많이 지원해 줘. 회사 차원에서 데이터가 넘쳐나니 이를 관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하는 개개인의 능력을 끌어올리려는 것 같아. 회사를 위한 목적이지만 난 이 분석 능력은 미래에 점차 중요해지고 필요해지는 덕목이라고 생각하거든. 데이터뿐만 아니라 업무 관련 교육은 정말 많이 열려있지. (물론, 현 업무를 빠지면서까지 교육을 듣고 오겠다는 건 같이 일하는 분들께 업무를 가중시키는 거라서 그 교육들을 다 누릴 수는 없지만..) 반면에 그 회사는 연구개발이 중심이기 때문에 아직 제품이랄 것이 없고, 따라서 데이터도 없어. 그래서 회사 전체가 데이터 관련해서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더라고. 교육도 당연히 없고. 난 요즘 같은 시대에는 큰 기업이면 데이터 관련 교육은 필수적으로 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 회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단 것에 대해서 조금 놀라기는 했어. 내가 지향하는 방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  

    추가 근무 수당 : 현 회사가 업무시간이 많은 것은 맞아. 가끔 주말에 회사를 나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 근데 주말 근무가 엄청 나쁘지는 않은 게, 돈을 주거든. 주말시급도 평일보다 조금 많이 따로 계산되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하고 출근하면 나쁘지 않아. 또 주말에는 조용하고 고요해서 평소에 집중해서 공부할 수 없던 내용도 잘 보고 생각 정리도 잘 돼. 주말 출근하면 밥도 나오니까 나쁘지 않더라고. 반면 거기는 '워라밸'이 좋지만 그만큼 추가근무를 하지 않는 문화이고 추가수당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 좀 아쉬웠지.  

    변화의 리스크 :  함께 일하게 되는 분들, 특히 리더의 성향의 중요성을 점점 더 느끼게 되거든. 그들 자체의 실력과 인품뿐만 아니라 나와 맞는 성향인지 그들의 윤리의식이나 가치관을 내가 동의하고 따를 수 있는지까지도. 현 부서의 리더들이나 그로 인한 업무 분위기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이걸 박차고 나가서 간 새로운 환경이 좋다고 보장을 할 수 없잖아. 혹시 모를 리스크를 맞이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개인적인 부담감 :  면접 일정 시기에 마침 개인적으로 심경 복잡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나한테 도저히 변화할 힘이 없다는 걸 직감했어. 회사를 옮기면 일단 지금 집도 이사해야 할 거고, 새로운 지역, 새로운 조직문화, 새로운 사람들 적응도 전부 새로 다시 해야 하는 거잖아. 힘에 부쳤어. 모험가 그 자체였던 옛날의 나였다면 변화부터 하고 후회는 나중에 했을 텐데,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 들며 조금 보수적이고 안정적 시각을 가지게 되는 걸까. 신체적 노화를 체감할 수 있겠더라고.   


면접은 10/17이었어. 그러니까 1차 서류를 이미 통과를 했었다는 말이지. 서류준비도 쉬운 일은 아니잖아. 1차 서류 준비를 정말 최선을 다했고, 미리 그 회사에 가서 아는 분들을 만나서 이것저것 물으며 사전조사도 많이 했어. 진심으로 열심히 이직 절차를 준비했어. 난 진짜로 거기로 옮길 생각이었거든. 근데 흔들리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너무 괴로웠어. 선택을 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합격하고 포기하게 되면, '블랙리스트' 같은 게 되지는 않을지 불안하기도 하고. 답답하다고 현 회사 사람한테 상담할 수도 없으니 온전히 스스로 선택해야 하니까 두렵기도 하고. 어쨌든, 면접자체를 포기하겠다고 인사팀과 나를 채용하게 될 부서에 미리 알리면서 '이직 포기'의 선택을 했어. 어렵고 힘든 선택이었지만 결국 넌 스스로 결론을 내렸어.

 사실 일단 별생각 없이 다녀보자, 했던 현 회사였어. 그래서 뭔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사는 기분도 있고.. 근데 이번 이직을 준비하고 결국 현 회사에 남는다는 결정을 함으로써, 현 회사는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곳이 되었어. 그래서 지난한 무료한 현 회사 생활에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회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의 소중함을 느끼고 가능한 이용 하려고 하고, 내가 믿고 배울 수 있는 동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들고, 삼시세끼 맛있는 밥도 너무 소중하고, 회사의 축적된 고도화 기술을 최대한 많이 배워가려고 해. 현 회사가 제공하는 모든 것은 당연한 게 아니고 내가 여기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이니, 있을 때 잘하려는 마음가짐이 들게 됐어. 주체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기분은 꽤 만족스러운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 고민하고 있는 순간이 다시 왔다면 일단 도전은 해봐. 가게 되든 남게 되든 뭔가 너가 액션을 취한 결과로 뭐라도 교훈은 얻을 수 있을 거고 또 그 교훈으로 개똥 같은 삶의 철학도 생기고 의미도 부여하면서 한동안은 그 기운에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니까. 어떤 선택을 하게 되든 너는 너에게 최선의 선택을 했을 거야.

아 근데, 이직하려던 그 회사.. 거기에서는 내가 확실히 올 것처럼 굴어서 이미 그쪽 사람들이 내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갑자기 안 간다고 맘을 바꾸는 바람에 그 회사에서 내 이름을 모르게 된 사람이 없다고 하네..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하면서도 잊기엔 어려운 이름이라 잊히려나 모르겠네.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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